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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계 이광희 문화 엿보기] 싸구려 개그 보려고 비싼 세비 줘야 하나

  • 칼럼 | 2024-09-23 13:42

국회는 말장난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국회 본회의장 전경. / 더팩트 DB
국회 본회의장 전경. / 더팩트 DB

[더팩트 | 이광희 기자] 개그는 관객을 웃기기 위해 하는 익살스러운 대사나 몸짓을 말한다. 개그맨은 이런 익살스러운 행동으로 수익을 올린다. 많은 사람이 웃어주면 그만큼 몸값이 오른다.

가장 재미있는 개그는 자연스러움이다. 의도적으로 웃기려 하면 재미가 없다. 당연히 개그의 맛이 떨어진다. 개그가 정규 방송에서 사라진 것은 그 자연스러움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횟수로 소재가 궁핍해지고 의도적으로 시청자를 웃기려 드니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웃음을 짜내려 하다 보니 시청자들을 짜증스럽게 만들었다. 그래서 한국 정규 방송에서 개그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정확한 내막은 모른다. 그러나 대체로 이러하기에 사라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개그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많은 사람이 그 프로그램 시청하길 원한다면 방송사에서 없애지 않는다. 없애려 해도 그것을 막을 거다. 시청자와 제작자가 동시에 개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꼈으므로 개그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개그는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요소다. 말이나 글을 재치 있게 구사하는 능력인 위트도 다르지 않다. 개그나 위트가 풍성하면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주변에 그런 친구가 있으면 그를 만나는 게 재미있고 즐겁다. 이제 고인이 된 자니 윤이나 코미디언 배삼룡, 이기동, 이주일 같은 분들이다. 혼자서 생각만 해도 싱겁게 웃음이 난다.

최근 희극인들이 국회의원들이 메우고 있다. 텔레비전, 유튜브 등 동영상이 나오는 곳이나 라디오, 뉴스에는 거의 모든 곳에 이들이 등장한다.

우선 이들이 일전의 개그맨들과 다른 것은 얼굴빛이다. 개그맨들은 대체로 뽀시시 했다. 분장을 해서도 그렇지만 젊고 발랄하고 기발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그렇지 않다. 얼굴에 기름기가 질질 흐르는 모습이 역겹다.

게다가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도 탁월하지 않다. 개그맨들이 관객을 웃기기 위해 노력하는 정도의 반도 노력하지 않는 모습이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뱉고 지껄인다. 논법이 맞는지 문맥이 제대로 이어지는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자기주장만 있다. 게다가 싸우기는 왜 그렇게 잘 싸우는지. 서로 온전하게 어울리는 모습이 없다. 생각을 어떻게 하기에 그렇게 다른지. 모든 게 각각이다.

이번 국회에서 오간 대정부 질문 행태만 봐도 그렇다. 공천 개입에 국정농단, 정경유착…. 한쪽에서는 '계엄 준비설'을 주장했다. 근거도 제대로 대지 않고 있다. 그러자 다른 쪽에서 '아니면 말고 식의 괴담 정치'란 말로 응수했다.

현 정부 장관 인사가 '친일 뉴라이트 전성시대'라고 정리했다. 그러자 다른 쪽에서는 전 대통령 옛 사위 특혜 채용 의혹은 '정경유착에 매관매직'이라고 받아쳤다.

또 전 대통령의 딸이 검찰 수사를 비판하며 자신을 '돌에 맞은 개구리'라고 하자 '몰염치한 캥거루'라고 몰아붙였다. "대통령의 딸이 아니었으면, 대통령의 사위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가. 전 정부의 캥거루 게이트다." 재미있어 웃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헷갈린다.

야당에서 현 정부 이후 18건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검사를 탄핵한다고 야단을 떨었다. 그러자 여당에서는 검사와 판사를 겁박하는 것이라고 했다. 당 대표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한 조치라고 받아쳤다.

여의도의 개그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명품백 수수 의혹과 관련해서 "사모님이 디올 백 300만 원짜리를 가져오면 받겠느냐 안 받겠느냐, 제가 사모님 같으면 안 받는다." 물론 의도하는 바가 있다.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의도 개그는 너무 저급하다.

개그와 코미디에도 급이 있다. 그렇다고 너무 고상해지라고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국민을 대신하는 대의기구의 최상위 개념인 국회가 그래서는 안 된다.

대 국민 예의다. 면접을 볼 때나 처음 사람을 만날 때 가능하면 깨끗한 옷을 입고 깔끔하게 단장한다. 평상시에는 일상에 바빠 조금은 느슨해진 모습이라도 이럴 때는 긴장감을 갖는다. 혹 자신의 가치가 손상되는 건 아닌가 하는 바람에 앉음새도 가다듬는다.

국민이 뽑아준 국회의원들은 국민을 대할 때 그러해야 한다. 국민이 주인이고 그들은 스스로 심부름꾼이라고 했으므로 그렇게 국민을 섬겨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 반대다. 선거 때만 고개를 숙이고 섬긴다는 말을 남발한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섬기겠다며 표를 달라고 애걸복걸한다. 하지만 당선이 되고 나면 안색을 바꾼다. 언제 자신들이 그렇게 말했느냐는 식이다. 그렇게 당하기를 수십 번이다.

그럼에도 그 물이 깨끗해지길 바라고 여의도의 물이 맑아지길 기대한다는 것은 사치일까. 이제는 품격 있는 국회를 보고 싶다. 국민의 대의기구로 제대로 일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란 것으로 인식하고 싶다. 내가 그들을 뽑아준 것이 참으로 잘한 선택이란 것을 깨닫고 싶다.

서푼도 안 되는 싸구려 개그를 보기 위해 그 비싼 세비와 백여 가지가 넘은 특권을 준 게 아니다. 여의도의 한량들은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며 혐오감에 모두가 고개를 돌리게 될 게다. 그리되면 개그 프로그램이 정규 방송에서 하차하듯이 국회도 국민이 하차시킬 것이다.

국회 본회의장 전경. / 더팩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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