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재근 기자]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3차 공판에서 특별검사팀과 삼성 측 변호인단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과 그의 딸 정유라에 대한 삼성의 지원을 지시한 '윗선'의 실체를 두고 날 선 공방을 벌였다.
14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의 심리로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부문 사장(전 승마협회장),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승마협회 부회장) 등 5명에 대한 세 번째 공판이 진행됐다.
이날 양측의 최대 쟁점은 '과연 누가 최순실에 대한 지원을 지시했는가'였다. 특검은 이날 오전 공판에서 강우영 삼성물산 기획관리팀장과 권순범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사회본부 사회협력팀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의 진술 조서를 공개한 데 이어 오후 공판에서는 지난 1월 7일 최지성 전 부회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에서 조사를 받았을 당시 진술 조서를 공개했다.
특히, 이번 공판에서는 이 부회장과 최 전 부회장의 그룹 내 권력 서열을 가늠할 수 있는 진술 내용이 공개됐다. 진술 조서에 따르면 최 전 부회장은 당시 특검 조사과정에서 그룹 내 위치와 역할을 묻는 질문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와병 이후 이 회장을 대리해 그룹 경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라며 "이 부회장은 점차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며, 삼성그룹 전체 경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제가 이 부회장에게 주요 현안을 보고하고 지시를 받지는 않는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아직 과도기 과정에 놓여 있을 뿐, 이 부회장은 이 회장의 장남으로 당연히 삼성의 경영권을 승계받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경영 승계에 대한 견해를 명확하게 드러냈다.
이후 공개된 최순실에 대한 삼성의 지원 경위에 대한 최 전 부회장의 진술 내용에 대해서는 특검과 변호인단의 해석이 첨예하게 엇갈렸다. 최 전 부회장은 특검 조사과정에서 스스로 최 씨 모녀에 대한 삼성의 승마지원과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지원의 의사결정을 내린 장본인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다만, 지난 2015년 8월 박상진 전 사장이 독일에서 최순실의 대리인인 박원오를 만나 '비선 실세'의 존재를 알게 됐고, 이 같은 사실을 보고받게 돼서야 비로소 최순실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됐다는 게 최 전 부회장의 설명이다.
최 전 부회장의 진술 내용과 관련해 특검은 "전형적인 총수 보호를 위한 실무자의 '총대메기'"라고 지적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특검은 "본 사건은 이 부회장이 다른 피고인들에게 뇌물공여 등 범행을 지시했는지가 중요한 쟁점이다"라며 "최 부회장은 본 사건에 대한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진술 내용은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대기업 실무책임자의 전형적인 '총대메기'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과거 다른 대기업에서도 실무자들의 '총대메기'가 논란이 된 사례가 많지만, 이 부회장처럼 직접 개입 증거가 상대적으로 덜했음에도 여러 간접사실 등에 따라 기업 총수의 책임이 인정됐다"며 최 부회장이 허위진술을 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반면, 변호인 측은 특검에서 심증을 앞세운 근거 없는 예단과 책임회피로 일관하고 있다며 특검의 주장을 전면으로 반박했다. 삼성 측은 전날 공판에서도 이 회장과 이 부회장, 최 전 부회장의 사무실 층수를 예로 들면서 "실질적으로 재단 출연금 지원과 같은 문제는 이 부회장이 아닌 최 부회장이 결정권을 갖고 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2017년 4월 13일자 <'이재용 2차 공판' 삼성 내부 권력 크기, 사무실 층수와 비례?> 기사 내용 참조)
삼성 측 변호인은 "특검에서 공개한 진술 조서는 특검 스스로가 유죄를 입증하겠다는 취지로 제출한 것인데 이제 와서 조서에 있는 피고의 진술이 허위라고 주장하면서 그 내용을 다른 취지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태도이며, 최 전 부회장의 진술이 누구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의 허위진술이라는 특검의 주장은 근거 없는 예단이자 책임 미루기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특검의 피의자 조사 방법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진술 조서에 따르면 특검은 최 전 부회장에게 "2014년 4월 언론에서 정윤회 딸 정유라가 대통령으로부터 특혜를 받는다는 '공주 승마' 의혹이 제기됐고, 정유라가 부정한 방법으로 승마 국가대표에 선발됐다는 내용의 기사가 쏟아져 나왔는데 이 같은 사실을 몰랐느냐?"라며 질문을 던진다.
이에 변호인 측은 "'최순실의 딸'이 아닌 '정윤회의 딸'에 대한 논란이 가시화했을 때 최순실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또한, 미전실장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룹과 직접 연관성이 없는 일부 기사 내용을 모른다는 게 상식에 어긋난다고 단정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라며 "최 전 부회장의 피의자 신문조서는 작성 시간만 16시간이 넘고, 같은 내용을 묻는 질문이 수십여 차례나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특검이 원하는 답변을 듣기 위해 피고의 심리적 압박 수위를 높였다는 것이다.
한편, 이재용 부회장은 1, 2차 공판 때 시종일관 곧은 자세를 유지한 채 재판을 지켜보던 것과 달리 이날은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 서류를 검토하고 양옆에 앉은 변호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특검 측 진술을 메모하는 등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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