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조직적 은폐" 분개…진료 대기실 분위기는 차분
[더팩트|야탑동(분당)=이민주 기자] 갓 태어난 아기를 바닥에 떨어뜨려 숨지자 이를 은폐하려던 정황이 드러나며 논란이 된 분당차병원이 뒤늦게 해명자료를 내놨다. 분당차병원은 은폐의혹에 대해 의사들이 그리한 것으로 병원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사고 이후 3년이 지나서 나온 입장문은 '몰랐다'는 변명으로 가득 찼고 대중들의 질타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 같은 논란에도 16일 찾은 분당차병원은 여전히 환자들로 붐볐다. 신생아 사망사고 은폐 의혹으로 여론은 분개하고 있지만 병원 내부는 바깥 분위기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지난 15일 한겨례는 분당차병원이 분만 중 신생아를 떨어뜨려 숨지게 한 사실을 은폐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 2016년 8월 분당차병원에서는 한 산모의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신생아를 의료진이 떨어뜨렸다. 소아청소년과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몇 시간 뒤 숨졌다.
분당차병원은 사인을 외부 요인에 인한 사망을 일컫는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기재했다. 이 때문에 부검은 이뤄지지 않았다. 부모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위독해서 숨졌다고 설명했다.
사건 발생 약 2년이 지난 2018년 7월 경찰로 첩보가 접수돼 수사가 시작됐다. 지난 15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증거를 인멸하고 진단서를 허위 발급하는 과정을 주도한 의사(주치의) 2명에 대해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사건이 논란이 되자 분당차병원은 즉각 해명에 나섰다. 레지던트가 신생아를 이송하다 넘어지는 사고가 있었다고 했다. 다만 이 사고가 직접적 사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망한 신생아는 임신 7개월·1.13kg에 불과한 초미숙아상태였다. 분당차병원에 따르면 이 신생아는 태반 조기박리와 태변흡입 상태로 호흡곤란증후군과 장기 내 출혈을 유발하는 혈관 내 응고장애 등 증상을 보였다.
분당차병원은 이번 일의 책임을 물어 부원장과 주치의 B씨를 보직에서 해임했다. 입장문을 통해 사과하고 부모에게 사고를 알리지 않은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인정했다.
당시 레지던트였던 A씨는 "아기를 긴급히 옮기는 과정에서 발이 미끄러져 아기를 안고 넘어졌다"며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후회되고 부모님과 가족들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A씨는 현재 분당차병원에서 펠로우(전임의)로 근무하고 있다.
주치의 B씨도 "상태가 위중하다 보니 여러 질병이 복합된 병사로 판단했다"며 "신생아의 상태를 나타내는 아프가(Apgar) 점수도 5점에 불과한 위험한 수준이었다"고 해명했다. 아프가 점수는 10점 만점이다. 이어 "부모에게 사고를 알리지 않은 것은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었다.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도 했다.
특히 출산 직후 찍은 뇌 초음파 사진에서 두개골 골절과 출혈 흔적이 발견된 사실이 알려지며 신생아의 사인이 외인사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런 병원의 해명에도 대중의 비난은 거세다. 당시 사건을 알고 있던 레지던트, 간호사 등 의료진만 최소 5명이지만 3년이 지나도록 이를 은폐했다는 이유에서다. 은폐가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를 두고 한 누리꾼은 "의료진이 미끄러져서 아기가 바닥에 부딪혔는데 직접적인 사망원인이 아니라는 게 말이 되냐"는 등 반응을 쏟아냈다. 이외에도 "의사로써의 가치를 버리고 사람으로써의 도리를 외면한 후안무치, 파렴치한 병원 관계자와 의사에 엄중한 법의 심판이 내려져야 한다"고도 했다.
인터넷에서는 뒤늦게 사망한 신생아의 부모와 합의를 시도하는 모습을 가리켜 "늑장 대응"이라고 비난했다.
<더팩트>가 16일 분당차병원에 확인한 결과 분당차병원은 경찰 수사가 시작된 후 유가족과 접촉을 시작했다. '부모에 알려야 한다' '사과를 해야 한다' '아픔을 덜어드릴 방법을 강구한다'는 세 가지 원칙을 세우고 피해 부모와 접촉 중이다. 합의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환자단체에서는 조직적인 은폐라는 지적을 제기했다. 분당차병원이 신생아의 의무기록과 사망진단서를 조작하고 의료진의 전자의무기록(EMR) 로그인 기록을 삭제했다고 했다.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수술실·분만실에 CCTV가 있었으면 이 사건이 은폐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의무기록 등을 병원에서 삭제·조작했다. 제보가 아니었다면 부모가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냐"고 했다.
여론의 거센 질타에도 분당차병원은 환자들로 가득 찼다. 실제 본관 주차장과 여성병원 주차장에도 차가 가득했다. 특히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가 있는 여성병원 주차장은 지하 2층부터 지하 5층까지 모두 만차였다.
16일 <더팩트> 취재진이 분당차병원을 방문한 결과 병원은 여전히 환자들로 붐볐다. 병원 경비·주차안내요원 들도 평소와 같은 분위기라고 했다. 한 직원은 "안 그래도 뉴스를 보고 환자가 좀 줄겠다고 생각했다"며 "와 보니 평소와 다를 게 없는 분위기다. 놀랐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도 병원 안 분위기는 평온하다. 사건에 대해 모르는 환자들이 의외로 많았다. 알고 있더라도 "내 진료과가 아니라 왔다"고 했다. 다만 문전 약국들은 처방수가 줄었다고 했다.
본관과 마찬가지로 여성병원에도 환자들이 많았다. 대기 환자이름이 떠 있는 전광판에는 환자들의 이름이 차례로 떠 있었다. 그 아래로 진료 '지연 60분' '지연 30분' 등의 메시지가 떠 있었다.
산부인과 진료를 위해 병원을 찾은 환자들도 환자 수 등 변화를 못 느끼겠다고 했다. 한 환자는 "뉴스에 뭐가 났냐. 몰랐다. 원래 오던 병원이고 집이랑 가까워서 왔다"며 "환자 수도 평소랑 비슷하다"고 했다.
산부인과 진료 대기실에서 만난 또 다른 환자는 "뉴스를 보긴 했다. 그러나 (신생아, 출산은) 나랑은 관련 없는 분야라서 왔다"며 "원래 늘 보던 의사 선생님이 여기 있어서 옮길 생각은 없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대기시간도 평소랑 비슷하게 길고 환자들도 늘 이 정도"라고 했다.
다만 분당차병원 인근 약국에서는 처방수가 줄어들었다고 했다. 향후 더 우려된다는 설명이다. 분당차병원 문전 한 약국에서 근무하는 한 약사는 "어제 확실히 (처방)약을 타가는 환자수가 줄었다. 오늘(16일)도 얼마나 줄지 추이를 보고 있다"며 "절반까지 줄어든 건 아닌 것 같고 조금 줄었다고 느껴지는 정도다. 걱정이 많이 된다"고 토로했다.
한편 분당차병원은 의료그룹 차병원이 지난 1995년 설립한 분당 최초의 종합병원이다. 규모는 연건평 1만4000여평, 지상 11층, 지하 4층이다. 1000병상 규모로 정형외과, 가정의학과, 신경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등 38개 진료과가 있다. 의료그룹 차병원은 지난 1984년 세워진 강남차병원과 여성의학연구소를 중심으로 불임연구를 개척해왔다. 지난 2006년에는 분당차병원 신관에 여성과 소아에 특화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여성병원을 오픈했다. 200병상 규모로 국내 최대 여성소아 전문 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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