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박대웅 기자] 전국이 폭염으로 녹아내릴 듯 무더웠던 7월 말. 서울 종로구 동대문시장 일대는 물건을 사려는 고객과 하나라도 더 팔려는 상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쪽에선 물건값을 두고 흥정이 벌어졌고, 또 다른 한쪽에선 침샘을 자극하는 기분 좋은 향기들이 가득했다. 또 한 무리의 관광객들은 한국에서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사람 냄새 가득한 동대문시장 일대는 저마다의 땀과 숨 그리고 꿈을 가득한 이들로 생기가 넘쳤다.
<더팩트>는 이곳에서 대한민국 100년 기업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두산그룹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짚어봤다. 서울 종로는 1일로 창립 120주년을 맞는 우리나라 100년 기업의 산실 두산그룹의 출발점이다.
◆'환골탈태' 두산, 배오개 상점에서 종합 중공업 그룹으로
두산의 시원(始原)은 조선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주 매헌 박승직은 조선 말 육의전 폐지와 함께 상인에게 기회가 올 것을 직감, 1895년 8월 서울 종로4가 배오개에 근대적 상점인 '박승직 상점'을 열었다.
현재 종로 2가에서 4가로 이어지는 귀금속 상가 끝자락에 문을 연 박승직 상점은 이후 한인상계의 발전적 본보기가 됐으며 1925년 '주식회사 박승직 상점'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회계처리를 근대화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기업으로 면모를 갖췄다. 이후 1946년 '두산상회'로 이름을 바꾼 박승직 상점은 이후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이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나서며 두산의 여명기를 열었다.
1950년대 두산상회는 무역업의 시작과 OB맥주 설립을 통해 소비재 기업으로 변신을 꾀했고, 1960년대에는 건설과 식음료, 기계산업과 언론, 문화 등 다양한 사업 분야에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현대화와 전문 경영인 제도 도입, 경영의 다각화를 통해 현재 두산의 기틀을 다졌다.
1970년대에는 선진 외국기업과 제휴를 통해 기술 고도화를 이루는 동시에 다양한 연관 사업체 인수합병으로 내실을 다졌다. 1980년대 이후 두산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맥주와 건설, 전자와 유리, 기계와 무역 부문을 중심으로 국외시장을 개척했고, 연관사업과 신규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하며 사업영역을 수평·수직적으로 심화·확대했다.
하지만 19990년대 내수중심 사업은 한계에 직면했다. 당시 주력이던 OB맥주의 시장점유율이 급격이 하락했고, 부채비율이 600%를 넘어서며 경영사정이 악화됐다.
1995년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두산은 변화에 나섰다. 1995년 말 두산은 자체적인 구조조정안을 발표하고 한국3M, 코닥, 네슬레 등 식음료 사업 지분 매각을 시작으로 OB맥주까지 매각했다. 이후 1999년까지 피나는 구조조정을 단행 재무구조 개선에 성공했고, 새로운 성장 엔진 발굴에 나섰다.
새롭게 눈을 돌린 분야는 인프라 지원사업(ISB, Infrastructure Support Business)으로 두산은 도로와 항만, 철도, 공항 등 사회 간접시설뿐만 아니라 에너지와 국방, 생산설비, 물류와 운송설비 등을 총망라한 수천 조원의 IBS 시장에 뛰어들었다.
첫 출발은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인수였다. 두산은 인수 후 저수익 사업이던 제철과 화공 사업을 정리하고 발전, 담수 등 핵심사업에 역량을 집중했다. 이후 두산은 고려산업개발(2003년 인수, 현 두산건설)과 대우종합기계(2005년, 현 두산인프라코어) 등을 차례로 인수하며 소비재 중심 사업 구조를 중공업 중심 중후장대 사업으로 전환했다.
두산의 변신은 계속됐다. 2005년에는 수(水) 처리 전문 기업인 미국 AES(American Engineering Servic Inc.) 사의 미주지역 수처리 사업 부문을 인수해 두산 하이드로 테크놀로지를 설립했으며, 2006년에는 보일러 설계, 엔지니어링 등의 원천 기술을 보유한 영국의 미쓰이 밥콕(현 두산밥콕), 2009년에는 스팀터빈 원천기술을 보유한 체코 스코다파워(현 두산스코다파워)를 인수했다. 2011년에는 순환유동층보일러와 탈황설비 등 친환경 발전 기술을 보유한 독일 AE&E렌체스(현 두산렌체스)를 인수해 보일러, 터빈, 발전기 등 발전사업 3대 원천기술과 친환경 기술을 확보했다.
