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vs 론스타 투자자, 첫 국가 소송
한국 정부가 외국인 투자자인 미국계 폐쇄형 사모펀드 론스타 투자자와 벌이는 첫 국가소송(ISD)이 15일 개시된다. 소송액은 무려 5조 원대로 천문학적인 우리나라 국민 세금이 걸려 있다.
론스타는 지난 2012년 11월 한국정부의 외환은행 매각 지연과 불합리한 과세로 46억7900만 달러(약 5조1000억 원) 상당의 손해를 봤다며 세계은행 산하 중재기구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중재를 신청한 데서 비롯됐다.
론스타는 벨기에에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 형태의 자회사들을 통해 외환은행·강남 스타타워 빌딩·극동건설 등에 투자했다. 론스타 측은 이같은 투자 행위가 ‘한-벨기에ㆍ룩셈부르크 투자협정(BIT)’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자회사들이 실체가 없는 만큼 투자협정으로 보호할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세계은행 산하 중재기구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15일 오전 미국 워싱턴D.C. 세계은행 본부 내 ICSID에서 한국 정부와 론스타 관계자 등 소송 당사자와 대리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1차 심리를 개최한다.
ISD는 국외 투자자가 특정 국가에 투자했다가 해당국의 법령이나 정책 등으로 피해를 봤을 때 국제기구의 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통상 최종 판정이 내려지기까지는 1년 이상이 소요되나, 당사자들이 손해배상액에 절충하는 등 합의를 도출할 경우 수개월 내에도 중재가 이뤄질 수 있다.
오는 24일까지 열흘간 열리는 이번 심리는 소송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일반인들이 참관하지 못하는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된다.
1차 심리에서는 외환은행 매각승인 절차와 과세 문제를 둘러싼 론스타 측의 주장과 우리 정부의 반론을 청취하는 초기 구두심문과 관련자들의 진술을 듣는 증인심문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론스타는 국내 로펌인 세종과 미국 대형로펌인 시들리 오스틴을, 한국 정부는 태평양과 아널드 앤드 포터를 각각 소송대리인으로 내세워 첨예한 법리 공방을 전개할 예정이다.
또 이번 심리에는 2007∼2012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승인 과정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금융 당국이나 경제부처 수장들이 증인으로 출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국 정부는 이번 소송전의 중요성을 고려해 법무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기획재정부 등 6개 유관 정부부처 팀장급 실무자 10여 명으로 구성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워싱턴 현지에 파견했다.
이 소송의 쟁점은 소송의 성립 여부를 다투는 관할권 문제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론스타 측은 벨기에에 회사가 있는 만큼 투자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론스타는 또 이 같은 투자협정을 근거로 국세청이 스타타워 빌딩과 하나금융 매각수익 등에 대해 8000억 원대의 세금을 부과한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우리 정부는 론스타 자회사들이 조세회피 목적으로 만든 '도관회사(導管會社·Conduit Company)'들로서 투자협정과 무관한 만큼 세금부과가 당연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와 함께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승인지연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론스타는 2003년 10월 외환은행을 1조3834억 원에 사들인 뒤 2006년부터 되팔려고 국민은행,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차례로 매각협상을 벌이다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2012년에 이르러 3조9157억 원에 하나금융지주에 넘겨 엄청난 차익을 챙겼다.
론스타는 그러나 2007년 9월 HSBC에 외환은행 지분 51%를 5조9376억 원에 매각하기로 계약했음에도 한국 정부가 매각승인을 지연시키는 바람에 더 큰 매각차익을 올리지 못했다며 한국 정부가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론스타의 헐값 외환은행 인수 의혹에 대한 배임 사건과 외환은행-카드 합병 관련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사법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섣불리 매각을 승인해줄 수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외환은행 노조위원장 출신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준 의원은 14일 론스타와 국가 소송에 대해 “정부가 세금으로 소송을 진행하면서 진행과정 일체를 비밀에 붙이고 있다”면서 “소송액이 우리 돈으로 5조 원이 넘는 금액이다. 소송 당사자가 우리나라 정부라 소송에서 패할 경우 배상금이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갈 판국이다. 정부 잘못으로 국민의 세금이 해외로 유출될 위기에 몰렸는데 (정부는) 이유도 묻지 말라고 한다. 이건 엄연한 세금 도적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팩트 │ 황진희 기자 jini8498@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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