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2017년 정유년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경제계 관련 이슈가 물밀듯 쏟아진 한 해였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중 가장 주목받았던 이슈는 단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이었습니다. '세기의 재판'이라고 불리는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은 아직 진행형인데요. 지난주 재판에서는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고 합니다.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에 나타난 최순실 씨, 그는 어떤 말과 행동을 했을까요.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뿐만 아니라 횡령, 배임 등 경영 비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1심 선고 결과에도 눈과 귀가 쏠린 한 주였습니다. 앞서 실형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는데, 뒷얘기가 궁금해지네요. 정도현 삼표그룹 회장의 장남 정대현 삼표시멘트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올라선 것과 관련해서도 말들이 많았습니다. 정대현 신임 대표의 향후 행보와 기존 최병길 대표의 거취에 주목한 뒤 ICT 분야 최대 이슈인 KT와 SK텔레콤의 '올림픽 통신망 훼손 갈등'에 대해 설명을 듣도록 하죠.
경제는 먹고사는 일과 관련된 분야입니다. 한 나라의 경제가 발전하면 국민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지요. [TF비즈토크]는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경제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모여 한 주간의 흥미로운 취재 뒷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만든 코너입니다. 우리 경제 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사건들을 들여다보기 위해 현장을 누비고 있는 <더팩트> 성강현·이철영·최승진·장병문·서재근·황원영·이성로·이성락·서민지·안옥희 기자가 나섰습니다. 지난 한 주간 미처 기사에 담지 못한 경제 취재 뒷이야기를 지금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 최순실, 특검 '이재룡' 언급에 "기가 막혀서…"
[더팩트ㅣ정리=이성락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전·현직 임원 5명의 뇌물공여 사건 항소심 재판에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고 하던데, 당시 법정의 자세한 이야기를 좀 들려주시죠.
-20일이었습니다. 지난 7월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 1심 45회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후 약 5개월여 만인데요. '삼성 재판'에서 횟수로는 두 번째 법정 출석이지만, 1심 때 특검으로부터 협박을 당했다며 진술을 거부했으니 사실상 이번이 첫 신문이라고 봐도 무방하죠.
-최순실 씨가 지금까지 국정농단 사건 관련 재판에서 보여준 말과 행동은 늘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요. 이번 재판에서는 어땠나요?
-검은색 정장에 검은색 뿔테 안경, 검은색 구두를 신고 재판정에 들어선 최순실 씨는 신문 초반부터 남다른(?) 태도로 특검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는데요. "질문을 분명하게 해달라", "말을 천천히 해달라" 등 할 말은 하고 보자는 그의 대응방식에 특검은 물론 재판부와 변호인단 모두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였죠.
-그렇다고 재판을 방해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되레 본건 재판에서 핵심 쟁점으로 다뤄진 삼성의 승마지원이나 코어스포츠와 체결한 용역계약 부분과 관련한 질문에서는 꽤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답변에 나섰죠.
-'진지하다'는 표현이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데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최순실 씨는 특검으로부터 뇌물 수수자로 지목받은 장본인이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된 신문이 이뤄진 적은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날 최순실 씨의 발언은 특검과 변호인단은 물론 법리해석을 내려야 하는 재판부에도 유의미할 수밖에 없었죠.
-"진술을 거부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던 1심 때와 달리 최순실 씨는 이번 신문에서 특검과 변호인단의 질문에 자신의 경험을 꽤 구체적으로 설명했는데요. 예를 들어 삼성으로부터 받은 용역 계약 대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왜 여러 명의 선수를 선발하지 못했는지를 묻는 말에 독일 현지 세법은 물론 현지 체류 절차 등을 근거로 제시하며 막힘 없이 진술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에 관한 질문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소신을 드러냈는데요. 특검이 최순실 씨가 이재용 부회장의 이름을 이재룡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을 그대로 언급하며 "지난 2015년 11월 박원오(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에게 '이재룡이 말을 사준다고 했지 언제 빌려준다고 했냐'는 말을 했냐"고 묻자 최순실 씨는 "그런 말을 한 적도 없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며 강한 어조로 반박했습니다.
