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 사법·사정기관, 한진일가 압수수색 18회 '압박'
[더팩트 | 서재근 기자]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시작은 요란했지만 결과는 보잘 것 없음을 일컫는 말)인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비롯한 한진 일가(一家)에 대한 사정당국 수사 과정을 보면 과연 결과적으로 무엇이 나올지 궁금해진다는 말이 재계에서 돌고 있다. 한진 일가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는 사법·사정기관은 경찰과 검찰, 관세청, 법무부, 국토교통부,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교육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농림축산검역본부 등 무려 11곳에 달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결과물을 내놓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그룹 본사와 한진 일가 자택 등을 압수 수색한 횟수만 따져도 모두 18회에 달한다. 대기업과 기업 총수 일가를 대상으로 한 사정 당국 수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기록이다. 사정당국이 한진 일가를 상대로 수사를 진행했지만 유죄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는지는 의문이다.
기업에 잘못이 있다면 당연히 조사를 받아야 하며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그러나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는 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해치는 일이자, 법치국가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당국이 노골적으로 망신을 주기 위해 수사를 벌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조양호 회장은 지난 12일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근무하던 경비원들에게 회삿돈으로 급여를 지급한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출석해 포토라인에 섰다. 지금까지 조 회장(3회)을 비롯해 한진 일가가 사법 당국 소환 명령에 따라 포토라인에 선 횟수만 13회에 달한다. 특히 조 회장의 경우 지난 6월 서울남부지검 첫 소환 이후 지난 12일까지 한 달에 한 번꼴로 포토라인에 선 셈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사정 당국의 전방위 압박 수사가 '무죄추정의 원칙', '죄형법정주의 원칙'에서 벗어나 수사 기관의 조사 대상자 '망신주기'식으로 변질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관세청은 지난 5월 초 조 회장의 밀수 및 외화 밀반출 혐의 등을 수사하겠다며 그의 평창동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당시 관세청이 조 회장 자택에서 '외부인이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공간'이 있다고 밝혀 이른바 '비밀의 방' 의혹이 일파만파 커졌다.
그러나 조사를 마친 관세청 직원들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상자 두 개가 전부였다. "애초 찾고자 했던 물품은 찾지 못했다"는 게 관세청 측의 설명이었다. 당시 한진그룹 측은 공식 자료를 내고 "(조 회장의) 평창동 자택 2층 드레스 룸 안쪽 공간과 지하 공간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며 "특히 지하 공간은 평소에 쓰지 않는 물건을 보관하는 용도의 창고로 쓰이며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것과 달리 안방 입구 천정 다락과 지하 모퉁이 벽 속에 대형 금고 같은 시설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명한 바 있다.
관세청이 같은 달 대한항공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시행한 압수수색도 마찬가지다. 당시 관세청은 해당 업체가 창고에서 보관해 온 2.5t 트럭 한 대 불량의 물품을 압수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물적 증거 없이 '의심'과 '정황'만 있는 수사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동안 검찰이 법원에 청구한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피의사실들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게 재판부가 밝힌 영장 기각의 결정적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계 안팎에서는 그룹 총수에 대한 무분별한 소환이 이뤄져 반(反)기업정서가 더욱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기업활동이 반기업 정서로 위축되면 글로벌 무대에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 투자가 크게 위축되는 등 국내 경영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재벌 개혁을 앞세운 무분별한 수사가 아니라 신속한 조사로 기업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날로 악화되는 반기업 정서와 이에 따른 정부의 차가운 시선은 재계를 더욱 움츠리게 만들 뿐"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죄가 있다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면서 "사정 당국 수사는 죄형 법정주의와 무죄추정 원칙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사안이 중대하지 않음에도 공개수사를 대대적으로 하는 것은 '처벌'이 아니라 '망신주기'가 아니겠는가"고 반문했다.
한편 한진그룹은 지난 4월 조현민 전(前)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사태를 기점으로 조 회장을 비롯해 그의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사장 등 총수 일가 4명이 경제범죄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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