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재근 기자] "정유라가 법정에서 무슨 생각으로 진술했는지 모르겠지만, '비타나V'는 선수마로써 생명이 끝나지 않았다."(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
"김종 전 차관의 법정 진술은 완전히 조작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 재판에서 처음으로 입을 뗀 '피고인'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과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가 '승마 지원' 의혹과 관련해 '삼성에서는 '비선 실세'의 존재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특검의 공소내용 취지와 부합하는 진술을 한 일부 증인들에 관해 "사실이 아니다"라며 강한 어조로 꼬집었다.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에 대한 48번째 재판에서는 박 전 사장과 황 전 전무에 대한 피고인 신문이 진행됐다. 지난 4월 첫 재판을 시작으로 3개월여 만에 치러지는 피고인 신문인 만큼 재판 시작 전부터 이들이 어떤 진술을 할지에 관심이 쏠렸다.
박 전 사장과 황 전 전무는 지난 2015년 각각 대한승마협회 회장과 부회장을 맡았던 인물로 특검은 이들의 임명 배경에서부터 박 전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애초부터 최 씨의 실체에 관해 알고 있던 삼성이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정유라 승마 지원' 지시를 받았고, 안전적인 경영 승계가 절실한 이 부회장이 청와대의 물밑 지원을 받기 위해 두 사람에게 사실상 삼성과 최 씨를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특검은 신문 과정에서 그간 재판에서 나왔던 핵심 증인들의 진술을 제시하며 두 사람의 혐의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는데 이 과정에서 피고인과 열띤 설전을 벌였다. 우선 특검이 가장 먼저 꺼낸 카드는 정유라의 증언이었다. 특검은 황 전 전무에게 "정 씨는 법정에서 '안드레아스 헬그스트란트가 비타나V를 구매할 때 말의 부상이 심해 선수마로서 생명이 끝났다고 생각했음에도 삼성이 이를 애초 구매가보다 더 비싼 값에 판매한 것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삼성에 건넨 10만 유로의 웃돈이 '말 세탁'의 근거라고 주장했다.
황 전 전무는 "삼성에서는 비타나V에 보험을 들어놨다. (정 씨의) 진술대로 말 상태가 좋지 않았다면, 되려 보험처리로 말을 처분했으면 훨씬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얻었을 것이다. 더욱이, 매매 이후 비타나V가 승마대회에서 정유라가 단 한 번도 얻지 못한 점수인 70%를 획득한 것만 봐도 말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박 전 사장의 신문에서는 김종 전 차관의 진술을 두고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특검은 "2015년 1월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으로부터 삼성이 승마협회 회장사를 맡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고, 그의 소개로 박 전 사장과 임대기 제일기획 사장을 만났다"는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의 법정 진술을 제시했다. 김 전 차관은 지난 7일 진행된 이 부회장의 37번째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삼성이 최 씨의 존재를 사전에 알고 최 씨 모녀에 승마 지원을 했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그 근거로 박 전 사장이 자신과 만난 자리에서 '정유라 지원'을 직접 언급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박 전 사장은 "김 전 차관은 2015년 1월 9일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정유라와 같이 유망한 선수를 왜 제대로 지원하지 않느냐'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 삼성의 승마지원 플랜이 시작됐다고 하는데 정작 특검 마지막 조사에서 대질했을 때는 그는 나를 만난 날짜도 특정하지 못해놓고 법정에서는 갑자기 1월 8일이라고 증언했다"라며 "이는 시기상으로도 맞지 않는 것으로 완전히 조작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김 전 차관을 처음 본 것은 같은 해 3월이며 올림픽 준비나 말 구매 얘기는 나오지도 않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정유라의 조력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최순실의 대리인'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가 "2015년 4월 박 전 사장이 정유라가 임신했는지 물어봤다"라고 진술한 것 역시 "2016년 1월 서초 사옥 근처 고깃집에서 점심을 먹은 것이 첫 만남으로 그런 얘기 한 적 없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하면서 "2015년 7월 29일 독일 출장 때 박 전 전무로부터 최 씨의 실체에 대해 듣게 됐고, 그 전까지 최 씨 모녀는 특별 관리대상이나 신경 써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피고인별 신문 내용에 다소 차이는 있었지만, 박 전 사장과 황 전 전무 모두 애초 삼성에서는 최 씨의 존재를 몰랐고, 이후 그의 실체를 알게 된 후에는 '선 마필 매각, 후 지원 중단'이라는 출구전략을 구상했다는 데는 뜻을 같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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