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앤스타

[TF초점] '금융 매각' 문규영 아주그룹 회장, '자존심 상처' 왜?

  • 경제 | 2017-08-21 05:00
아주캐피탈 노조는 회사 매각으로 고용이 불안한 상태라고 주장하며 지난 6월 27일부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른쪽 상단은 문규영 아주그룹 회장. /강남대로=장병문 기자, 아주그룹 홈페이지
아주캐피탈 노조는 회사 매각으로 고용이 불안한 상태라고 주장하며 지난 6월 27일부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른쪽 상단은 문규영 아주그룹 회장. /강남대로=장병문 기자, 아주그룹 홈페이지

[더팩트ㅣ장병문 기자] 유동 인구 많기로 소문난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두 달 가까이 요란 법석하게 시위가 이어졌다. 올해로 창립 57주년을 맞이한 서초구 강남대로의 아주그룹 본사 앞에서다. 고 문태식 창업주 이어 총수를 맡고 있는 문규영 회장을 상대로 감정 섞인 문구가 가득한 피켓들을 세워두고,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아주그룹과 오너의 민낯을 보여주는 식이었다. 시위의 당사자는 아주캐피탈 노동조합원들이다. 다행스럽게도 노조의 요구안이 합의 단계에 이르러 일단 시위가 중단했지만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 할 경우 재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중견그룹을 대표하는 아주그룹의 장기간 시위는 왜 발생한 것일까.

◆ '그룹 신성장 동력 재편' 문규영 회장, 금융부문 매각 '후폭풍'

아주산업이 지주회사 격인 아주그룹은 지난해 매출 2조 원을 낸 중견그룹으로 20여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문규영 회장은 지난 2004년 그룹 수장에 올랐고, 지난 6월에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수석부회장에 취임해 눈길을 끌었다.

문규영 회장은 그룹 리모델링 일환으로 주력 계열사였던 아주캐피탈 등 금융부문을 매각, 현금을 확보한 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있다. 하지만 문규영 회장의 큰 그림은 아주캐피탈 노조의 오랜 시위로 빛이 발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노조 시위의 명분이나 정당성 유무를 떠나 '좋은 기업문화'를 표방하는 문규영 회장의 자존심에 상처가 난 셈이다.

아주캐피탈 노조는 지난 6월 27일부터 서울 서초동 아주그룹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여왔다. 시위는 일단 중단된 상태이며 집회 장소에는 현수막만 걸려 있는 상태이다. 일단 극단적 상황은 봉합이 됐지만 최종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시위는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아주캐피탈 노조가 두 달 가까이 시위를 벌인 명분은 무엇이고 '회장님'을 겨냥한 피켓을 치운 이유는 뭘까. 아주캐피탈 관계자는 지난 18일 <더팩트>에 "노조와 임금인상 등 몇 가지 요구사항에 대해 협의하면서 집회는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다만 "고용 보장에 대한 요구안은 추가로 협의하지 않고 기존 계약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아주캐피탈 노조 관계자는 "임금인상과 위로금 등을 협의했다"면서 "몇 가지 요구안만 협의하면 시위가 완전히 끝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위는 일단 중단됐지만 양 측은 최종 합의를 앞두고 여전히 미묘한 입장 차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아주캐피탈 노조는 지난 6월부터 아주그룹 본사 앞에서 '그들에게 직원이란 쓰고 버리는 소모품인가?', '12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한 결과, 헌신짝 취급 웬말인가!'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문규영 회장의 사과를 요구했다./강남대로=장병문 기자
아주캐피탈 노조는 지난 6월부터 아주그룹 본사 앞에서 '그들에게 직원이란 쓰고 버리는 소모품인가?', '12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한 결과, 헌신짝 취급 웬말인가!'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문규영 회장의 사과를 요구했다./강남대로=장병문 기자

◆ 아주캐피탈 노조, 한여름 무더위 시위 나선 이유는?

아주캐피탈 노조가 땡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 거리로 나선 것은 지난 6월 회사가 신생 사모펀드 운영사인 웰투시인베스트먼트에 매각되면서부터다. 회사의 주인이 바뀌는 상황에서 노조 측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위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노조는 "그들에게 직원이란 쓰고 버리는 소모품인가?", "12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한 결과, 헌신짝 취급 웬말인가!", "아프다 뒤통수, 대주주의 기만행위 너희가 사람이냐?", "보장하라 고용보장! 보상하라 피땀의 대가를" 등 원색적인 문구가 담긴 피켓을 아주그룹 본사 앞에 세워두고 시위를 벌였다.

