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서민지Ⅱ 기자] 최근 일상생활 속 '구조조정', '경기침체', '경기불황' 등의 단어가 익숙하게 들린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이 같은 경제 관련 단어가 쉴 새 없이 나오자 소비자들은 내성이 생긴 듯 무던한 반응이다. 하지만 피부에 가장 와 닿는 기준금리 인하 소식이 들리자 곳곳에서 한숨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저축 말고 돈 좀 불릴 수 있는 방법 없어?", 금융권 취재를 하는 기자가 이러한 질문을 듣는 것은 흔한 일이다. 기준금리 인하가 발표된 후로는 더욱 그렇다. 가뜩이나 저금리였던 상황에 금리가 더욱 낮아지니 누구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9일 기준금리를 연 1.50%에서 1.25%로 내리기로 결정했다. 1년 만의 금리 인하이자 사상 최저 수준이기도 하다. 기준금리는 한 나라의 금리를 대표하는 정책금리로 각종 금리의 기준이 돼 금융 시장을 움직인다. 금리가 내려가면 소비자들이 다른 투자처를 찾거나 새로운 일에 발을 들이고, 소비를 늘리게 되면서 경기에 활력이 붙는다. 금리 인하는 움츠러든 경제에 활력을 주기 위한 하나의 처방인 것이다.
금융업계는 기준금리 인하에 즉각 반응했다. 대부분의 시중은행이 수신 금리를 중심으로 0.1~0.3%포인트가량 내렸고, 곧이어 여신 금리를 낮추는 움직임도 보이며 금리 인하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가장 당황한 건 금융소비자다. 1%대 금리는 명목상 '제로금리'나 마찬가지이며, 물가상승률을 고려한다면 실질금리는 마이너스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변에서는 "적금 만기가 다가오는데 이자가 많지 않아 재계약을 해야 할지 고민된다. 주식 한 번 해봐야 하나"라며 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눈을 돌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업계에서도 은행보다는 증권과 부동산 등 위험자산에 관심이 쏠려 관련 업계의 호황이 기대된다는 관측이 잇따랐다.
하지만 투자를 생각하던 소비자들은 정작 위험 부담 때문에 돈을 쉽게 옮기지 못하고 있다. 지난 16일 기준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원화 예수금 잔액은 984조401억 원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한 날(973조6249억 원) 대비 불과 5영업일 만에 10조4152억 원 증가했다. 시장에 풀릴 것으로 기대됐던 돈들이 은행에 묶여 있는 것이다.
초저금리는 내성이 생겼던 '경기침체'라는 단어를 한 번 더 일깨워주고 있는 듯하다. 불안감이 커진 소비자들이 안전자산을 찾으면서 다시 은행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취재 도중 만난 금융권 관계자는 이와 관련, "이자수익이 줄어들 것을 감안해도 변동성 높은 경제 상황이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경기가 나아질 상황이 보이지 않자 저금리에도 안전자산을 택하는 것 같다"고 현실성을 감안한 분석을 내놨다. 먹구름 낀 미래를 대하는 소비자들이 오히려 자금을 움켜쥐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고령화와 가계부채에 따른 부작용도 도사리고 있다. 은퇴를 맞아 생산 활동을 중단한 고령층의 경우 은행에 돈을 보관하며 이자소득으로 생활한다. 하지만 금리가 내려가면 이들의 소득 또한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소비는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가계부채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가계부채는 1223조7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125조4000억 원(11.4%)이나 늘었다. 이런 상황에 금리가 더욱 내려갔으니 부채 증가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미 위험 수준까지 도달한 가계부채가 더욱 늘어난다면 내수 위축 등의 상황으로 번질 가능성도 농후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리 인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금리 인하는 소비 진작에 따른 경기 침체 예방, 수출 회복 등의 긍정적 효과와 대출 증가, 상환부담 경감으로 인한 구조조정 지연 등의 부작용을 함께 안고 있어 경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금리 인하는 '양날의 칼'이라 불리기도 한다.
금리 인하가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택할 수밖에 없는 처방인 것은 맞다. 하지만 한 가지 약만 지나치게 복용한다면 내성으로 인해 약발이 받지 않거나,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단순히 '저금리'로 인해 경기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이론적인 얘기는 현 상황에서 먹히지 않는다. 가계부채 제도 정비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경기 활성화를 위해 일자리 창출, 예산 투입 등 다른 처방전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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