정부·저축은행, 국내 금융시장 충격 미미할 것
'뱅크런' 대비 해야한다는 시각도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 사태로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연체율에 비상이 걸린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정부에서는 SVB 사태가 저축은행을 비롯한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충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으며 당분간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에 경계감을 갖고 예의 주시할 예정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미국 내 16위 은행인 SVB가 최근 유동성 위기로 결국 파산했다. SVB는 개인이나 가계보다 주로 밴처캐피탈이나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등으로부터 예금을 유치했으며, 유치한 예금을 스타트업 업체에 투자하거나 대출해주는 은행이었다.
시장에서는 SVB가 파산한 원인에 대해 작년 시작된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차입비용이 커졌고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SVB에서 예금을 대거 인출하면서 '뱅크런'이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SVB와 마찬가지로 무리하게 금리를 올려 예금을 유치하는 방식으로 시중 자금을 끌어모은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이 최근 연체율 급증과 부동산 경기 악화로 건전성 리스크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금융권과 예금보험공사 등에 따르면 지난해 3·4분기 전국 79개 저축은행의 평균 연체율은 3.0%로 전 분기 대비 0.4%포인트 상승했다. 2021년 말과 비교하면 2.5%에서 0.5%포인트 증가한 수치이며, 금액으로 보면 3조4345억 원으로 32.2%(8359억 원) 늘었다.
BIS자기자본비율도 악화했다. BIS비율은 자기자본을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눈 값으로, 은행의 건전성을 점검하는 지표다.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에 8% 이상의 BIS 비율을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저축은행 전체의 BIS비율은 지난해 9월 12.88%를 기록했으며 1년 전 13.82%보다 0.94%포인트 떨어졌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부실도 저축은행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동산PF는 건물을 지을 때 시행사가 공사비를 조달하기 위해 이용하는 금융 기법을 말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3분기 저축은행 업권의 부동산PF 전체 규모는 10조7000억 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8.5% 증가했다. 이 중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대출 연체 잔액은 약 3000억 원, 연체율은 2.40%로 집계돼 전체 금융권에서 두 번째로 높았다.
일각에서는 SVB와 같은 은행 파산 사태가 발생하면 예금자는 불안한 느낌을 주는 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해 크고 안전한 은행으로 옮기려는 움직임이 생길 수 있으며, 저축은행과 같은 작은 규모의 은행들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국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종합금융회사의 연쇄 부도, 2011년 저축은행 부실 등으로 뱅크런이 나타났다. 만약 한국에서도 또다시 위기가 발생한다면 SVB 사태와 비슷한 '디지털 뱅크런'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저축은행의 경우 최근 예금금리를 많이 높여서 자금을 조달한 상황이기 때문에 운용자산에서 위험 높은 자산운용을 많이 하다 보니 금리 상승이 많이 된 상황에서 연체가 늘고 있는 것은 불가피한 부분"이라며 "연체가 높아서 다른 시중은행이나 금융권보다는 부실 위험이 높은 상황이고 가급적이면 채권 회수에 주력하면서 대손 충당금을 쌓는 쪽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국내 저축은행들의 자금을 조달하는 구조가 확인되지 않아 언급이 어려우나 만약 저축은행들이 투자자산이나 기타 예금 등의 자산 성격을 갖고 있다면 금융 고객들의 뱅크런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만 정부와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SVB 사태가 저축은행을 비롯한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충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13일 이승헌 부총재 주재로 '시장 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SVB 사태로 국제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됐지만, 현재로선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이번 사태는 SVB의 특수한 영업구조가 최근 금융긴축 과정과 맞물려 발생한 경우"라며 "미국 정부와 감독당국이 12일 SVB의 모든 예금자를 보호하기로 조치함에 따라 시스템적 리스크로 확대될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다만 이 원장은 "유사한 영업구조를 갖는 미국 내 금융회사 등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등 당분간은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을 경계감을 갖고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 역시 "지난 2011년 저축은행 사태가 있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 금융당국의 깐깐한 관리 규제 아래 영업을 해오고 있고 보고 체계도 촘촘히 하고 있어 SVB처럼 파산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제도권 금융이다 보니 각 사마다 금융시스템 스트레스 테스트(경기침체 등 외부 충격에 대한 금융회사들의 위기관리 능력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통해 리스크 관리를 하고 있고 뱅크런 가능성도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SVB 파산과 관련해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점검할 것을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3일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미국 SVB 파산으로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다"며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SVB 파산의 요인, 사태 진행추이, 미 당국의 대처, 국내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대한 영향을 면밀히 점검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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