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박대웅 기자] "사필귀정이죠."
131억 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석채 전 KT 회장이 1심의 무죄와 달리 2심 선고심에서 횡령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받은 직후 지지자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유죄판결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이 전 회장은 이내 평점심을 찾고 '사필귀정'을 담담하게 취재진에게 읊조렸다. 선고심 유죄판결도 결국은 무죄가 될 것이라는 심경이 담긴듯 했다. '무슨 일이든 결국 옳은 이치대로 돌아간다'는 뜻의 고사성어를 언급한 만큼 2심에 불복해 상고할 것으로 풀이된다.
이 전 회장은 27일 오전 10시 서울고등법원 312호 법정에서 열린 선고심에 푸른색 계열의 넥타이와 하얀 셔츠 그리고 남청색 계열의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참석했다. 다소 긴장한 표정의 이 전 회장은 피고인석에 앉아 재판부의 선고를 기다렸다.
서울고법 형사8부(이광만 부장판사)는 "이 전 회장의 횡령 혐의가 인정된다"면서 징역 1년6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함께 횡령 혐의로 기소된 서유열 전 KT 커스터머 부문장(사장)도 같은 형이 선고됐다.
이 전 회장은 재판부가 횡령 혐의에 대해 유죄를 판결하는 대목에서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이 회장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고, 내부 구성원은 물론 KT와 이사회도 그 존재를 몰랐다"면서 "자신의 체면을 유지하고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비자금을 사용한 점이 인정된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비자금으로 인정된 11억6850만 원 중 사용하지 않고 남아 있는 4500만 원을 제외한 11억2850만 원을 횡령으로 인정했다.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기소 후 KT 이사회가 '유죄로 인정되는 금액에 대해 성과금 지급을 취소한다'고 결정한 만큼 피해 회복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징역형을 유예한다고 밝혔다.
이 전 회장은 2009년 1월부터 2013년 9월 회사 임원들의 현금성 수당인 '역할급' 27억5000만 원 중 일부를 돌려받아 비자금을 조성해 11억6000여만 원을 경조사비 등으로 사용해 횡령 혐의로 기소됐다.
반면 배임 혐의는 1심과 같이 무죄가 인정됐다. 재판부는 "1심의 무죄 판단이 정당하다"며 "KT의 투자는 경영상 필요에 따른 합리적 의사결정"이라고 봤다.
앞서 검찰은 2011년 8월부터 2012년 6월까지 KT가 이 전 회장의 지인이 설립한 OIC랭귀지비주얼(현 KT OIC) 등 3개 벤처업체의 주식 가치를 높게 평가해 비싸게 사들여 회사에 103억5000만 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배임 혐의를 적용했다.
선고심 후 이 전 회장은 '상고할 것이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침묵으로 일관한 채 바쁜 걸음을 옮겼다. 다만, '유죄 판결이 날 것으로 예상했느냐'는 물음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당혹스러운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이 전 회장은 변호를 맡은 홍기태 변호사와 함께 빠른 걸음으로 재판장을 빠져 나가 법원 정문으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앞으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홍 변호사는 '상고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이 전 회장은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법원 정문에 도착한 이 전 회장은 차량이 주차장을 빠져나올 때까지 법원 정문 앞에서 대기하며 재판장을 찾은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이 전 회장은 1심과 마찬가지로 2심에서도 배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은 김일영 전 KT코퍼레이트 센터장에게 "축하합니다. 혐의를 벗었네요"라고 악수를 건넸다. 잠시 후 차량이 도착하고 유죄 판결에 우려를 표하는 지인들에게 이 전 회장은 "사필귀정이죠"라면서 "변호사와 함께 가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이 전 회장에게 이제 남은 시간은 일주일이다. 이 기간 안에 재판부에 상고장이 제출되지 않으면 이날 선고심은 확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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