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황준성 기자] 대기업이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요즘 이를 스스로 부정하는 언행불일치를 저질렀다. 청년 인재들이 대거 몰리는 공모전 아이디어에 출품된 작품에 대해 응모전 참가조건을 내세워 지식재산권(특허, 실용신안, 상표, 디자인, 저작권)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제출된 응모작은 반환되지 않으며, 공모전 응모작에 대한 지재권은 주최기관 귀속된다.' 공모전을 통해 스펙을 쌓으려는 응모자들의 간절한 바람을 역이용한 강자의 횡포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정부는 지난해 12월 당시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주재로 '공모전 아이디어 보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올해 1월부터 공공부문에 적용된 후 민간부문으로 확산토록 추진하기로 했지만 유명무실이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지식·재산 제도의 기본 원칙에 따라 응모된 아이디어에 대한 권리가 원칙적으로 아이디어 제안자에게 귀속되도록 명문화했다. 주최 측이 일방적으로 공모전 수상작에 대한 지식재산권 등 모든 권리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고, 주최 측이 수상작을 활용하는 것에 대한 아이디어 제안자의 선택권을 강화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과 달리 현실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강자의 횡포에 철퇴를 내렸다. 기업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한 아이디어 공모전이 확산되고 있지만 공모전 주최 측에 의해 아이디어가 도용되거나 지식재산권이 일방적으로 주최 측에 귀속되는 문제가 속출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공정위는 공모전 아이디어를 부당하게 탈취해온 삼성, 현대차 등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대기업에 대해 제재를 가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애플, MS 등과 ‘특허 전쟁’을 불사할 정도로 자기 것을 그 누구보다 소중히 하는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남의 저작권에 대해 소홀히 하는 등 ‘자가당착’의 태도를 보여 실망감을 안겨줬다.
공정위에 따르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롯데쇼핑 등이며 공공기관은 한국도로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국제협력단,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원자력환경공단,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전력공사, 한국공항공사, 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마사회 등이 지식재산권 귀속 사용 관련한 부분에서 불공정성이 확인돼 시정조치를 받았다.
이들은 모두 응모작에 대한 지식재산권이 응모자가 아닌 자신들에 귀속됨을 명시한 약관을 사용했으며, 심지어 응모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해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이들이 불공정 약관을 통해 지재권을 탈취한 응모작 수는 모두 2만4628건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6월 25일 실시한 '휴먼테크 논문대상' 약관은 홍보용 수상 논문집 CD 제작을 위해 자신이 제한적 출판권을 소유한다고 명시했다. 이 공모전에 응모한 작품 수는 1982건에 달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5월 24일 개최해 2722건이 응모한 '브라질 월드컵 응원 슬로건 공모전'에서 롯데쇼핑은 지난해 8월 19일 462건이 응모한 '제4회 롯데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LG전자는 지난해 12월 9일 실시해 1천174건이 응모한 '제1회 LG 모바일 사진대전'에서 약관에 등록되는 작품의 저작권이 모두 기업에 있다고 명시했다.
공정위는 이 같은 약관조항이 응모작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대가 지급 없이 사업자(공공기관)가 양수하는 것으로서 응모자에 부당하게 불리하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또한 수상작에 지급되는 상금이나 상품도 공모전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포상금 내지 격려금 성격일 뿐 권리양수 대가를 미리 정한 개념은 아니라는 방침이다.
사실 그동안 기업들은 수백 명, 많게는 수천·수만 명이 응모하는 작품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자기 것처럼 여겨왔다. 대가 없이 남의 재산을 도용한 셈이다.
공정위의 제재와 같이 응모전에 응모했다고 해서 모든 작품들이 기업 소유라 보기 힘들다. 수천·수만 건의 아이디어를 기업이 응모를 통해 수상작을 선정하고 모두 편취하는 꼴이다. 수상작이라면 그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사용할 수 있지만, 그 외는 응모자들의 아이디어를 존중해 폐기 또는 돌려줘야 한다.
기업이 자기의 특허 등 재산이 소중하듯 응모자들의 재산도 지켜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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