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울중앙지법=서재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서 핵심 증인으로 지목된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신문과정에서 삼성과 관련한 각종 의혹에 대해 '청와대의 개입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특검이 제기한 삼성과 청와대 간 '쌍방' 지원 의혹이 설득력을 잃는 분위기다.
5일 오후 8시 30분 서울 서초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의 재판에서는 전날에 이어 안 전 수석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이 부회장의 '뇌물죄' 사건에서 특검이 공소장을 통해 주장하는 핵심은 다음과 같다.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나 안정적인 경영 승계를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청탁하고, 박 전 대통령은 그 대가로 '비선 실세' 최순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특검이 주장하는 청탁의 주된 내용은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성사와 그에 따른 순환출자 해소,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등 크게 세 가지다. 이를 대가로 청와대가 삼성에 요구한 것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지원, 최 씨와 그의 딸 정유라에 대한 승마지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 등이다.
특히, 안 전 수석은 특검이 삼성과 청와대, 최순실로 이어지는 부정한 청탁과 대가수수 합의 과정에서 '핵심 고리' 역할을 한 장본인으로 지목한 인물로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보건복지부, 국민연금관리공단(이하 국민연금)과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 등 정부 부처 관계자들에게 삼성에 유리한 판단을 하도록 강요했다는 게 특검 측 주장이다.
그러나 이번 증인신문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서 청탁이 오간 정황을 입증할 만한 증거 또는 진술은 나오지 않았다. 안 전 수석이 확실하게 기억한다고 밝힌 내용은 '최서원(최순실), 정유라, 장시호 등에 대해 알고 있지 못했고, 청와대로부터 삼성과 관련한 특정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라는 정도다.
이슈별로 살펴보면, 지난 2015년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과 관련해 안 전 수석은 "검찰과 특검으로부터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양사 합병과 관련해 국민연금의 의결권행사 과정에서 개입했는지를 두고 수십차례 조사를 받았다"라며 "경제수석으로 부임된 이후 대통령으로부터 합병과 관련해 어떠한 지시도 받은 적 없다"라고 진술했다.
이어 "저 역시 최상목 전 경제금융비서관은 물론 김진수 보건복지비서관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전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장 등 그 어떤 사람에게도 합병과 관련해 찬성이든 반대든 방향성 있는 지시를 한 적 없다"고 강조했다.
양사 합병에 따른 순환출자 해소 문제에 관해서도 "저는 재정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공정위 분야에서는 전문성이 가장 취약한 만큼 순환출자 해소와 같은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수정 및 재검토를 지시할 입장도 아니다"라며 "무엇보다 해당 문제에 대해 공정위 자체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위원회가 있는 만큼 공정위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건 역시 박 전 대통령의 지시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난 2016년 2월 14일 정은보 금융위 부위원장으로부터 삼성이 추진하는 금융지주회사 전환 계획에 대해 보고 받았지만, 이슈 자체가 전문적이고, 금융위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보고에 대해 '알아서 처리하라'는 뉘앙스로 대답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또 "정 부위원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다음 날(2016년 2월 15일)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 독대 때 금융지주회사와 관련해 대화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수첩에 기재한 것은 맞지만, 이를 금융위 측에 전달한 적도 대통령에게 금융위로부터 보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전달한 적도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업무수첩에 기재된 메모에 대해서도 안 전 수석은 특검의 공소내용과 다른 진술을 이어갔다. 특검은 업무수첩과 대통령 말씀자료의 내용이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그가 남긴 메모가 실제 독대 내용을 가늠하는 결정적인 '간접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안 전 수석의 설명은 달랐다. 그는 "업무수첩에 기재한 메모는 크게 네 가지로 일반적인 지시, 둘째는 소관 업무, 세 번째는 단순하게 알고 있으라는 차원에서 대통령이 언급한 사안, 마지막은 특정 인물에게 연락하라는 내용이다"라며 "지시사항의 경우 '대책강구' 등의 표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금융지주회사 전환'의 경우 세 번째에 해당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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