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바이오팜,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 FDA 허가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가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신약 승인을 받았다. 바이오 사업의 꾸준한 육성을 추진한 최태원 SK그룹의 '신약개발' 뚝심이 결과로 나타났다는 평가다.
SK그룹은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가 FDA 신약 승인을 받았다고 22일 밝혔다. 이로써 SK바이오팜은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개발, 신약 허가까지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한 국내 최초의 제약사가 됐다.
신약개발은 통상 10년~15년의 기간과 수천억 원의 비용이 투입된다. 또 5000~1만 개의 후보물질 중 단 1~2개만 신약으로 개발될 만큼 성공을 확신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연구 전문성은 기본이고 경영진의 흔들림 없는 육성 의지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영역이다. 엑스코프리 역시 최태원 회장의 뚝심과 투자 철학이 없었다면 빛을 볼 수 없었다는 게 재계 평가다.
SK그룹은 지난 1993년 대덕연구원에 연구팀을 꾸리면서 불모지와 같았던 제약 사업에 발을 들였다. 인구 고령화 등으로 바이오·제약 사업이 고부가 고성장이 예상되는 영역인 데다, 글로벌 시장에 자체개발 신약이 없었던 만큼 한국의 ‘신약주권’을 향한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대부분의 국내 제약사들이 실패 확률이 낮은 복제약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SK바이오팜은 오직 혁신 신약개발에만 매달렸다. 단기 재무성과에 목마른 기업 입장에서 큰 결단이었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 최태원 회장의 비전과 확고한 투자 의지였다.
최태원 회장은 2002년 바이오 사업의 꾸준한 육성을 통해 2030년 이후에는 바이오 사업을 그룹의 중심축 중 하나로 세운다는 장기 목표를 제시했다. 신약 개발에서 의약품 생산, 마케팅까지 모든 밸류체인을 통합해 독자적인 사업 역량을 갖춘 글로벌 바이오·제약 기업을 키워낸다는 비전이었다. 이에 따라 같은 해 생명과학연구팀, 의약개발팀 등 5개로 나누어져 있던 조직을 통합, 신약 연구에 집중하게 하는 한편 다양한 의약성분과 기술 확보를 위해 중국과 미국에 연구소를 세웠다.
2007년 지주회사 체제 전환 이후에도 신약개발 조직을 따로 분사하지 않고 지주회사 직속으로 유지했다. 신약개발이야말로 단기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 지속적인 투자와 장기적인 비전이 담보돼야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성공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SK는 최태원 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수천억 원 규모 투자를 지속했다. 임상 1상 완료 후 존슨앤존슨에 기술을 수출했던 SK의 첫 뇌전증 치료제 '카리스바메이트'가 2008년 출시 문턱에서 좌절했을 때에도 최태원 회장의 뚝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해 SK바이오팜의 미국 현지법인 SK라이프사이언스의 R&D 조직을 강화하고 업계 최고 전문가들을 채용함으로써 독자 신약개발을 가속화했다. 이때 역량을 강화했던 SK라이프사이언스가 이번에 FDA 승인을 얻은 엑스코프리의 임상을 주도했다. SK라이프사이언스는 발매 이후 미국 시장 마케팅과 영업을 도맡을 예정이다.
SK그룹은 신약개발 사업의 집중 육성을 위해 2011년 사업 조직을 분할해 SK바이오팜을 출범시켰다.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꾸준한 신뢰와 지원을 이어온 덕분에 FDA가 요구하는 엄격한 기준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임상 전 단계를 수행할 수 있는 독보적인 노하우와 경험이 SK바이오팜에 축적될 수 있었다는 평가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2016년 경기 판교 SK바이오팜 생명과학연구원을 찾아 "1993년 신약개발에 도전한 이후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20년 넘도록 혁신과 패기, 열정으로 지금까지 성장해왔다"며 "글로벌 신약개발 사업은 시작할 때부터 여러 난관을 예상했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에서 꾸준히 투자해왔다. 혁신적인 신약 개발의 꿈을 이루자"고 구성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2018년 61억 달러(약 7조1400억 원) 규모인 세계 뇌전증 치료제 시장은 2024년까지 70억 달러(약 8조2000억 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SK는 엑스코프리로부터 발생되는 수익을 기반으로 제2, 제3의 글로벌 혁신 신약개발을 지속할 방침이다.
최태원 회장은 의약품 생산 사업에도 공을 들였다. 그는 2015년 SK바이오팜의 원료 의약품 생산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SK바이오텍을 설립했다. SK바이오텍의 전신인 원료의약품 생산사업부가 1998년부터 특허 만료 전의 고부가가치 원료의약품을 글로벌 제약사들에 수출해온 경쟁력에 주목한 것이다. SK바이오텍은 2017년 글로벌 메이저 제약사인 BMS(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의 아일랜드 생산시설을 통째로 인수했다. 국내 원료의약품 생산 기업이 해외 생산설비를 인수한 최초 사례였다. 2018년에는 SK㈜가 미국의 위탁 개발·생산 업체인 앰팩(AMPAC) 지분 100%를 인수하는 글로벌 M&A에 성공했다. 인수 1년만인 지난 6월 앰팩 버지니아 신생산시설 가동을 시작하면서 한국·미국·유럽의 글로벌 생산기지가 모두 전면 가동에 돌입했다.
지난 10월 SK㈜는 의약품 생산법인 3곳을 통합해 SK팜테코를 설립했다. SK바이오텍과 SK바이오텍 아일랜드, 앰팩 등 여러 지역에 분산돼 있던 의약품 생산사업의 지배구조를 단순화해 시너지와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포석이다.
이항수 SK수펙스추구협의회 PR팀장은 "SK의 신약개발 역사는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거듭해 혁신을 이뤄낸 대표적 사례"라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제약사의 등장이 침체된 국내 제약 사업에 큰 자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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