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3일 만에 직원들 삭발 투쟁…9일간 기자회견만 4차례
[더팩트|이민주 기자] '상생경영'을 최우선 실천과제로 제시한 이제훈 신임 홈플러스 사장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분위기다.
"회사와 직원이 함께 성장하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이 신임 사장의 포부가 무색하게 홈플러스 노조가 연일 사측과 대주주 MBK파트너스(MBK)를 규탄하는 시위와 기자회견을 이어가고 있고, 급기야 취임 3일 만에 직원들이 삭발 투쟁을 벌이며 그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 신임 사장은 지난 10일 홈플러스 스페셜 서울 1호점인 목동점 방문을 기점으로 공식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출근 첫날 집무실이 아닌 현장을 찾은 이 사장은 직원들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 사장은 현장에서 만난 직원들에게 "고객이 선호하는 회사, 지속가능한 회사, 직원이 행복한 회사인 새로운 홈플러스로 나아가는 첫날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 날 열린 취임식에서도 이 사장의 '소통 행보'는 이어졌다.
그는 취임식에서 "고객과의 접점에 있는 현장의 직원이 먼저 행복해야 한다"며 "회사와 직원이 함께 성장하는 회사를 만들어 가겠다. 일에 자부심이, 일하는 과정에 즐거움이, 서로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는 회사를 만들어 가자"고 당부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이 사장의 노사 갈등 봉합 노력에도 홈플러스 노사 간 갈등은 쉽사리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홈플러스 노조는 지난 6일부터 9일간 총 4차례의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과 MBK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 온라인배송지회는 15일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홈플러스 온라인배송 노동자가 과로로 인해 의식불명에 상태에 빠졌다며, 사측이 여기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에 따르면 홈플러스 강서점 온라인배송 노동자 최모 씨는 지난 11일 아침 출근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쓰러졌다. 이후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와 과로가 원인이 돼 뇌출혈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홈플러스가 직원과의 상의도 없이 휴무제도를 변경했고, 이로 인해 온라인배송노동자의 노동 강도가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업무환경이 바뀌면서 노동시간이 더욱 길어졌고, 휴무제 변경으로 한 명의 노동자가 하루에 감당해야 하는 배송량이 많아지고 노동시간도 길어졌다"며 "홈플러스의 상품을 배송하던 노동자이니만큼 사측이 책임있게 나서야 한다. 배송노동자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라"고 말했다.
전날(13일)에는 직원 11명이 삭발투쟁에 나섰다. 홈플러스 노조는 대주주 MBK 본사 앞에서 '홈플러스 여성노동자 집단삭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홈플러스 여성 직원 9명을 포함한 노조원들이 현장 발언 이후 머리를 잘랐다. 삭발 투쟁에 참여한 한 직원은 "MBK는 인수 6년 만에 홈플러스를 거덜 내고 폐점 매각하고 있다. 왜 우리가 이런 악질적인 사모펀드의 손에 놀아나야 하냐"며 "직원들에게 최저임금조차 정상적으로 지급하지 않는 김병주 MBK 회장을 두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전에는 한국부동산개발협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협회가 홈플러스의 부동산 투기를 도와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이에 앞서 노조는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홈플러스 노조는 MBK에 대한 정부 차원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시위나 기자회견 등 방식은 다양하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바는 일관적이다. 이들은 MBK가 투자금 회수를 위해 홈플러스 알짜 점포를 매각하고 있다며, 이를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이후 재무건전성이 크게 악화됐음에도 매입 당시 차입한 비용에 대한 이자를 홈플러스에 떠넘기고 있다는 게 노조 측의 주장이다. 실제 지난 2016~2019년 차입매수(LBO)에 따른 이자 비용 합계는 1조2635억 원이다. 같은 기간 홈플러스 영업 이익은 9711억 원에 그쳤다.
최근 홈플러스가 추진한 점포 매각(자산 유동화) 역시 부족한 이자 비용과 차입금 상환에 목적이 있다는 주장이다. MBK가 2016~2020년까지 매각한 자산 규모는 2조2111억 원이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안산점, 둔산점, 대구점, 대전 탄방점을 매각 처분했으며, 올해 대구스타디움 폐점과 부산가야점 폐점·매각을 발표했다.
아울러 노조는 점포 구조조정으로 지난 5년간 9000여 명이 해고됐다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 공시자료에 따르면 홈플러스 직원 수는 지난 2015년 12월 2만5359명에서 2021년 2월 2만830명으로 줄었다.
홈플러스 측이 폐점, 매각은 사업운영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며, 이 과정에서 직원들의 고용보장을 약속했다고 해명했으나, 노조의 반발을 잠잠해지지 않는 분위기다.
홈플러스는 "자산유동화를 통해 마련된 자금으로 수익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한편 오프라인 매장의 경쟁력 확보 및 온라인 비즈니스 강화에 투자하고 있다"며 "자산유동화가 진행 중에 있지만 회사의 고용보장 정책은 변함이 없다고 수십 차례 강조했다. 노조가 직원들에게 고용불안을 부추기고 있는 모습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사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업계의 관심은 이 신임 사장이 화해 물꼬를 틀 수 있는 중재자 역살을 할 수 있을지에 쏠리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 사장은 리테일·소비재 부문 최고경영자 경력 10년 이상의 '리테일 베테랑'으로 불리지만, 이전 회사에서 노사 갈등을 겪은 경험이 없다. KFC코리아, 카버코리아 등에는 노조가 없었다"라며 "노조가 '끝까지 싸우겠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한 만큼 단기간에 양측의 갈등을 봉합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minju@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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