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재근 기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 재판이 변호인 측의 항소장 제출로 2심으로 무대를 옮겨 다시 펼쳐지게 됐다.
지난 25일 '징역 5년'이라는 실형 선고 후 재판정을 빠져나온 삼성 측 송우철 변호사가 "즉각 항소할 것"이라고 밝힌 지 3일 만이다. 4개월여 동안 변호인단과 치열한 법정 다툼을 벌였던 박영수 특별검사팀 역시 29일 오후 "이 부회장 등 삼성그룹 관계자 5명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에 관해 사실오인, 법리오해, 양형부당을 사유로 전부 항소했다"며 2차전 돌입을 예고했다.
선고 당일 재판을 마치고 취재진 앞에 선 변호인들의 표정과 목소리, 반응 하나하나는 '아쉬움'을 넘어 '분노'에 더 가까웠다. 무엇이 그들의 표정을 찌푸리게 했는지 그 속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세기의 재판'이라는 타이틀까지 따라붙었던 이 부회장의 재판 결과가 영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는 느낌만은 지울 수 없다. 특검 측도 조만간 항소장을 제출할 예정으로 알려져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판결임은 분명해 보인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양형을 결정하는 데 있어 '뇌물 범죄에 따른 부정적 영향', '구체적인 뇌물액과 이를 은폐하려고 한 행위' 등을 불리한 요소로, '수동적 뇌물 제공 경위', '명시적이고 개별적 청탁 및 부당한 결과의 부존재', '승계작업과 무관한 지배구조개편의 필요성' 등은 유리한 요소로 꼽았다.
"특검은 삼성그룹의 계열사 현안을 이 부회장의 사적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왜곡하기 위해 '경영 승계'라는 가공의 프레임을 만들어 끼워 맞추고 있다."
재판부의 설명자료를 꼼꼼히 들여다 보던 중 문득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 측의 발언이 떠올랐다. 양형 이유만을 살펴보면, '이 부회장의 사적 이익'이라는 부당한 결과는 존재하지 않았고,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개편은 총수 개인의 승계 목적 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해석이 결코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쯤 되니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큰 물음표 하나가 생긴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수동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이 부회장이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근거는 무엇일까. 이에 관해 재판부가 내놓은 해답은 '묵시적 청탁'이다.
이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에 '최순실', '경영 승계'라는 직접적인 워딩은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사실상 한 쪽에서는 비선에 자금을, 다른 쪽에서는 삼성의 경영 현안처리에 대해 '물밑 지원'이라는 각자의 목적과 대가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이 같은 판단을 두고 혹자는 "무죄추정 원칙이 무너졌다"라며 애초부터 '명확한 증거'는 없었다는 것을 재판부 스스로 인정한 것 아니냐 비판 섞인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본질을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으로 단정하고 "국민들은 대통령 직무의 공공성과 청렴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최대 기업집단 삼성그룹 도덕성에 대한 불신 등 회복하기 쉽지 않은 상실감을 얻게 됐다"라며 실형을 선고했다.
만일 재판부가 '법과 증거로만 판결을 내려달라'는 변호인 측의 호소대로, 증거재판주의에 입각해 "'묵시적 청탁'은 양형의 이유가 될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면, 그에 대한 평가는 어땠을까. "충격적이고, 안타깝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결과는 아니다"라며 난색을 보였던 재계는 물론, 선고 전부터 특검의 공소 내용을 두고 설왕설래가 잇달았던 법조계 관계자들 모두가 재판부의 판단에 반기를 들었을지는 의문이다.
분명한 것은 구체적인 직접 증거 또는 물증 없이 추론에 따른 정황증거로만 유죄판결을 내린 1심 재판부 결정에 국민의 상당수는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을 보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말은 신분과 지위에 따라 차별을 받아서도 안 되지만 역차별을 받아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시장통의 아저씨나, 글로벌 기업의 오너나 똑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하며 형사소송법의 증거주의원칙에 따른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세기의 재판'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모두 같지 않더라도, 어쨌든 1심 재판은 막을 내렸다. 앞으로 전개될 상급심이 문제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지만, '정황'이나 한쪽에 쏠린 '여론'이 아닌 '구체적인 증거'가 판결의 기준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법의 권위가 서고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2심에서는 모두가 수긍할 수 있고, 따를 수 있는 재판부의 엄정한 판결이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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