또 같은해 석탄화력 발전소용 보일러 제조업체 첸나이 웍스(Chennaiworks), 2012년 워터(Water) 사업 부문 전처리 설비 설계 및 제작 기술을 보유한 영국 엔퓨어(Enpure)를 연이어 인수했다. 아울러 2014년에는 신성장 동력으로 연료전지 사업에 진출해 건물용 연료전지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의 클리어엣지파워(ClearEdge Power)를 인수해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영토를 넓혀갔다.
이 밖에도 2014년 두산은 동박적층판 원천기술을 보유한 룩셈부르크의 서킷포일을 인수했고, 지난해 오리콤은 한국 한컴을 인수하며 종합 광고대행사로 발돋움했다. 지난 12일 두산중공업은 ESS(Energy Storage System ·에너지저장시스템) 소프트웨어(S/W)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의 원에너지시스템스(1Energy Systems)를 인수하며 지속적인 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상업으로 시작해 맥주 중심의 소비재 기업을 거쳐 종합 중공업 그룹으로 변모한 두산은 신임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을 정점으로 또 다른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
박정원 회장은 1일 창립 120주년을 두산그룹 사내 포털에 "창립 102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대한민국 최고 기업인 두산의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또 한번의 힘찬 도약을 위해 힘을 모으자"라며 지난 3월 취임 이후 소회와 각오를 밝혔다.
박 회장은 "한국 어느 기업도 밟지 못한 120년 역사를 일궈낸 임직원들의 헌신에 감사드린다"면서 지난 4개월 간 가장 중점을 두고 살폈던 것이 '현장'을 챙기는 일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장 직원들이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모습으로 제품 경쟁력과 생산성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다"면서 "모든 직원의 노력으로 올 상반기에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거뒀고, 재무구조 개선 작업도 사실상 마무리 지어 한층 단단해진 재무 기반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회장은 하반기에도 국내외 현장을 돌며 현장경영을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이면서 "하반기에는 안정된 기반을 바탕으로 영업 성과를 높이는데 보다 주력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세계 경제 현황에 대해 "장기 저성장 기조가 여전하며 잠재적 위험이 커지고 있는 등 여전히 녹록하지 않다"고 진단한 뒤 "두산이 걸어온 120년 역사를 돌아보면 이보다 더한 고비도 수없이 많았으나 버텨왔고, 계속 성장하고 세계로 무대를 넓혀왔다"면서 "이것이 두산의 저력"이라고 임직원을 독려했다.
지난 3월 취임 당시 박 회장은 두산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그룹 재무구조 개선 ▲신규 사업 정착 ▲현장 중시 기업문화 세 가지 과제를 최우선으로 제시했다. 4개월여가 지난 현재, 두산의 현주소는 어떨까.
먼저 지난 2년 간 계속된 그룹 재무구조 개선은 마무리됐다.
두산은 지난 1분기 전 계열사가 흑자로 전환하며 턴어라운드를 달성한 데 이어 2분기 실적 역시 지난해 동기 대비 큰 폭으로 상승했다. 지난달 18일발표한 상반기 실적을 보면 두산그룹의 지주사인 ㈜두산은 상반기 연결기준 영업이익 5579억 원, 당기순이익 4351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영업이익은 51% 늘었고, 지난해 669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던 당기순이익은 1년 만에 큰 폭으로 상승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이같은 실적 개선에 대해 "자회사들의 선제적 구조조정 효과에 따른 수익성 개선과 함께 두산중공업과 두산밥캣 등의 성장세에 따른 것"이라고 풀이했다.
㈜두산의 자회사인 두산중공업 역시 상반기 연결기준 영업이익 4829억 원, 당기순이익 2153억 원을 달성했다. 영업이익의 경우 원가율 개선과 고정비 개선 등으로 지난해 보다 74% 늘어났고, 당기순이익은 영업이익 증가와 이자비용 절감 등으로 지난해 동기 1140억 원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되었다. 중공업은 수주잔고가 17조원 대로 안정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올해 목표 수주액(11.4조원)도 달성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손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 역시 상반기에 영업이익 2847억 원, 당기순이익 3033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영업이익은 40%가 늘어났고, 당기순이익은 344억 원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됐다. 이 같은 실적의 배경에는 두산인프라코어 자회사인 두산밥캣의 실적 호조가 뒷받침되고 있다.
