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신경영 선언 25주년'…이재용 경영구상에 쏠린 눈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삼성은 오는 7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강조한 '신경영 선언' 25주년을 맞는다.
이 회장은 지난 1993년 일부 생산라인에서 불량 부품을 칼로 깎아 조립하는 광경을 지켜본 이후 그룹 내 최상위 경영진을 독일 프랑크푸르트 긴급소집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며 환골탈태 수준의 변화와 혁신을 주문했다.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도 불리는 이 회장의 의 '신경영 선언'은 오늘날 '글로벌 삼성'을 만든 밑거름이자 삼성의 '질적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이 회장의 주문이 가진 상징성과 의미를 곱씹기 위해 삼성은 매년 6월 7일 때마다 '신경영 선언 기념식'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지난 2014년 이 회장의 와병 이후 매년 치러진 별도의 행사도 자취를 감췄다. 복수의 삼성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역시 별도의 행사 없이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신경영 선언 25주년'을 맞는다.
이 회장이 병석에 누운 지 5년이 지난 현재 삼성은 그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권자 자리에 올라있다. '이재용 체제'로의 전환 이후 삼성은 괄목할 만한 수준의 외적 성장을 이어왔다. 매년 실적 최대치를 경신해 온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역대 최대치인 매출 60조5600억 원, 영업이익 15조6400억 원을 기록하며 영업이익 '60조'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새 리더'가 경영권 바통을 이어받은 이후 역대 최대 실적 달성이라는 낭보가 이어지고 있지만, 삼성 내부 공기는 지극히 무겁다. 지난 2017년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으로 사상 초유의 '총수 부재'라는 상황에 직면한 삼성의 위기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수십여 년 동안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등으로 명맥을 이어오던 그룹의 컨트롤타워 미래전략실은 해체됐고,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한 정부 기관의 그룹 지배구조 개편 압박 수위는 하루가 다르게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순환출자고리 해소 작업은 보험업법을 둘러싼 해석 차 등으로 더디기만 하다.
여기에 올해 삼성증권발 금융 사고, 노조 와해 의혹까지 더해진 데다가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날 선 비난과 비판 여론도 여전하다. 이 부회장의 재판은 아직 3심 판결이 남아 있다. 경영복귀 시점 역시 윤곽이 희미하다. 창립 80주년 행사와 지난 1일 열린 26번째 호암상 시상식 등 주요 행사 때에도 이 부회장은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부회장의 정중동 행보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 집행유예로 출소 이후 유럽과 북미, 중국, 일본 등 글로벌 시장을 직접 찾아 네트워크 다지기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에서도 이 부회장의 출장이 신성장동력 발굴에 목적이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시장에서는 이 부회장의 글로벌 행보가 자동차 전장, 인공지능(AI) 분야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한다.
삼성전자의 경영 전략 역시 이 같은 관측에 무게를 더한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달 말 최고혁신책임자(CIO) 직책을 새로 만들고, 산하 혁신조직인 삼성넥스트의 데이비드 은 사장을 선임했다. 다양한 사업 부문을 통합 관리해 각 사업부의 역량을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특히, 은 사장은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골드하우스'가 선정한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 가운데 영향력이 큰 100명에 선정된 인물로 이 부회장이 그리는 '삼성전자의 미래 경영 전략'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업계에의 분석이다.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는 올해 국내는 물론 미국과 영국, 캐나다, 러시아에 잇달아 글로벌 AI 연구센터를 설립한 데 이어 지난 4일에는 AI 연구 역량 강화를 위해 해당 분야 세계적 권위자로 꼽히는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세바스찬 승 교수와 펜실베니아대학교의 다니엘 리 교수를 전격 영입했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의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행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삼성전자의 AI 분야 외부 인사 영입과 CIO 직책 신설 등 파격적인 경영 전략이 이 부회장이 글로벌 네트워킹 다지기에 집중하는 시기와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AI 기술은 다양한 사업부문과 연계되는 만큼 다른 주요 그룹에서도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다. 주력 사업인 반도체에 이어 자동차 전장과 AI 기술이 삼성의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앞으로 해당 분야를 중심으로 공격적이고 활발한 투자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 시점을 날짜로 특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만큼 AI 기술을 비롯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차세대 성장동력을 발굴고하고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는 그의 의중은 이미 삼성의 경영 전략에 반영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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