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박지혜 기자] 요즘 환경부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으로 화학제품에 대한 국민적인 두려움이 커지면서 부랴부랴 화학물질 검사에 나섰지만 오히려 허술하기 짝이 없던 화학물질 관리 수준이 그대로 민낯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최근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일으킨 핵심 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 포함된 제품이 버젓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데도 이를 방관하다 지난달에야 이 제품들을 회수했다.
아울러 시장점유율이 80%가 넘는 한국P&G의 페브리즈 제품에서 페 손상을 유발할 수 있는 제품이 들어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17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환경부는 "인체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준의 유해물질이 들어있지 않다"고 설명했지만 이마저도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유해성 논란이 일었던 페브리즈의 성분은 미생물억제제(보존제)로 쓰이는 벤조이소치아졸리논(BIT)과 항균제인 암모늄 클로라이드 계열의 디데실디메틸암모니움클로라이드(DDAC)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섬유탈취용 페브리즈에는 DDAC가 0.14% 들어있고, 공기탈취용 페브리즈에는 BIT가 0.01% 함유됐다. BIT와 DDAC는 미국 환경보호국(US EPA)과 유럽연합(EU)에서 방향제 탈취제용으로 허가된 성분이다.
문제는 안전을 보장해주는 흡입독성에 대한 위해성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독성실험을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환경부는 한국산업안전보건원에서 DDAC에 대해 흡입독성 위해도를 평가한 자료가 있지만, 14일 가량 노출된 상황에 대한 실험이기에 참고하기가 어렵다고 해명했고, 결국 이 기업의 제품을 소비자가 믿고 사도 되는지에 대한 확답은 주지 않았다.
이렇듯 환경부가 못 믿을 사후 대처를 하고 있는 동안에 국민은 정부가 얼마나 안이하게 일을 해왔는지를 보고말았다. 실제 정부는 지난 1991년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을 시행하면서 그동안 사용되어온 3만7000여 종을 기존화학물질로 지정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겨우 600여 건만 유해성 검사를 실시했다. 약 90%의 물질이 안정성 검사도 없이 그대로 유출될 수 있는 환경이다.
뿐만 아니라 생활화학제품에 들어있는 성분을 모두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아도 된다는 허술한 법 역시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하고 있다. 현행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에 따르면 환경부가 지정한 몇 개 유해물질 성분만 표시하면 될 뿐 모든 물질을 다 밝혀야 할 의무가 제조·판매사엔 없다.
이만하면 평범한 가정을 비극으로 몰았던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이 다시 일어난다고 한들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위험 수준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의 생화학물질 안전관리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편이 시급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정부는 1991년에 멈춰있는 법을 다시 새롭게 다듬고 신규물질에 대한 검사와 그동안 검증되지 않은 물질에 대해서도 모두 전면 조사해야 한다. 실추된 환경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이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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