두산밥캣은 2분기에만 매출 1조 1135억 원, 영업이익 1491억 원을 달성했다. 이는 지난해 동기 대비 각각 3.3%, 13.6% 늘어난 수치로 두산밥캣의 매출 비중은 두산인프라코어 전체 매출의 69%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두산밥캣은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확대 등으로 영업이익률이 13.4%를 기록해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두산은 2014년부터 강도높은 재무구조개선 작업에 돌입한 바 있다. KFC를 시작으로 올해 초 두산인프라코어 공작기계 사업, 두산DST, 두산건설 HRSG 사업 등의 매각을 끝으로 사실상의 구조조정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를 통해 2년 간 확보한 현금만 3조 원이 넘는다.
또한 지난 7월 4일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위한 예비 심사 청구서를 제출한 두산밥캣이 연내 상장을 마무리 하게되면 지난해 말 11조원 규모였던 차입금이 연말까지 8조원 대로 대폭 축소되고, 이자보상배율도 2배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00년의 먹거리, 두산 신규 사업 정착
2년 간의 혹독한 재무구조 개선과 함께 두산의 앞으로 100년을 책임질 신규 사업 역시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있다. 두산은 2014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연료전지 사업에 진출했다. 연료전지 사업은 지난해 6월 분당 연료전지 발전 구축사업을 시작으로 2800억 원 규모의 부산연료전지발전소용 연료전지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사업 첫 해에만 5800억 원이 넘는 수주액을 기록하며 안착했다.
연료전지는 화석연료 연소 없이 수소와 산소의 전기 화학 반응으로 전기와 열을 생산하는 신재생 에너지로 두산은 건물용, 규제용, 주택용 연료전지 시장에서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 세계 연료전지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연 평균 30%의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2023년 38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두산은 오는 2020년까지 매출 1조 3000억 원, 영업이익 2400억 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또 다른 신규 먹거리는 단연 지난 5월20일 프리 오픈 한 두타면세점이다. 현재 두타면세점은 신생 면세점인 만큼 초기 안정화에 주력하고 있다. 6월 말 매출 5억 원을 넘어서기 시작한 두타면세점은 10월 그랜드 오픈 전 화장품, 시계, 세계 유수의 명품 등 주요 브랜드 유치를 통해 안정적인 면세사업 수익기반을 확보하고 4분기 중 분기 손익분기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 12일 ESS 소프트웨어 원천기술 보유업체인 미국 원에너지시스템즈를 인수했다. 두산중공업은 이번 인수로 ESS 분야에서 업계 최고 수준의 컨트롤 시스템과 소프트웨어 기술을 확보하게 됐으며, ESS의 설계, 설치, 시운전 등의 과정을 일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ESS는 전력 사용량이 적은 시간에 배터리에 전기를 비축해 두었다가 사용량이 많은 시간에 전기를 공급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설비다.
특히 출력이 일정하지 않은 풍력과 태양광과 같은 신재생에너지는 ESS를 통해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2025년에는 세계 시장이 12조 원 규모로 커질 정도로 전망이 밝다.
두산중공업 COO 정지택 부회장은 "이번 인수를 통해 두산중공업은 글로벌 ESS 시장 공략을 위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며 "높은 성장이 예상되는 국내와 북미 지역을 집중 공략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 동남아와 유럽 지역까지 시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장에서 앞으로 100년의 답을 찾다
박정원 회장은 '현장'을 최우선에 두고 현업에서 기회가 보이면 곧바로 실행에 옮길 줄 아는 현장 중심 기업문화를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는 환경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기에는 현장의 판단과 빠른 대응이 성패를 좌우한다는 경영철학이 바탕에 깔려 있다.
실제로 박 회장은 지난 4월 경남 창원에 있는 두산중공업을 시작으로 인천의 두산인프라코어, ㈜두산 생산현장, 5월에는 ㈜두산 증평 사업장과 군산 두산인프라코어 사업장, 그리고 지난 6월에는 중국 옌타이 생산현장을 방문해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청취하며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직원들을 격려했다. 박정원 회장은 하반기에도 국내외 현장을 꾸준히 방문한다는 계획이다.
한 세기가 넘는 긴 역사를 거치며 오늘의 두산을 있게 한 원천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적 기업인 두산은 120년의 긴 역사를 거치며 많은 변화를 거듭해왔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국내 기업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과감한 혁신으로 빠른 변화를 추구한 결과 이제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ISB(Infrastructure Support Business, 인프라 지원 사업)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때 내수 중심의 국내 최고 소비재기업이었던 두산은 2000년 이후 연평균 12%의 성장률로 2015년 매출 19조원을 기록하고, 매출의 64%를 해외에서 달성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120주년을 맞이한 두산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지만, 한편으로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가장 젊은 기업으로서 또 다른 100년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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