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깃 기업 '개점 휴업' 토종 브랜드 '반사이익'…불매운동은 '진행형'
[더팩트|이민주 기자] 올 한해 유통업계를 '울고 웃게' 만든 키워드는 단연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이다.
지난 7월 일본 정부의 반도체 핵심 부품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시발점으로 한·일 관계가 급격히 냉각되면서 국내 소비자들은 일본 기업이 판매하는 제품들을 사지 않겠다고 나섰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일명 '일본기업 리스트'가 떠돌았고, 불매운동 브랜드와 제품을 알려주는 웹사이트 '노노재팬(NONOJapan)'이 등장하기도 했다.
국내 시장에 진출한 일본 유통 기업은 매출 타격으로 울었고, 일부 토종 국내 기업은 반사이익에 웃음을 띄었다. 'NO재팬' 움직임이 본격화한지도 6개월이 지났지만, 일본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 왕좌 내준 일본 맥주…90%대 역신장 "여전히 안 팔린다"
가장 먼저 표적이 된 품목은 일본 맥주다. 그간 한국은 일본 맥주 업계에서 손꼽히는 최대 소비시장이었다. 그러나 불매운동이 시작된 이후 편의점·마트 등 전 유통채널을 막론하고 일본 맥주는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급기야 지난 10월에는 일본 맥주의 한국 수출 실적이 0원을 기록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일본 재무성이 지난달 발표한 '10월 품목별 무역통계'에서 맥주 한국 수출 실적(수량·금액)이 모두 0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매출 감소 배경에는 유통업의 자발적인 불매운동 참여와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실천 노력이 있었다.
불매운동이 본격화하자 편의점 4사(CU, GS25, 세븐일레븐, 이마트24)는 즉각 수입 맥주 할인 대상 품목에서 일본 맥주를 제외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여기에 CU와 롯데마트 등 일부 업체는 일본 맥주 발주를 중단하기도 했다.
특히 중소마트에서의 적극적인 참여가 돋보였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산하 마트 3500여 곳이 '팔지 않는다'는 불매운동에 동참했다. 여기에 농협 하나로마트 창동점은 대형마트 중 최초로 일본 제품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나서 주목을 받았다.
일본 맥주 불매운동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편의점 일본 맥주 매출 감소 폭은 최근까지도 평균 80~90%대를 유지하고 있다.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에 따르면 지난달 일본 맥주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3.8%만큼 줄었다. 9월부터 꾸준히 90%대 감소율을 유지하고 있다.
대형마트의 상황도 비슷하다. 이마트에 따르면 일본 맥주 매출 신장률은 지난 8월부터 줄곧 90%대를 유지하고 있다. 8월 94.1%, 9월 95.7%, 10월 94.6%, 11월 95.3% 역신장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크리스마스 등 연휴가 포진해 있는 12월에 역신장 폭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망언'으로 불매 타깃 1순위 오른 유니클로, 매출 타격에 할인 공세 '극약처방'까지
불매운동의 대표 표적 기업은 유니클로다. 국내에서 유니클로, GU, 띠어리 등을 운영하는 에프알엘코리아(FRL코리아)는 일본 패스트리테일링과 한국 롯데쇼핑이 각각 51:49의 지분을 투자해 설립한 회사다. 시작 당시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 회사가 벌어들인 돈의 상당수가 일본으로 흘러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매 타깃 기업이 됐다. 그러던 중 일본 본사 임원의 발언이 불매운동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오카자키 다케시 패스트리테일링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제 불매 운동이 매출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 매출에 영향을 줄 만큼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국내 소비자들은 앞다퉈 유니클로에 대한 불매 운동을 벌였고, 서울 시내 주요 유니클로 매장은 말 그대로 '개점 휴업' 상태에 빠졌다. 두 차례에 걸친 유니클로 측의 사과에도 불매운동 불길은 잡히지 않았고 결국 매출 타격은 현실화했다.
유니클로가 입은 타격이 구체적인 수치로도 드러나기도 했다. 불매운동 기간 유니클로 매출액이 최대 70%까지 줄어들었다는 자료가 나온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8월 8개 카드사로부터 받은 일본 브랜드 가맹점 신용카드 매출액 정보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7월 넷째 주 유니클로 카드 매출액은 전월 동기(6월 마지막 주) 대비 70.1% 줄었다.
