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퇴직연금 사업자 73.8%서 수익률 2% 미만
[더팩트|이지선 기자] 퇴직연금 시장이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정작 수익률은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금융사들이 고객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면서 수익률보다 수수료 챙기기에만 급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퇴직연금 시장이 200조 원 규모로 커지고 있지만 사실상 수익률은 사실상 0%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은행들이 확보한 퇴직연금 자산은 100조 원을 넘기면서 성장하고 있는데 반해 수익률은 1%대에 그치고 있다. 지난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7%였던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수익률일 가능성도 있다.
◆ 예·적금만 못한 퇴직연금 수익률, 금융사 수수료 수익만 '급증'
퇴직연금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먼저 확정급여(DC)형은 퇴직금 운용결과와 관계없이 정해진 금액의 퇴직급여를 수령하는 방식이다. 다음으로 확정기여형(DC)은 근로자의 책임에 따라 적립금을 운용하고 그 성과에 따른 퇴직급여를 지급받게 된다, 근로자가 다녔던 모든 회사의 퇴직금을 하나의 계좌에 적립해 관리하는 상품이 개인형 퇴직연금(IRP)다.
정무위원회 소속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퇴직연금 연간수익률 평균이 확정급여(DB)형 1.48%, 확정기여(DC)형 1.76%, 개인(IRP)형 1.35%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 의원은 물가상승률과 수수료를 감안하면 고객 입장에서는 오히려 손해라고 지적했다.
이 중 퇴직연금 적립금의 90%를 차지하는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연간수익률을 살펴보면 올해 상반기 기준 DB형은 국민은행 1.52%, 하나은행 1.51%, 신한은행 1.45%, 우리은행 1.44%로 순으로 수익을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DC형의 경우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이 1.77%을 기록했으며,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이 각 1.76%와 1.73%의 수익률을 올렸다. IRP형에서는 하나은행 1.41%, 국민은행 1.37%, 신한은행 1.35%, 우리은행 1.28%의 수익 수준이다.
퇴직연금의 저조한 수익률은 지난해 물가상승률인 1.5%를 고려하면 사실상 제로(0)에 가깝다는 해석이다. 예금, 적금 금리보다 못할 뿐만 아니라 수수료를 제외하면 오히려 마이너스 구조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시중은행의 퇴직연금 수수료 수익은 늘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신한은행이 거둔 퇴직연금 수수료 수익은 약 963억 원으로 가장 큰 규모를 기록했다. 이어서 국민은행이 897억 원, 우리은행이 724억 원을 거뒀고, KEB하나은행 544억 원의 수익을 올려 4대 은행의 퇴직연금 수수료 규모는 총 3129억 원에 달했다. 이는 전년도에 비해 20% 증가한 수치이며, 올해 상반기에도 1600억 원을 기록해 수익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업계에선 퇴직연금 수익률이 저조한 이유가 원리금 보장형이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글로벌 시장과 국내 금리가 전반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만큼 원리금 보장형으로 수익률을 올리는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전재수 의원은 "근로자들에게 안정적으로 퇴직급여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금융회사에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제도 운영에 대한 실태파악과 더불어 수수료 인하 등 퇴직연금 제도의 정상화를 위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퇴직연금 수수료 체계 개선해야…보험업계선 "개인연금 활성화 필요" 주장
이에 따라 정부도 퇴직연금 수익률을 개선하는 방안을 논의할 전망이다. 금융감독원은 퇴직연금 수익률 실태조사를 통해 운용 현황을 파악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해 8월 금융위원회는 퇴직연금 감독규정을 개정해 2018년 9월부터는 저축은행 예·적금을 신규 상품으로 편입하는 등 수익률을 끌어올리기에 나섰지만 성과가 미미했다. 이에 수수료 체계나 연금 개시 이후의 수수료율 등을 점검해 개선안을 논의할 전망이다.
은행들도 경쟁적으로 수수료를 내리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7월 퇴직연금 수수료 체계를 전면 개편하고 상품 유형별로 수수료 면제와 인하를 실시하기로 했다. 특히 손실이 난 퇴직연금 계좌에 대해서는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나은행 또한 수수료 인하 이벤트를 벌이면서 DC형 퇴직연금의 자산관리 수수료를 일괄적으로 인하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에 중소기업의 퇴직연금 수수료를 인하한 데 이어 오는 10월 중 사회적 기업이나 공익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 및 시설을 대상으로 수수료를 50% 낮추는 방안을 추진한다. 개인형 수수료도 인하할 계획으로 사회초년생과 연금 수령 고객 대상으로는 운용 수수료를 감면한다. 국민은행도 차등화를 통한 수수료 인하 정책을 추진할 방침이다.
여기에 더해 보험업계에서는 노후를 위해 개인연금 시장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는 시각을 내놨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개인연금으로 채워 노후소득을 확보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보험연구원은 27일 '초고령사회를 대비한 개인연금 활성화 방안' 정책토론회를 열고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의 소득 대체율이 최대 43%에 불과한 만큼 개인연금 시장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강성욱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퇴직연금은 임금 근로자 중심으로 현시적 노후보장 수준이 낮다"며 "소득대체율 70%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개인연금 활성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세중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노후소득 확보 수요 증가와 위험보장 기능에도 불구하고 개임연금보험 시장이 위축되는 이유는 저금리 환경이 지속되고 수수료 제도 및 세제변화, 회계제도 변화 등 제도환경적 요인 때문"이라며 산업의 문제가 아닌 사회안전망 강화 측면에서 활성화가 논의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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