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지배구조 거푸집 속 '녹인 쇳물' 아니다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최근 국내 산업계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미국 브랜드 컨설팅 업체 '프로펫'이 발표한 '2018 브랜드 연관성 지수(BRI)'에서 삼성전자가 전 세계 기업 가운데 7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삼성전자가 받아 든 성적표는 지난해 10위에서 3계단 오른 것으로 미국을 제외한 브랜드 가운데 가장 높은 순위다. 또한 10위 안에 든 아시아 기업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국내 기업이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상징성'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 별도의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방북 기업인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지 여부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점도 '삼성'이라는 브랜드가 지닌 막대한 영향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국가대표격 기업 삼성의 겉면에 싸인 포장지를 벗겨 보면 분위기는 180도 달라진다. '경영권 방어' '수십조 원에 달하는 실탄 확보' 등 이재용 부회장 책상 위에는 '장고(長考)'를 거듭해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숙제가 쌓여있다.
삼성은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라는 정부 주문에 올해 들어서만 3차례에 걸쳐 계열사 지분 매각에 나섰다. 지난 4월에는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전량(404만2758주)을 5600억 원에 매각했고, 한 달 후에는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을 지키기 위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2700만 주를 1조4000억 원에 팔았다. 이재용 부회장이 방북 중이던 지난 20일에는 삼성전기와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4%를 매각하고 순환출자를 완전히 해소했다.
하지만 삼성 앞에는 여전히 '보험업법 개정안'이라는 메인 이벤트가 남아있다. 보험업법 개정안에 따르면 보험사는 비금융 계열사 지분(산업자본)을 '취득가'에서 '시가'로 바꿔야 하고 총자산의 3% 이상은 보유할 수 없다. 이 공식대로라면 삼성생명은 시가 기준 한도 초과분 14조 3000억 원, 삼성화재는 1조 6000억 원 규모의 삼성전자 보유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 천문학적인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서 유가 증권시장에 미칠 혼란과 함께 삼성전자 경영권마저 휘청일 수 있는 상황에 처했지만 마땅한 출구전략이 없는 실정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재용 부회장 등 오너일가 및 특수관계인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15% 밑으로 떨어진다. 이는 업계에서 흔히 헤지펀드 등 외국계 투기자본 공격으로부터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지킬 수 있다고 보는 지분율 30%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러나 삼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발의된 개정안의 통과 여부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 여당의 갈증은 더해가는 모양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업 경영권과 정면 배치되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정부가 만들어 놓은 '거푸집'에 맞춰 계열사 지분을 녹여내는 사이 엘리엇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 같은 헤지펀드들은 호시탐탐 대기업을 '먹잇감'으로 노리며 발톱을 세우고 있다. 최근 엘리엇이 현대자동차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기를 들고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식의 도를 넘은 요구를 하는 것도 재계에서는 충분히 예상했던 바다. 외국 투기자본 처지에선 우리 대기업이 처한 작금의 현실은 '호재'일 수밖에 없다. 한국정부가 알아서 자국 기업의 손과 발을 묶어주고 있으니 말이다.
한 기업의 지배구조는 거푸집에 들어가는 쇳물이 될 수 없다. '3년', '5년' 단위의 유예기간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더욱이 그 대상 기업의 한 해 매출이 나라 국내총생산(GDP)의 14%를 차지하는 대기업이라면 경영과 직결된 영역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충분한 소통과 협의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흐르는 강물에 세운 보 하나가 물고기들의 산란을 방해하면 결국 물고기 씨가 마르는 법이다. 경제 환경을 외면한 채 기업의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하면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아직은 예측 단계에 머물고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됐을 때 과연 정부가 책임질 수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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