잠잠해질 줄 알았던 불매운동이 장기화하자 유니클로는 인기 제품 히트텍을 무료로 증정하는 행사를 여는 등 할인 공세를 펼치며 매출 회복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실제 유니클로의 극약처방이 일부 효과를 거둬 유니클로 매장은 전보다 손님이 늘어났다.
불매운동과 함께 유니클로의 할인 공세도 현재진행형이다.
유니클로는 올해 4분기에만 '추석 해피위크', '15주년 기념 감사제', '히트텍 무료 증정 행사', '해피 홀리데이' 등 굵직한 할인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히트텍 무료 증정 행사는 구매금액에 관계없이 10만 장 증정이라는 통 큰 규모로 열리며 고객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오는 31일까지는 '15주년 연말 감사 세일'을 진행 중이다. 히트텍, 후리스 제품을 할인가에 판매하고 구매금액별로 사은품도 증정한다.
유니클로의 적극적 홍보와 할인 행사에 소비자들의 꽁꽁 언 마음도 일부 풀리는 분위기다. '해피 홀리데이 2019' 프로모션 당시 유니클로 매장은 고객들로 붐볐고 일부 고객은 "불매운동은 개인의 선택 아니냐"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 불매운동 중 '웃은 곳' 어디? 토종 국내 기업 '반사이익'에 활짝
일본 제품과 기업이 타격을 입은 가운데 '대체 브랜드'로 거론된 일부 국내 기업들은 반사이익을 누렸다. 대표적인 수혜 기업으로는 불매운동 집중 타깃이 된 유니클로의 대체 브랜드가 꼽힌다.
불매운동이 여름 즈음 시작된 탓에 당시 유니클로 기능성 내의 에어리즘 상품의 대체재를 찾는 고객이 많았다. 이에 BYC, 국내 SPA 브랜드 탑텐(신성통산), 스파오(이랜드월드)의 관련 상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BYC 보디드라이 매출은 채널별로 최대 159%까지 늘어났다. 지난 7월 1~22일 동안 BYC 직영점 내 심리스 속옷 매출도 전년 동기보다 547% 성장했다. 탑텐 '쿨에어' 제품 7월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120% 늘었으며 이랜드 쿨테크 제품 매출도 같은 기간 300% 상승했다.
의류 외에도 문구류를 판매하는 모나미, 모닝글로리와 무인양품 대체 브랜드 '자주(신세계인터내셔날)', ABC마트 대항마 슈마커가 반사이익 수혜를 톡톡히 누렸다.
해당 기간 일부 업체들은 애국 마케팅을 펼치며 소비자들의 발길 잡기에 나섰다. 특히 불매운동이 격화한 시점에 광복절이 끼어있었던 만큼 국내 토종업체들은 애국심을 고취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거나 관련 이벤트를 진행하며 홍보에 나섰다.
일본 맥주 할인을 제외하는 등 불매운동에 선제 대응한 편의점 업계는 애국 마케팅에도 빠지지 않았다. CU는 '광복절 캠페인'을 열고 추첨을 통해 'CU 광복절 굿즈'를 제공했으며, 이마트24는 독립군 전투에 대한 영화 '봉오동전투'와 컬래버레이션 한 음식 제품 3종을 내놓았다.
반사이익을 본 브랜드들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일본산 필기구 대체 브랜드로 떠오른 모나미는 무궁화 등이 그려진 'FX 광복절 기념 패키지'를 출시하고 곧이어 '153 무궁화 볼펜'을 선보였다. 탑텐에서는 '광복절 기념 티셔츠'를, 스파오는 '로보트 태권브이' 협업 제품을 내놓았다. 의류 브랜드 K2는 '2019 코볼드 독도 에디션'을 출시해 눈길을 끌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한국과 일본 양국 간 경제 문제를 두고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만, 양국 간 갈등의 골이 완전히 매듭지어지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라며 "유통 업계 전반으로 확산한 일본 제품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의 불매운동 역시 내년 초까지는 어느 정도 영향력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minju@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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