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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곤의 세상토크] '엄동설한' 대기업, '대통령 시그널'이 필요하다

  • 경제 | 2018-01-08 06:14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등 경제인들이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2018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건배를 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음에 따라 재계 주요 총수들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임영무 기자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등 경제인들이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2018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건배를 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음에 따라 재계 주요 총수들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임영무 기자

[더팩트ㅣ명재곤 기자] 무술년 주식시장 개장일인 2일 대우조선해양 주가는 작년 말의 가격보다 1450 원(10.43%) 급등해 종가 1만5350 원을 기록했다. 다음 날인 3일에는 무려 1850 원(12.05%)이나 폭등, 1만7200 원에 마감됐다. 이틀 만에 20% 넘게 주가가 튀어 오르면서 지난 해 12월 한달 동안의 하락폭을 단숨에 만회했다.

시장에서는 대우조선의 주가 급등 배경을 3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우조선 거제 옥포조선소 방문에서 찾았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우조선에 대통령이 이날 서울에서 열리는 재계 신년회 대신 이곳을 찾은 상황 자체를 최우선 호재로 풀이했다. 이른바 '대통령 효과'였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새해 첫 외부 일정에 시장은 하루 전 부터 주목했다. ' 대통령의 시그널'에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특히 정권 초기에는 한층 두드러진다는 게 시장의 경험칙이다.

새해 들어 재계가 '대통령 동선 시그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런데 그 눈길에는 기대감도 있겠지만 경계심이 우선 자리잡고 있다는 게 숨길 수 없는 현실인 것 같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크고 작은 간극은 둘째치고 국정농단 사건 등으로 재계 총수, 경영인들이 피고인이나 증인으로 법정에 서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근래 만난 10대그룹 몇몇 임원들의 공통된 질문 중 하나다. " 대통령이 대한상의가 개최한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하지 않은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과거 대부분 대통령들이 경제계 신년회에서 덕담과 격려를 주고받던 광경에 익숙했던 이들은 문 대통령이 올해 해당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배경을 두고 이런저런 궁금증을 품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불참을 두고 대기업 정책이 강경 일변도로 나가려는 시그널이 아니냐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몇몇 재벌 총수 및 경영진들이 공동 혹은 각각의 이슈로 법적 다툼 및 수사를 받고 있는 시점에서 재계는 대통령의 불참을 매우 예민하게 바라본다.

국정농단 재판의 증인으로 김승연 한화 회장, 구본무 LG 회장, 손경식 CJ 회장, 허창수 GS 회장(왼쪽부터)이 법정에 설 처지에 놓였다. /더팩트 DB
국정농단 재판의 증인으로 김승연 한화 회장, 구본무 LG 회장, 손경식 CJ 회장, 허창수 GS 회장(왼쪽부터)이 법정에 설 처지에 놓였다. /더팩트 DB

주요 그룹들이 연루된 국정농단 재판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재계는 안테나를 곧추 세우고 있다. 8일 손경식 CJ 회장을 시작으로 11일에는 구본무 LG 회장, 허창수 GS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 뇌물 수수혐의 등으로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한다. 앞서 소진세 롯데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 금춘수 한화 부회장 등이 소환됐다. 8일에는 또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의 비자금 조성을 도운 혐의를 받는 조 회장의 측근 홍 모 씨에 대한 두 번째 영장실질심사가 열린다. 검찰은 조현준 효성 회장의 동생 조현문 부사장의 고발에 따라 조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조사 중에 있으며 지난 2013년 이후 세 번째 효성 본사의 압수수색을 한 바 있다, 재계는 여전히 삭풍 속에 있으며 '엄동설한'에 놓여 있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바쁜 일정을 들어 경제계 신년회 불참입장을 내놨지만 그 날 대통령은 거제 대우조선소를 찾았다. 청와대가 재계 수장들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의도적으로 멀리한 것 같다는 경계론이 확산되고 있다. '거리두기'를 넘어 '군기잡기'위한 정치적 행위라는 해석도 나온다. 대통령과 재계 인사들의 관례적인 첫 만남자리인 경제계 신년인사회를 멀리 한 '바쁜 일정'이 조선소 방문이라는 점을 두고 일부 인사는 '정말 의외'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2일 청와대 신년하례식에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LG 등 4대그룹 대표들이 참석했다고는 하지만 이날 별도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는 뉴스는 찾기 힘들다. 대통령은 이날 "좋은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해소의 큰 전환점을 만들겠다"고 경제정책 방점을 제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부인 김정숙 여사와 7일 영화 '1987'를 관람하면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부인 김정숙 여사와 7일 영화 '1987'를 관람하면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청와대 제공

새해들어서도 문 대통령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통령은 4일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청와대로 초청했고, 5일에는 대한노인회 간부진을 만나 의견을 나눴다. 7일에는 영화 '1987'를 부인 김정숙 여사와 관람하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피해 예술인과 간담회를 가졌다. 오는 10일에는 신년사 발표 및 기자회견을 통해 집권 2년차 구상을 밝힐 예정이다.

이달 중순에는 중소기업인 대표 100여 명과 회동을 추진중이라고 한다. 대기업 중심의 재계 인사들과의 별도 자리를 마련한다는 소식은 없다.

문 대통령은 얼마 남지 않은 평창 동계올림픽 등을 이유로 경제계를 비롯한 모든 단체의 신년회에 불참한다는 기준을 세웠다고 한다. 이해관계가 사안에 따라 엇갈릴 수 있는 단체들과의 의례적인 만남은 자제하고, 하지 않겠다는 방침에 토를 달 이유는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위로하는 자리가 국민들에게 읽혀지는 시그널이 있듯이 재계와의 만남이 주는 시그널도, 만나지 않아서 발생하는 시그널도 있다는 걸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싶다. 밀물에 배가 뜨지만 밀물에 모든 배가 다 뜨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좋은 기업'도 많다.

"국민들의 삶에 기여하는 일이 기업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라고 생각하고 국민 눈높이에 서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박용만 상의 회장의 신년회 발언이 우리 재계의 책임경영, 투명경영, 사회경영으로 이어지게끔 오히려 구속력있는 만남을 자주 갖는 걸 바라는 이들도 적지 않다. '먼저 말을 건네고, 귀를 열어 두는 게' 정치이다.

더불어 대통령의 동선 시그널을 제 논에 물대기식으로 자의적으로 과잉해석하는 것도 경계해야겠다.

sunmoon419@tf.co.kr

문재인 대통령이 부인 김정숙 여사와 7일 영화 '1987'를 관람하면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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