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연금사회주의' 현실화"
[더팩트 | 서재근 기자] 국민연금이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해 '스튜어드십 코드' 원칙을 적용하는 쪽으로 방침을 세운 가운데 재계 안팎에서는 기업의 경영활동을 가로막는 '연금사회주의'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이하 기금위)는 전날(16일) 회의를 열고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한 주주권 행사 여부를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이하 수탁자책임위)에서 논의하기로 의결했다.
수탁자책임위는 기존에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를 자문하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확대·개편한 조직으로, 대주주 일가와 경영진의 사익 편취 행위를 비롯해 주주가치 훼손 행위에 대한 주주권행사 여부를 결정한다. 기금위와 수탁자책임위는 오는 3월로 예정된 대한항공·한진칼의 주주총회 일정을 고려, 논의 결과를 토대로 주주권행사 이행 여부와 방식을 2월 초까지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도입한 스튜어드십코드의 첫 적용사례로 한진칼과 대한항공을 정조준한 가운데 재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이라며 반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경영계가 지속해서 요구한 국민연금의 독립성 강화방안은 마련하지 않은 채 스튜어드십 코드만 도입할 경우, 국내 기업의 경영권 위협은 물론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대표 경제 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적용과 관련해 "국내 주식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이 주주권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설 경우 기업들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국민연금은 수탁자 책임 원칙에 따라 과도하게 경영활동에 개입하거나 시장을 교란하지 않도록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등 보수 성향단체도 "국민연금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스튜어드십코드가 정치권에 이용될 수 있고,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게 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자칫 사모펀드 이익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변질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한진칼 지분 확대에 나선 사모펀드 KCGI는 그레이스홀딩스를 통해 한진칼 지분을 10.71% 보유하며 2대 주주에 올라섰다. KCGI가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지분 7.34%를 보유한 3대 주주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로 불확실성을 높인다면 기업의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스튜어드십 코드의 과도한 경영개입을 막기 위한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며 "국내 대부분의 대기업이 정부 시책에 따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상황에서, 행동주의 펀드가 그룹 지분이 집중된 지주회사의 주식을 매입할 경우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지주회사 체제에서 행동주의 펀드 등의 횡포를 막기 위해 차등의결권 등 방어 수단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고 말했다.
'전문성 결여'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안전이 경영의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는 산업의 특수성도 무시할 수 없다"며 "최근 발생한 KTX사고 등은 전문성이 결여된 비전문가가 회사를 운영할 때 안전에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항공산업도 마찬가지로 인력과 조직, 제도, 장비, 시스템 등의 복잡다단한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연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문성을 갖추지 않은 사모펀드 등 외부 간섭이 심해질 경우 안전보다 단기적 이익에 관심이 집중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안전사고가 발생할 위험도 높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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