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황원영 기자] ‘11월 11일이 무슨 날입니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아직까진 많은 사람들이 ‘빼빼로데이’라고 답할 것이다. ‘가래떡데이’에 농업인의 날·지체장애인의 날이기도 하지만 가장 대중적이고 소비가 많이 일어나는 부분이 빼빼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답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빼빼로데이가 생긴 1995년부터 올해까지 20년간 롯데가 거둔 빼빼로 매출은 1조100억 원. 그 매출의 20배를 올해 11월 11일 단 하루 만에 올린 기업이 있다. 바로 알리바바다.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는 중국 광군제(光棍節·솔로데이) 단 하루 동안 20조6723억 원을 벌어들였다. 한 시간에 8조 원씩 거둬들인 셈이다.
광군제는 11월 11일 솔로데이를 맞아 2009년부터 알리바바가 주도한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 행사다. 지난 2009년부터 시작돼 그 역사는 짧지만, 매출 규모는 명불허전 전 세계 1위다. 지난해에도 15조5678억 원에 이르는 매출을 기록했다.
우리나라에도 광군제와 같은 쇼핑 행사가 있다. 9월 말부터 열린 ‘코리아세일페스타’다. 정부와 기업이 손을 잡고 대대적인 할인 행사를 벌였다. 이 기간 국내 기업들이 벌어들인 돈은 8조7000억 원으로, 광군제 하루 매출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코리아세일페스타가 33일간 열린 것을 고려하면 일 매출로 비교하기 힘들 정도다. 광군제는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와 사이버먼데이의 매출(평균 8조 원)을 가볍게 뛰어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다시 한 번 차이나 파워를 느꼈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국내 기업은 물론 국내 소비자들도 광군제에 동참했다. 기업들은 광군제에서 수백 억 원씩 매출을 올렸고, 소비자들은 직구·역직구에 나섰다. 우리나라뿐 아니다. 미국, 홍콩, 러시아 등 200개가 넘는 국가에서 티몰(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인터넷 종합 쇼핑몰)에 접속했다. 알리바바가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을 위협한다는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일화다. 유통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모양새다.
알콩달콩 빼빼로를 나눠먹으며 마음을 전하는 것도 좋지만, 중국의 광군제를 보면 국내 행사에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다. 알리바바가 20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나?
‘K-세일데이’와 ‘코리아블랙프라이데이’를 합친 코리아세일페스타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 행사다. 기업들 역시 ‘역대급’, ‘노마진’이라고 홍보하며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펼쳤다. 하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재고털이’에 그쳤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신상품이나 브랜드 별 할인율은 5~10%에 불과했고, 70~80%씩 파격 세일을 벌였던 제품들은 모두 철이 지난 이월 상품이나 비인기 상품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평소 백화점이나 유통업계가 연말 세일·써머 세일 등을 벌일 때 볼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게다가 내수 진작을 위해 벌인 정책이 결국 면세점 배만 불린 ‘장사’라는 비판도 받았다. 코리아세일페스타에 참가한 업태 중 면세점 매출액은 전년보다 36.6%올랐지만, 백화점과 아울렛‧쇼핑몰, 가전전문점은 각각 8.8%, 2.3%, 1% 증가한 수준에 그쳤다. 이중 중국인 관광객이 차지하는 면세점 매출기여도가 60% 수준을 넘었다. 결국 국내 최대 세일행사도 중국인 관광객에게 기댄 꼴이다.
광군제는 달랐다. 신제품은 물론 인기 제품도 50%씩 대거 할인했고, 70%까지 할인된 제품도 많았다. 싸게 팔고 많이 남기는 ‘박리다매’를 노린 셈인데 제대로 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참여 브랜드도 100만개에 달했다. 직구 사이트를 통해 의류 가격을 알아본 결과 여성 겨울 코트를 1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살 수 있었다. 심지어 신상(올해 출시된 상품)이었다. 18만 원이 넘는 전자 제품도 3분의 1가격인 6만 원대에 살 수 있었다. 세일 기간을 짧게 두고 자국 80~90년대 생을 중심으로 행사를 펼친 점도 주효했다. 실제 알리바바가 거둔 매출 중 82%인 17조9557억 원은 모바일 기기를 통해 이뤄졌다.
이대로 가다간 11월 11일을 맞아 국내 소비자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직구'하고 있을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알리바바가 이날 하루 10조 원, 20조 원, 30조 원 매출을 올리며 나날이 발전해나가는 동안 ‘대단하다’고 박수만 치고 있을 순 없다.
한국의 유통기업은 광군제에서 무얼 고민해야 하나. 중국의 소비 파워를 활용하는 것은 물론, 국내 쇼핑행사 역시 발전적이고 차별화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판 광군제 비지니스를 창출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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