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울고등법원=서재근 기자] "앞으로 삼성그룹에서 '회장' 타이틀은 없을 것이다."
"독대 횟수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면 치매다."
"최태원 회장이 SK텔레콤 회장이라 문자를 고집스럽게 썼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진술 中)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뇌물공여 사건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0차 독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부정한 대가합의' 등 특검이 의혹 제기한 혐의에 관해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항변했다.
27일 오전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 심리로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전현직 임원의 뇌물공여 사건 항소심 결심공판이 열렸다. 재판이 시작되기 20여 분 전부터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이 부회장의 표정에서는 긴장감이 묻어나왔지만, 피고인 신문이 시작되자 이 부회장은 이내 차분한 표정으로 특검을 응시하며 신문을 이어갔다.
이날 신문과정에서 이 부회장은 항소심서 특검이 새로 제기한 2014년 9월 12일 청와대 안가 독대는 물론 '경영 승계', '순환출자 해소' 등 핵심 쟁점과 관련한 질문에 "대답이 길어져서 죄송하다"고 운을 떼며 구체적인 설명에 나섰다.
특히, 그는 진술 과정에서 중간마다 부인의 의미로 고개를 젓거나 특검의 질문에 반문하고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예시와 비유를 드는 등 지난해 말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청문회 때와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4개월여 동안 진행된 1심 재판에서 보여준 것과 다른 화법과 태도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그간 특검은 이 부회장의 '경영 승계'가 그룹 최대 현안으로 '청와대→삼성→최순실'로 이어지는 부정한 청탁 연결고리가 형성되는 근거라고 주장해왔다. '비선 실세' 최순실 씨와 사전에 공모한 박 전 대통령이 삼성에 승마지원 등을 강요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원활한 경영 승계를 도와주겠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설명은 달랐다. 그는 지난 2015년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발생한 순환출자 해소 문제에 관해 "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 능력이다"며 "지난 2008년 이 회장이 투명한 지배구조를 만들겠다며 순환출자 해소를 공언했고, 스스로도 간단한 문제라고 여기며 신경을 크게 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특검이 "별 것 아니라는 사안이 10년이 지난 시점에도 해결이 안 된 이유라도 있느냐"고 되묻자 그는 "시장에 대규모 물량이 쏟아지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로 신중하게 일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며 "(순환출자고리 수가) 기존 86개에서 10개로 줄인 것은 노력이 인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지난 2015년 착공한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 설립과정에서도 '부정한 청탁'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특검의 질문이 이어지자 이 부회장은 고개를 저으며 "15조 원을 들여 공장을 짓는데 저희가 청탁을 할 이유가 있겠느냐 이는 되레 지자체나 국외 다수 국가에서 저희에게 청탁할 사안이다"고 강조했다.
특검 측이 주장한 '청와대 안가 독대'와 관련해서도 이 부회장은 "청와대 안가에서 박 전 대통령을 만난 것은 지난 2015년 7월과 2016년 2월 단 두 번 뿐이며 이 정도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치매다"며 "2차 독대 때 안가를 찾지 못해 세종문화회관에 차를 세워두고 청와대 관계자에 전화를 걸어 위치를 물어봤는데, 3일 전에 독대가 있었다면 직접 청와대 측에 연락했을 리 있겠느냐"며 강한 어조로 항변했다.
이어 이 부회장은 특검에서 지난 2015년부터 지난해 여러 대의 차명폰을 사용한 이유를 묻자 "여름과 가을마다 출시되는 신제품을 사용해보기 위해 기기를 자주 바꾼다"며 "일부 기자들이 가끔 번호를 알고 연락을 하는 경우가 있어 번호도 자주 바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소 지인들과 카카오톡으로만 연락하기 때문에 휴대전화 번호는 내게 큰 의미가 없다"며 "특검이 앞서 진행된 재판에서 최태원 (SK그룹)회장과 문자 연락을 자주 주고받은 경위를 물었는데 이는 최 회장이 (SK)텔레콤 회장이어서 문자를 고집했기 때문이었을 뿐, 그를 제외한 99%는 카톡으로 연락을 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신문 과정에서 가장 강조한 부분은 '경영 승계'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유고 시 (삼성) 회장에 오를 가능성이 큰 것 아니냐"는 특검의 질문에 "이 회장을 끝으로 삼성그룹 회장 타이틀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며 "그룹의 총수, 계열사 대주주의 위치에 오르는 것은 지분 보유량 같은 단순한 산술적 문제가 아니라 대내외적으로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야 하는 문제다. 이는 '누구의 아들'이 아닌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뜻이다"며 속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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