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황창규 KT 회장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숨죽이고 있던 황 회장은 새해가 되자마자 "혁신기술 1등 기업에 도전하자"며 정적을 깼다. 결과적으로 황 회장의 신년사는 '경영에 대한 의지'가 강하게 드러난 메시지라는 점에서 업계 주목을 받았다. '함께 KT의 미래를 만들어 가자'는 취지의 메시지가 황 회장의 '연임 도전 여부'를 짐작해볼 수 있는 '사전 예고'로 주변에서는 받아들인다.
황 회장은 현재 자신의 거취 문제와 관련한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회장직 연임 도전에 나서느냐 마느냐 스스로 결정해야 할 시점이다. 이런 가운데 신년사 발표 이후 불참하겠다던 국제가전제품박람회 'CES 2017'에도 돌연 참가하면서 사실상 연임 도전을 선언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황 회장은 'CES 2017'에서 업계 흐름을 파악하고, 뉴욕으로 이동해 미국 통신사 버라이즌 최고경영자(CEO) 등 관계자들을 만나 사업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황 회장이 의욕적인 행보를 보이는 동안 KT는 4일 이사회를 열고 차기 CEO 후보를 추천하는 CEO추천위원회를 구성했다. 이후 황 회장의 연임이 기정사실로 되는 분위기다. CEO추천위원회 구성은 KT 차기 회장 선출을 위한 첫 절차로, 위원회는 내부 규정에 따라 오는 6일까지 황 회장에게 연임 의사 여부를 표명해달라고 요청했다. 황 회장이 연임 의사를 밝히면 위원회는 회장 후보로의 추천 여부를 심사하게 된다.
이제 황 회장의 입에 시선이 쏠린다. 업계는 최근 행보를 바탕으로 황 회장이 '연임' 의사를 굳힌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황 회장이 취임 이후 유의미한 실적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황 회장이 연임 의사만 밝히면 CEO추천위원회에서 거부될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게 업계 안팎의 관측이다. 2014년 취임한 황 회장은 내부 조직을 재정비하고, 기가인터넷을 집중 육성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KT를 3년 만에 연간 영업이익 1조 원 클럽에 복귀시켰다.
일각에서는 황 회장의 '연임 자격'에 대해 의문부호를 던지기도 한다. '최순실 게이트'후폭풍에서 아주 자유롭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CEO로서 보여준 성과로만 연임 자격이 충분하다고 하더라도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과 함께 최순실과 차은택이 추천한 사람을 영입해 최순실이 실소유한 플레이그라운드에 68억 원의 광고를 몰아준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황 회장은 '낙하산 인사 배제'를 원칙으로 내세운 바 있다. 이전 회장들이 끊임없이 낙하산 인사 스캔들에 휘말리며 회사의 값어치를 까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가 열리니 황 회장의 '낙하산 배제' 원칙이 다소 무색해졌다. 이 때문에 지난해 11월 KT가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을 당시 황 회장의 연임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형성되기도 했다. 물론 정치권력 압력에 황 회장도 어쩔수 없는 처지라는 걸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황 회장은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사실상 '칩거 모드'에 돌입했다. 다행히(?) 그가 칩거하는 동안 주변 상황이 많이 달라지긴 했다.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와 특별검사팀의 칼날이 삼성 등 다른 대기업에 집중되면서 황 회장과 KT에 대한 의혹이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탄핵 정국을 맞은 박근혜 정부가 KT 회장 인사에 개입할, 이른바 '외풍'이 사라지면서 오히려 연임 가도가 순탄해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황 회장을 대체할 마땅한 후임자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서둘러 연임 여부를 확정해야 한다는 경영적 측면도 황 회장의 연임 가능성을 높게 점치게 하는 이유다.
황 회장은 조만간 '연임 도전'과 '연임 포기'라는 두 개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진 '도전'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관측이 강하다. 만약 황 회장이 예상대로 '연임 도전'을 선택한다면, 향후 국민을 향해 인사청탁과 관련한 사과와 함께 지배구조를 개선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는 경영 비전을 제시하길 바란다. '깨끗한' 사회를 바라는 국민에게 '깨끗한 경영'을 약속할 때, 국민기업을 다시 이끌 수장으로서 자격을 인정받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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