이달 중순 시위 현장을 지나가던 직장인 서 모(46)씨는 "현란한 피켓들과 음악 소리 때문에 지나갈 때마다 쳐다보게 된다"면서 "경영진과 노동자 사이에서 갈등이 전혀 없을 수 없겠지만, 경영진은 노동자들과 소통하고 노조는 무조건적인 반발은 지양했으면 좋겠다"면서 시위 이유에 대해 궁금해 했다.

노조가 협의해야 할 상대는 아주그룹이 아니라 인수사인 웰투시인베스트먼트다. 그럼에도 노조가 아주그룹과 문규영 회장을 겨냥해 시위를 한 이유는 매각 과정에서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주그룹 측과 합의 단계에 이르기 전 노조 관계자는 "직원들과 대화 없이 일방적으로 회사가 매각됐다"면서 "매각 과정에서 고용 안정을 요구했지만 회사 측에서는 그 어떤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직원들은 대규모 자본 속에서 12년간 회사를 위해 희생했다. 그런데 대주주가 단 한 마디의 대화 없이 회사를 매각한 것은 직원들을 소모품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주주의 사과를 듣고 싶다"면서 문규영 아주그룹 회장의 사과를 요구하며 시위 배경을 설명했다.

아주그룹 관계자는 아주캐피탈 매각 과정에서 노조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해 고용보장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려 계약했다고 밝혔다.
아주그룹 관계자는 아주캐피탈 매각 과정에서 노조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해 고용보장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려 계약했다고 밝혔다.

◆ 아주 캐피탈 노조, 문규영 회장 사과 요구 이유는?

노조가 문규영 회장의 사과를 요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새 회사에서 고용 보장 조건이 불명확하다는 판단에서다. 아주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아주그룹의 아주산업과 아주캐피탈은 웰투시인베스트먼트와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하면서 아주캐피탈 직원들에 대해 5년간 고용 보장을 유지한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넣었다.

인수사가 직원들에 대한 고용 승계를 5년으로 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3년의 고용 승계 보장을 해주고 있고 노조도 3년 고용 보장을 요구했다. 그런데 노조가 반발한 것은 사측에서 권고사직을 유도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노조 관계자는 "'직원들의 개별적 동의로 인한 퇴직은 보장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계약서에 담겨있는데 사측에서 근로자의 동의를 얻으면 상당 규모의 권고사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수사가 사모펀드인 만큼 2~3년 내 회사를 다운사이징 해서 가치를 높인 뒤 재매각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5년 고용 보장은 의미가 없게 된다"고 덧붙였다.

아주그룹 본사 앞에 놓여있던 노조의 피켓은 지난주 사라졌지만 현수막은 여전히 걸려 있다.
아주그룹 본사 앞에 놓여있던 노조의 피켓은 지난주 사라졌지만 현수막은 여전히 걸려 있다.

◆ "노조 활동 존중하는 만큼 노조도 기업 경영권 인정해줘야"

아주그룹 관계자는 "노조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해 매각이 진행됐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아주캐피탈의 실적이 나쁘지 않은 상황에서 매각한 것은 선제적인 대처였다. 아주캐피탈의 모기업인 아주산업이 대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자금 조달 금리 부분 등에서 경쟁력이 크지 않다. 아주캐피탈을 더 좋은 기업에 매각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2년 전 일본계 자본인 J트러스트와 매각 절차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회사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중단된 바 있다. 이번 매각에서는 고용 안정과 든든한 모기업을 찾는 것에 최우선 가치로 두고 진행했다. 결국 노조가 요구한 3년 고용 보장을 5년으로 늘려 계약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직원들과 대화 없이 매각을 진행했다는 노조의 지적에 대해서 "인수사와 협상 중에 노조와 대화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면서 "노조 활동을 존중하는 만큼 노조도 기업의 경영권을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매각 절차가 이미 끝난 상황에서 노조의 요구가 완벽하게 관철될 가능성이 크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노조는 한 달이 넘는 시위를 통해 임금과 위로금 등에서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핵심이었던 고용 보장에 대해선 협의하지 못해 불씨가 남아 있으며 시위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시위가 한 달 넘게 이어지면서 (아주그룹도)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상황에서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라며 "현 정부가 노동자 친화적인 만큼 회사 측에서도 이른 시일 내에 사태를 봉합하려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jangbm@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