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공개 수위 놓고 막판까지 고심…업계 우려 짙어져
[더팩트|한예주 기자] 미국 정부가 요구한 반도체 주요 공급망 정보 제출 시한이 오늘(8일)로 다가온 가운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우리 반도체 업체들이 정보 공개 수위를 놓고 막판까지 고심 중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업체인 대만 TSMC를 비롯한 주요 기업 대부분이 핵심 부문을 제외한 채 자료를 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 기업들도 비슷한 수준의 자료를 제공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은 고객사와의 계약서상 기밀유지협약(NDA)을 깨지 않는 선에서 마감 시한인 이날까지 미 상무부에 자료를 제출할 전망이다.
앞서 미국 정부는 반도체 수급난이 이어지자 공급망 상황을 조사하겠다며 재고, 제품별 매출, 고객사 정보 등 26가지 문항에 대한 답변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백악관이 추진 중인 반도체 대책 회의의 후속 조치다. 미국은 차량용 반도체 등 일부 품목에서 공급망 병목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시장의 전반적인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 중이다.
문제는 미국 행정부에서 제출을 요구하는 정보가 제품별 주요 고객 명단과 매출 비중, 재고, 수율 등으로, 하나 같이 영업 비밀이라는 점이다.
반도체 업계는 몇몇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독과점 시장인데, 단 한 건의 정보 누출만으로도 가격 협상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물론 기업 생존 문제로도 비화할 수 있다.
반도체 업체들은 이 때문에 전례 없는 미국 정부의 요구에 대해 전전긍긍해오다 최근에는 설문조사에 협조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인 TSMC는 당초 미국 요구에 반발하며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었다. 그러다 지난 5일(현지시간) 고객사 등 핵심 내용을 제외하고 나머지만 제출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수급난 관련 대응방법은 기밀 서류로 별도 제출했다.
일반인 공개 형태로 가장 많은 답변을 기재한 자료를 제출한 타워세미컨덕터도 최대 고객사와 제품별 재고, 최근 판매량 등의 항목에는 답하지 않았다. 마이크론은 일반인에 공개되지 않는 기밀 자료 1건만 첨부했다. UMC는 공개 자료와 기밀 자료를 함께 첨부하며 공개 자료에 '기밀 버전을 참고해 달라'고 기술했다.
반도체 정보를 제출하도록 요구한 사이트에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 대학 등 유관기관 20곳 이상이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돼 있다.
한국 기업들은 아직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채 다른 기업의 공개 자료를 참고해 수위 조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적으로는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말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 차분히 잘 준비하고 있다"고 했고,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가 "내부에서 검토 중이며 정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밝힌 게 마지막이다.
TSMC 등 미국 요구에 반발하던 기업들도 자료를 제출한 걸 감안하면 한국 기업들도 다른 기업처럼 민감한 정보를 빼고 자료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가 누락된 핵심 정보를 추가 제출하라고 압박할 가능성은 있다.
업계에선 국내 기업들이 정보 제출을 거부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공급난 해결'이라는 명분을 연일 강조하고 있어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도 14개 국가를 불러모아 공급망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다만, 미국 정부의 정보 제출 요구가 이번 한 번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실제로 미국 상무부는 이번 설문조사와 관련 "정보 제출은 자발적이지만, 이 정보는 공급망의 투명성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는데 매우 중요하다"면서 "강제조치를 사용해야 하는지 여부는 얼마나 많은 기업이 참여하고 공유된 데이터의 질에 달려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우리 정부와도 관련 협의를 진행 중이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내주 초 미국을 방문해 관련 협의에 나서는데, 지나 러만도 미국 상무부 장관과 만나 반도체 기업들이 제출하는 자료를 설명할 전망이다. 기밀보호 이유로 추가 자료 제출도 어렵다는 입장을 전할 것으로 전해졌다.
hyj@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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