-그리고 최순실 씨는 "하도 기가 막혀서"라고 운을 떼며 "이재용 (부)회장님을 오늘 난생 처음 봤고, 남의 회사 회장에 관해 언급할 이유도 없을 뿐만 아니라 관심도 없다"고 말했죠. 그러면서 "특검과 검찰 조사 때는 물론 내 재판에서도 수차례 얘기했지만, 검찰은 박원오 한 사람의 진술만을 진실로 받아들였다"며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특검을 향한 외침은 이뿐만이 아니었는데요. 최순실 씨는 "독일에 단 한 번만 (특검이) 직접 와서 코어스포츠의 회계 처리 과정을 살피면 자금 사용 내역을 상세히 알 수 있다고 수없이 얘기했지만, 내 얘기는 들어주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최순실 씨의 이날 진술이 특검과 변호인단 양쪽 가운데 어느 쪽에 유리하다고 봐야 할까요?
-그건 재판부의 해석에 달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피고인들의 주장과 배치되는 최순실 씨의 진술도 적지는 않았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동안 특검에서 '말 세탁'이라고 주장한 '말 매매·교환 계약'의 실체가 최순실 씨의 발언을 통해 처음으로 알려졌다는 점인데요. 신문이 끝난 후 현장에서는 마필 소유권이 어느 쪽에 있었는지는 이재용 부회장의 '범죄수익 은닉' 혐의 적용 여부를 가늠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라는 점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최순실 씨의 진술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겠죠.
◆ '설마가 현실로…' 신동빈 집행유예 선고에 취재진 '멘붕'
-경영 비리 혐의로 검찰로부터 징역 10년과 벌금 1000억 원을 구형받았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결국 실형을 피하게 됐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김상동)는 22일 오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상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된 신동빈 회장에게 징역 1년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정말 예상 못 한 결과였는데요. 법조 기자는 물론 경제 기자들 대부분 "집행유예는 힘들다. 최소 3년 이상의 징역이 나올 것이다"라며 법정구속 가능성을 높게 봤습니다. 수갑을 찬 신동빈 회장의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서 선고 공판 진행 도중에 호송차가 있는 곳에서 대기하는 사진 기자들도 적지 않았죠.
-더팩트 취재기자들 역시 사진 기자들 사이에서 호송차가 대기하는 곳으로 이동했는데요. 하지만, 공판 시작 1시간 정도 지나면서 '이상기류(?)'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취재진 사이에서 '집행유예가 확정적이다'라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판부는 신동빈 회장에게 징역 1년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무죄, 그리고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은 징역 4년에 벌금 35억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현장 반응은 어땠나요?
-취재진 대부분 모두 '멘붕'에 빠진 분위기였습니다. 빠른 뉴스 전달을 위해 실형 쪽으로 기사를 준비하던 기자들은 정신없이 속보와 상보를 빠르게 작성하느라 분주했습니다. 사실 '집행유예'는 정말 예상치 못한 결과였던 거죠. 심지어 롯데 관계자 역시 판결이 나오기 전에 "실형을 생각하고 있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나타내기도 했었습니다.
-국민 대부분은 말도 안 되는 판결이라는 반응입니다. 심지어 "피고인이 지배구조 개선에 노력해 왔다는 점과 현재 처한 대내외적 어려움을 감안하면 피고인을 경영일선에서 빼는 것보다 기업 활동과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기회를 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는 판시에 더욱 분개했죠.
-몇몇 지인은 "정의는 어디 갔나" "껌 팔았던 롯데, 정말 대단하다" "재벌 총수들은 절대 징역을 살지 않는구나" "롯데 뒤에서 돈을 얼마나 쓴 거냐" 등 강한 부정적 반응을 보였습니다.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실형까지 생각했던 롯데 관계자는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롯데그룹 임직원들은 더욱 합심하여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죠.
-언론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많은 비교를 하고 있죠?
-맞습니다. 뇌물공여 혐의로 1심 구형에서 징역 12년을 받았던 이재용 부회장은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반면, 검찰로부터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던 신동빈 회장은 1심 선고에서 집행유예를 받으며 자유의 몸이 된 것입니다. 롯데그룹은 어찌됐든 한숨 돌렸지만, 이번 재판부의 판결에 이해할 수 없다는 여론도 상당한 듯합니다.
◆ 삼표시멘트 최병길, '오너가' 정대현 부사장과 각자 대표된 이유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장인인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의 장남 정대현 부사장이 삼표시멘트 대표이사를 맡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최병길 삼표시멘트 대표와 함께 회사를 이끌게 됐는데요. 정대현 대표의 합류가 최병길 대표와의 시너지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정대현 단독대표 체제로 가는 길목인지 관심이 쏠립니다.
-삼표시멘트는 지난 15일 최병길 대표이사 체제에서 최병길·정대현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했다고 공시했습니다. 각자 대표체제는 공통 대표체제처럼 여러 명의 대표이사가 있지만, 권한을 독립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체제를 말하는데요. 각자 대표체제는 오너와 전문경영인 간 역할 분담을 통해 경영 효율 제고의 장점을 살릴 수 있죠.
