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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영의 정사신] '체포동의안 폭탄' 안은 이재명의 딜레마

  • 칼럼 | 2023-02-27 00:00

체포동의안 가·부결 앞에 놓인 이재명과 민주당의 미래
당도 살리고 본인도 살지, 당과 함께 정쟁 소용돌이 휩싸일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검찰을 '오랑캐'로 비유하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 대표가 이처럼 강경한 태도를 보인 배경엔 지지층 결집과 함께 27일 체포동의안 표결에 따른 당내 이탈표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새롬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검찰을 '오랑캐'로 비유하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 대표가 이처럼 강경한 태도를 보인 배경엔 지지층 결집과 함께 27일 체포동의안 표결에 따른 당내 이탈표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1636년 12월(음력)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는 화친과 항전을 놓고 고민에 빠진다. 화친을 주장하는 주화파, 외세의 침략을 죽음으로써 막아내자는 척화파는 인조를 앞에 두고 논쟁을 벌였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척화파인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식)과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은 인조 앞에서 아래와 같은 논쟁을 벌인다.

김상헌 "이 문서가 정녕 살자는 문서이옵니까?"

최명길 "신의 문서는 글이 아니라 길이 옵니다. 전하께서 밟고 걸어야 할 길이 옵니다."

김상헌 "명길이 말하는 삶은 곧 죽음이옵니다. 신은 차라리 가벼운 죽음으로 죽음보다 더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니다."

최명길 "죽음은 가볍지 않사옵니다. 전하, 상헌이 말하는 죽음으로써 삶을 지탱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김상헌 "명길은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삶을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옵니다."

최명길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사옵니다. 무엇이 임금이옵니까? 오랑캐 발밑을 기어서라도 제 나라 백성이 살아갈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자만이 비로소 신하와 백성이 마음으로 따를 수 있는 임금이옵니다. 지금 신의 목을 먼저 베시고 부디 전하께서 이 치욕을 견뎌주소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 '남한산성'의 명장면 중 하나인데, 인조는 화친과 항전을 놓고 고민에 빠진 모습이 생생하다. 사실 어떤 결정도 인조에게 득 될 것이 없었다. 인조와 대비될 수 없지만, 현재 정치 상황만 놓고 보자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상황과 묘하게 닮은 것 같기도 하다. 24일 국회에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보고되면서 27일 가부가 동료 의원들의 손에 결정된다.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을 놓고 민주당 내 이른바 친명계와 비명계 의견도 분분했다. 인조를 앞에 두고 김상헌과 최명길이 논쟁을 벌인 것처럼. 검찰을 청나라와 비유할 수 없으니 '화친' 자체는 존재하기 어렵다는 점이 분명 다르다.

지난 24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 발언하는 모습. /이새롬 기자
지난 24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 발언하는 모습. /이새롬 기자

민주당 내부 논쟁은 이 대표가 스스로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것이냐, 아니면 국회에서 불체포특권을 이용해 검찰과 싸울 것이냐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비명계는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고 당당히 조사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친명계는 검찰의 수사 자체를 '정치 보복' 등으로 규정하며 항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 역시 죄가 없음에도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당내 의견이 분분했지만, 민주당은 지난 21일 의원총회를 열고 체포동의안에 대해서는 '부결'로 의견을 모았다. 다만, 비명계를 중심으로 '이번만'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고 체포동의안 부결을 확신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 내 이탈표다. 이 대표도 이탈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지난 23일이다. 이 대표는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47분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검찰을 '오랑캐'에 비유하며 비판했다.

"국경을 넘어 오랑캐가 불법 침략을 계속하면 열심히 싸워서 격퇴해야 된다. 오랑캐 침입 자체를 막을 방법, 회피할 방법이 있느냐. 없다."

검찰을 오랑캐로 지칭한 이 대표가 정치적으로 결사 항전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문제는 앞서 비명계에서 나오는 목소리다. 이번 체포동의안은 부결이지만, 다음은 이 대표가 대표직과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고 직접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곧 검찰이 앞으로도 수차례 영장을 재청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27일 국회의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은 '부결'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비명계를 중심으로 차후 발생할 체포동의안 등은 대표직 사퇴 후 대응을 주문하고 나서면서, 이 대표가 어떤 결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고심하는 이 대표. /이새롬 기자
27일 국회의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은 '부결'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비명계를 중심으로 차후 발생할 체포동의안 등은 대표직 사퇴 후 대응을 주문하고 나서면서, 이 대표가 어떤 결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고심하는 이 대표. /이새롬 기자

이 대표로서는 한 번의 체포동의안이라는 고비는 무난히 넘길 것 같다. 하지만 그다음이 또 문제다. 앞서 김상헌과 최명길의 논쟁을 지켜본 인조의 결단은 이랬다. 1637년 1월 30일(음력) 인조는 묘시(오전 5시~7시) 무렵 세자 및 대신들과 호위군을 동반하고 남한산성 서문을 빠져나와 청태종의 지휘 본부가 있던 삼전도로 향했다. 인조는 3번 무릎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예를 표했다. 이른바 '삼전도의 굴욕'이다.

인조는 삼전도의 굴욕 이후 조선의 왕으로서 이렇다 할 어떤 것도 남기지 않았다. 청나라에 고개 숙이며 목숨은 부지했을지언정 인조의 왕권은 땅에 떨어졌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조선의 왕이 된 것이다. 이 대표의 딜레마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번은 넘길지언정 다음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유인태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라디오에서 한 발언은 이 대표에게 의미하는 바가 큰 것 같다. 그는 이 대표가 자진해서 법원에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가야 한다는 지적에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당당하게 가면 누가 거취를 갖고 얘기를 할 거며, 당 지지율도 꽤 올라갈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 대표의 구속 우려에도 "되면 어떠냐. 그 정도 모험도 안 하고 자꾸 거저먹으려고 하면 되느냐"며 "적어도 대표가 되고, 정치적으로 큰 사람이라면 '내가 들어가면 어때요' 하는 모습을 (국민이) 좀 원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27일 체포동의안이 부결된다면 후 이 대표가 어떤 길을 걸어갈지 궁금해진다. 당도 살리고 본인도 살지, 당과 함께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 갇힐지 말이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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