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재근 기자] 지난 2012년 11월 30일 오후 3시 40분. 부인인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관장의 손을 잡고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 앞에 모여든 수십여 명의 취재진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삼성그룹은 이 회장의 회장 취임 25주년을 맞아 지난 취임 기간 동안 공로와 업적을 되돌아보기 위해 기념행사를 열었다. 그해 사장이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삼성 일가가 한자리에 모여 이 회장을 축하했던 이 날의 광경도 어느덧 5년이라는 세월 속에 자리한 기억의 한 페이지가 됐다.
오늘(1일)은 이 회장이 취임한 지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5년 전 그룹 차원에서 이 회장의 업적을 홍보했던 것과 달리 올해는 별도의 행사를 치르지 않고,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 계열사에서는 이날 오전 5분 30초 분량의 사내방송을 통해 '30년을 이어온 약속'이라는 제목의 이 회장 취임 30주년 특별영상을 상영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조용한 30주년'이 될것이라는 관측이 진작부터 나왔다. 이 회장이 지난 2014년 심근경색으로 와병 중인 데다가 이 부회장이 구속 수감 중이기 때문이다. 회사 창립 이후 초유의 사태에 직면한 삼성의 앞날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지만, 총수가 던진 메시지와 이를 기반으로 한 삼성의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1993년 6월 7일 환골탈태 수준의 강도 높은 변화와 질적 성장을 주문한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 이후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삼성은 국내 기업에서는 최초로 글로벌 100대 브랜드 가치 '톱10'(6위)에 오르며 매출 규모만 460조 원(2017년 상반기, 16개 상장사 기준)을 웃도는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갤럭시' 시리즈를 내놓으며 애플의 '아이폰'과 직접 경쟁하는 사실상 유일무이한 경쟁자로 자리매김한 데 이어 올해 최고 실적을 거둔 반도체 부문에서의 성장세는 지금도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시장에서는 오는 2018년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63조 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 회장이 회장직에 올랐던 지난 1987년 삼성의 매출이 9조9000억 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취임 당시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이 회장의 공약은 이미 지켜졌다고 평가해도 어색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변화다. '성과가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이 회장의 경영 DNA와 '잘 하는 것에 집중하자'는 이 부회장의 경영 지침 아래 자연스러운 변화를 꾀했던 삼성이지만, 이 회장의 와병과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최고의사결정권자의 리더십에 비상등이 켜진 상황이다.
더욱이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왔던 미래전략실마저 해체되면서 대규모 인수합병(M&A)을 비롯해 계열사 간 소통, 의사 공유도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치러진 2018년도 정기 인사에서도 삼성전자는 사장단 인사를 단행한 이후 열흘이 넘도록 부사장급 이하 임원 인사 시기를 정하지 못하고 장고를 거듭했다.
삼성의 정통한 한 관계자는 "총수의 '오너십', '리더십'은 재계 서열 1위 삼성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이 회장 와병에도 이 부회장이 버팀목 역할을 하며 전자와 금융, 바이오 등 핵심 3대 신수종 사업을 중심축으로 한 사업구조 개편 작업에도 속도가 붙는 듯했지만, 이 부회장마저 이번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면서 분위기는 다시 무거워졌다.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꾀하겠지만, 내부에서도 '총수 부재'에 대한 위기의식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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