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권오철 기자]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원장을 지낸 3년 동안 사실상 실제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무려 11건의 특허 출원 발명자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는 의혹이 불거져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9일 특허정보넷 키프리스 검색 결과 권오준 회장은 지난 2010년~2012년 사이 포스코 및 RIST에서 출원한 11건의 특허 출원에서 자신을 공동 발명자로 등재했다. 출원일자 기준 2010년 7건, 2011년 3건, 2012년 1건이다.
주요 특허 내용은 '페아리트계 산화물 분산강화합금 및 그 제조방법' '전기로를 이용한 일관제철시스템 및 일관제철방법' '니켈 함유 원료로부터 페로니켈을 농축 회수하는 방법' '용선을 활용한 고탄소 철계 비정질 합금 및 제조방법' '염소로부터 고순도 탄산리튬을 제조하는 방법' 등이다.
이들 특허 대부분은 이미 상업화가 됐거나 추진 단계에 있다. 포스코는 직무발명보상제도에 따라 직원이 개발한 특허권을 회사가 승계하는 대신 상업화를 통해 발생한 이익을 발명자에게 보상하고 있다. 보상 액수는 매출의 규모에 따라 산정된다. 문제는 이들 특허 내용의 연구개발에 권 회장이 과연 참여했느냐이다.
금속공학 박사인 권오준 회장은 1986년 RIST에 입사해 2009년부터 2011년까지 RIST의 원장으로 지냈다. 이후 2012년부터 포스코 기술총괄 사장을 맡았다. 11건의 특허 출원이 진행됐던 시기에 권오준 회장은 연구원이 아닌 경영진으로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실험실 연구에 참여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주위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권오준 회장이 특허를 출원할 당시 RIST 연구원으로 근무했던 박사 A씨는 "권 원장은 해당 연구에 대한 기본 과제를 제시했을 뿐 실제 연구개발 행위에 참여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권 원장이 왜 공동 발명자로 특허 출원에 등재됐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반문했다.
한 특허법인 변리사 B씨는 연구 과제를 하달한 상급자가 특허 발명자에 해당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면서 "(발명자가 되기 위해서는) 연구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거나 실험 내에서 기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스코 안팎에서 연구직이 아닌 관리직에 있던 권오준 회장이 단 기간 내에 다수의 특허 출원에 등재한 것에 대해 "직위를 이용한 비윤리적 행위"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포스코 회장직 연임을 앞둔 권오준 회장의 행보에 걸림돌로 작용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권오준 회장이 해당 연구에 기여한 것은 원장으로서 아이디어 제공 및 지시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권 회장의 경우, 예컨대 '이런 저런'연구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나 권유를 했을 정도라는 게 관계자들 증언이다. 권오준 회장이 이름을 올린 일부 특허 기술 프로젝트를 이끈 RIST 박사 C씨는 권오준 회장이 발명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진 이유에 대해 "처음 회의 단계에서 (권 회장이) 기본 아이디어를 줬다"고 말했다. 권오준 회장이 일련의 연구를 해보라고 제안한 것이냐는 질문에 C씨는 "그렇다"고 답했다.
특허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변리사 B씨는발명 아이디어 제공자가 특허자로 등재되는 게 일반적이냐는 질문에 "발명자는 해당 연구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거나 실험실에서 같이 연구개발에 참여하는 등의 실체적 기여를 해야 한다"며 단순히 연구 아이디어만 제공한 인물이 공동 발명자로 이름을 올리는 것은 윤리적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권오준 회장의 전공분야 등을 감안할때 전공과 동떨어진 영역에 대한 아이디어 제공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또다른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RIST 출신 박사 D씨는 "권 회장의 전문 분야는 '열연(열간 압연: 금속을 가열해 압연하는 방법)'인데 리튬, 니켈, 티타늄과 같은 전혀 다른 분야의 연구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겠나"고 의문을 나타냈다. 이어 그는 "발명자는 기본적으로 실험에 참여한 연구원에 해당한다"면서 "연구 지시로 특허 발명자가 되는 거면, 키스트(KIST,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원장은 키스트의 대부분 특허에 이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매우 비윤리적인 경우"라고 꼬집었다.
권오준 회장의 전임 RIST 원장이었던 유경렬·홍상복 원장 등은 포항제철소 출신이다. 권오준 회장 후임인 주웅용·우종수·박성호 원장은 연구원 출신이다. 권 회장을 제외한 이들 연구원 출신 원장들이 특허 발명자로 이름을 올린 바가 있느냐는 질문에 RIST 관계자 E씨는 "원장이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다른 RIST 관계자 역시 원장이 특허 발명자 등재한 경우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권오준 회장이 이름을 올린 특허 중 2011년, 2012년에 출원된 '일관제철시스템' 관련 특허에서는 당시 정준양 포스코 회장의 이름도 발견됐다. 2009년부터 2014년 초까지 회장직을 맡은 정 전 회장이 재임 기간에 특허를 출원한 것이다. 정 전 회장은 공동 발명자 명단 중에 맨 앞에 배치됐다. 명단의 앞자리일수록 가장 기여도가 높고 특허의 지분율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RIST측은 포스코의 경영진이 관례적으로 특허 발명자 명단에 포함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옛날에는 그런 일이 발생했을 수도 있는데 최근에는 점점 배제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경영진이 특허 발명자 명단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논문에 직접 연구를 하지 않은 교수의 이름이 들어간 경우"라면서 "정상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권오준 회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윤리경영을 확실하게 정착시켜야 한다"며 "비윤리 행위에 대해서는 지위고하와 경중을 따지지 않고 무관용 원칙을 적용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권오준 회장은 지난해 말 포스코 광고 계열사였던 포레카 강탈 사건, 회장 선임 과정의 청와대 인사 개입설 등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 의혹에도 불구하고 연임 의사를 공표했다.
이달 내로 권오준 회장의 연임 여부를 결정하는 포스코 이사회가 권 회장의 특허 등재에 대해 어떤 해석을 적용할지 주목된다. 권오준 회장의 특허 발명자 등재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권 회장 및 포스코 관계자들에게 수차례 통화를 시도하고 문자를 보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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