-그렇군요. 두 대표는 어떤 인물인가요?
-정대현 대표는 지난 2005년 삼표에 입사한 후 꾸준히 경영수업을 받아오다가 2015년 부사장에 올라서며 경영에 참여했습니다. 반면 최병길 대표는 금융계 출신인데요. 지난 1981년 우리은행(구 상업은행)에 입행해 2003년 부행장을 거쳐 2005년 금호생명보험 대표이사까지 역임한 재무통이죠. 2010년 삼표로 자리를 옮겨 동양시멘트 인수를 주도하고 각 사업군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등 경영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두 대표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겠네요.
-맞습니다. 하지만 두 대표가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최병길 대표가 연임해야 합니다. 최병길 대표는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병길 대표의 연임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최병길 대표가 최근 우리은행장에 도전하며 삼표시멘트와 결별을 준비했기 때문인데요. 임기 막바지에 이직을 준비했다는 점에서 연임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겁니다. 그는 지난달 말 우리은행장 최종 후보 2인에 포함돼 손태승 우리은행 글로벌 부문장과 경쟁했고, 결과적으로 마지막 관문에서 탈락했죠.
-최병길 대표의 연임 여부와 관련해 삼표그룹 측 반응은 어떤가요?
-삼표그룹 관계자는 "대표의 거취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고 연임은 내년 3월에 있을 주주총회에서 결정될 것"이라며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 KT vs SKT 깊어지는 갈등…통신망 훼손 논란 마무리 언제쯤
-국내 1·2위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과 KT의 신경전이 흙탕물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올림픽 통신 관로를 놓고 양측의 비난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 들려주시죠.
-이달 초 KT는 "SK텔레콤이 평창동계올림픽에 쓰일 통신 시설을 무단으로 훼손했다"며 SK텔레콤을 고소했는데요. 당시 SK텔레콤은 단순 실수로 발생한 일에 대해 고소했다니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죠. 이후 양측은 통신 관로 훼손의 '고의성'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는데요. 이번에도 KT가 선제공격에 나섰습니다.
-KT는 지난 19일 5세대 이동통신(5G) 취재를 위해 평창을 방문한 취재진 앞에서 "SK텔레콤이 구간 4곳에서 KT 맨홀을 훼손하고 내관 등을 무단 사용한 사실이 추가로 발견됐다"며 SK텔레콤 측에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죠. KT가 지적한 곳은 평창 알펜시아 700GC 입구와 바이애슬론 경기장, 스키점프대, 알펜시아 콘서트홀로 이어지는 3.3km 구간입니다.
-SK텔레콤 측에서 즉각 반발했을 것 같군요.
-맞습니다. KT의 주장이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는데요. SK텔레콤은 "KT가 새롭게 발견했다고 언론에 공개한 곳은 이미 3개월 전에 자사가 강원개발공사 동의 하에 사용하고 있던 지역"이라며 "전혀 문제 될 게 없는 부분을 지적하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정반대의 주장이네요.
-특히 SK텔레콤은 KT의 '경쟁사 흠집 내기' 정도가 지나치다고 맹비난했습니다. SK텔레콤은 "KT가 지적한 곳은 SK텔레콤이 강원개발공사와 임차 계약을 맺어 사용하는 지역으로, 오히려 KT가 8개의 케이블을 넣을 수 있는 강원개발공사 내관에서 6개를 무단 점거하고 있었다"며 "이달 29일까지 그 내관에 KT가 점거 중인 케이블을 빼고 SK텔레콤 내관을 설치하기로 합의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는데요.
이어 "서로 합의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KT가 갑자기 취재진 앞에서 SK텔레콤이 새로운 문제를 일으킨 것처럼 말하는 것을 보고 '언론플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며 "합의가 '구두'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반박할 '증거'가 없다. 그 부분이 저희 입장에서 매우 답답하다"고 토로했죠.
-양측의 감정싸움이 치열하네요. 중재가 필요해 보이는데.
-진실공방이 이어지자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관로와 내관 사용에 대한 이동통신 3사 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꼬이고 있는 갈등의 매듭이 풀어질지는 미지수인데요. 현재 KT는 "SK텔레콤이 통신 시설을 훼손한 건 사실이고, 고소한 상황이기 때문에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SK텔레콤은 "KT가 '흠집 내기'를 시작하기 전에 진행했던 합의 내용에 따라 그대로 일을 진행하면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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