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3사 가보니…'포장지 처리 코너'로 둔갑한 포장코너
[더팩트|서울역·동대문·왕십리=고은결 기자] "계속 비워도 금방 다시 차요. 손님들도 집에 가져가기 싫을테니까요."
11일 오후 이마트 왕십리점 포장코너 근처에서 만난 환경미화원 박모씨는 제품 포장지로 가득찬 쓰레기통을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소비자들이 구매한 물품들을 보다 편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종이박스와 테이프 등을 구비해 놓은 포장코너 옆에 쓰레기통에는 '포장지'로 가득했다.
쓰레기통을 살펴보니 과자 박스부터 묶음 상품으로 나온 라면 포장지, 잡화 상품 포장에 쓰인 비닐 포장지, 커피믹스 박스 등이 가득했다. 박씨는 "요즘 들어 쓰레기통을 더 자주 비운다. 특히 주말에는 더 심하다"면서 "종이, 비닐 포장지는 물론 페트병 등도 많아 쓰레기통에 담긴 것들을 다시 분리수거하는 작업을 진행한다"고 귀띔했다.
◆ 계산대 앞 포장지 넘실…'쓰레기 대란' 후폭풍?
대형마트가 '포장지 대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11일 <더팩트> 취재진이 롯데마트 서울역점·이마트 왕십리점·홈플러스 동대문점을 살펴본 결과 소비자들이 계산을 끝내자마자 '숙제 하듯' 제품의 일회용 포장재를 버리는 모습이 자주 등장했다.
중국의 폐자원 수입 중단에 따른 '재활용 쓰레기 대란'은 정부의 정상화 방침으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대형마트에서는 '포장지 대란'이 아직도 영향을 주는 모습이었다. 환경부에 따르면 당초 수도권 48개 업체가 수거를 거부했지만 정부대책 설명, 아파트와 수거 업체 간 재계약 독려, 협조요청 등으로 48개 업체가 모두 정상 수거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소비자 머릿속에서는 분리수거 대란에 따른 '쓰레기 부담'은 여전했다. 특히 구매한 물품들을 박스에 보기 좋게 포장해가라고 배려해놓은 포장코너는 오히려 제품 포장지들을 뜯어 처리하는 장소가 돼있었다.
이날 이마트 왕십리점 포장코너에서 만난 한 20대 소비자는 과자 박스를 뜯어 개별 포장된 과자들만 자신의 가방에 넣고 있었다. 이 소비자는 "박스째 가져가면 어차피 포장지는 쓰레기가 될 것"이라며 "내용물만 가져가면 부피도 훨씬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포장지 부피에 대한 부담감 때문일까, 폐박스 보관함에는 종이 박스는 물론 비닐 포장지, 플라스틱 포장재 등이 넘칠 듯 가득했다.
또 다른 소비자는 여성위생용품의 포장을 뜯고 있었다. 그는 "쓸데없는 쓰레기를 가져갈 필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계산을 마친 포장지는 바로 '귀찮은 쓰레기'가 된 셈이다. 그는 최근 '재활용 대란'을 들어봤느냐는 질문에 "워낙 난리인 이슈라서 뉴스에서 봤다"면서 "아파트 엘레베이터에서도 관련 알림문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활용 대란 이후 비닐·스티로폼 수거의 정상화 방침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발생하는 '봉투 쓰레기'를 우려해 천·플라스틱 재질의 장바구니를 직접 챙겨오는 소비자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롯데마트 서울역점 간편생선코너에서 만난 한 70대 소비자는 집에서 장바구니 캐리어를 챙겨왔다. 그는 "계산하고 봉투를 받으면 그것도 쓰레기"라며 "(캐리어를 가져오는게)훨씬 마음이 좋아 늘 챙겨온다"고 말했다. 계산대 앞에서 만난 또 다른 소비자 카트 안에도 직접 챙겨온 장바구니에 담은 물품들이 한가득이었다. 이 소비자는 "(장바구니를 챙겨오는게)환경에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 대형마트까지 덮친 '재활용 대란' 여파…근본적 해결책은
'포장지 대란'으로까지 번진 '쓰레기 대란'은 지난 1일부터 재활용 선별업체가 수거된 폐비닐·폐스티로폼 등을 받지 않기로 하면서 촉발됐다. 업체의 수거 거부는 중국의 폐기물 수입 금지에 따른 가격 폭락이 영향을 미쳤다. 이에 정부는 관련 대책을 쏟아냈지만, 단순히 돈을 푸는 '땜질식 처방'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환경부는 지난 2일 수도권 48개 재활용 업체와 협의해 폐비닐을 정상 수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10일에는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공동주택 폐비닐 수거중단 상황과 대응방안을 보고했다. 환경부는 이번 주 내로 폐비닐 등 재활용 선별업체의 소각처리 비용을 줄일 방침이다. 지방자치단체에는 여전히 수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아파트 단지 등에 대해 직접 수거에 나서고 수거업체와 아파트단지간 계약 조정에 나설 것을 독려할 계획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10일까지 각 지자체별 수거상황을 확인한 결과 서울시는 3132개 단지 중 1610개 단지에서 수거중단사태가 발생했지만 1262개 단지는 수거 정상화 상태로 확인됐다. 나머지 348개 단지는 구청이 직접 수거하거나 민간에 위탁해 수거한다. 경기도는 수거 중단이 발생한 8개 시 모두 지자체가 직접 수거계획을 수립해 고양·과천·수원 3개 시에서는 수거가 정상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대책 발표에도 혼란이 현장에서 가시지 않은 가운데 정부-지자체-업체-시민의 공통된 노력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오고 있다. 김현경 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언론에서는 환경부, 지자체, 수거업체, 시민 중 한 쪽 책임으로 돌리는 경향도 있다"면서 "그러나 모든 주체 간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정부가 분리배출이 쉽고 폐기물이 덜 발생되는 제도를 마련하면 기업들도 환경을 생각한 제품 생산에 앞장서주면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폐비닐 대란에 이어 '폐지 대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김현경 활동가는 "중국의 폐기물 수입 금지에 따라 폐비닐과 스티로폼 외에 페트병, 폐지까지 품목별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각 품목별로 정상화가 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관련 환경부는 12일 오후 '국산 폐지 선매입 및 비축사업' 협약을 체결한다. 이를 통해 주요 제지업체들이 재활용 자원 수거 거부 사태로 수도권 일대에 적체된 폐지 2만7000t을 긴급히 사들여 수거 거부 사태를 해소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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