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 장제원과는 '설전', 尹대통령에겐 '찬사'
당 대표 출마 선언 늦어질수록 국민 피로감 커질 듯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정치권의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집어삼키고 있다. 얼마 만의 스포트라이트인지 모르겠지만, 나 전 의원 입장에서 이런 관심이 나쁘지 않을 것이다. 즐기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알려진 것처럼 국민의힘은 오는 3월 8일 전당대회를 개최한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집권 2년 차에 개최된다는 점과 2024년 총선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당 대표로 누가 선출되느냐는 초미의 관심사다. 현재는 이른바 '친윤'이 대세다. 하지만 결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요즘 나 전 의원이 정치권 이목을 끄는 것도 전당대회 때문이다. 그의 당 대표 출마 여부가 친윤계의 정치 역학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최대 관심사다. 나 전 의원도 저울질 끝에 출마로 마음을 정한 듯하다. 그를 돕는 주변인들과 정치권 전망이 그렇다. 또, 나 전 의원 스스로 "요즈음 제일 많이 듣는 말씀은 '당대표 되세요'입니다"라고 밝혔으니, 출마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여론조사 결과도 나 전 의원이 출마를 고심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것도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나 전 의원은 경쟁자인 김기현·안철수 의원 등을 한참 앞섰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뒤바뀌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런 신호를 나 전 의원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고심" "경청 중"이라고 나 전 의원은 말했지만, 이를 불출마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나 전 의원도 결심이 선 듯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 사의를 표명했다. 다만, 기후대사직은 유지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심중을 알아보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나 전 의원을 향한 비판이 쏟아졌다. 대통령실은 나 전 의원의 사의 표명에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아 행정적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을 내놓았다.
여론은 나 전 의원에게 쏠렸다. 친윤계의 비판과 윤 대통령의 무응답에 나 전 의원은 어느새 약자(?)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그의 모습도 그랬다. 의도적이었을 것으로 본다. 지난 14일 나 전 의원은 대리인을 통해 저출산위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물론 기후대사직은 유지했다. 윤 대통령과의 연결고리는 남겨두겠다는 의지였거나, 거센 비판을 더 받아 약자 이미지를 굳히려했던 게 아닌가 싶다. 나 전 의원이 왜 4선 국회의원 출신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 전 의원은 사직서를 제출한 후 충북 단양 구인사를 찾았다. 이 절은 윤 대통령 부부와도 연이 있다. 나 전 의원이 이를 몰랐을 가능성은 없다. 잠행을 가장했지만, 언론에 보도됐고, 다시 한번 윤 대통령 부부와 구인사의 인연, 그리고 나 전 의원이 찾은 이유 등이 알려졌다. 여론은 또 나 전 의원에 주목했다.
윤 대통령은 나 전 의원이 사직서를 내고 구인사를 방문한 직후 사의를 수용하는 것이 아닌 해임을 결정했다. 기후대사직도 마찬가지였다. 나 전 의원은 그럼에도 "대통령님의 뜻을 존중합니다. 어느 자리에 있든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대한민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며 윤 대통령의 성공을 바랐다.
친윤계 핵심 장제원 의원은 나 전 의원의 행동에 분노했다. 장 의원은 14일 SNS를 통해 "대통령을 기만하고 공직을 두고 대통령과 거래를 하려 했던 나 전 의원의 민낯이 드러난 상황에서 과연 국민의힘 정통 보수 당원들이 계속 지지할까요?"라며 "도대체 왜 당내 한 줌 남은 반윤 세력들이 앞다퉈 그토록 미워했던 나 전 의원을 미화하고 찬양하고 나섰을까요?"라며 나 전 의원이 반윤, 즉 비윤세력의 선봉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아직 1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서 나 전 의원 상황에서 '반윤' '비윤'으로 낙인찍힐 경우 당원 100% 전당대회 룰에선 불리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비윤' '반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나 전 의원의 생각일 것이다. 그의 글도 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성공적 국정을 위해서는, 소통과 중재, 조정과 이해가 필수입니다. 그래서 참모들의 융통성과 유연함이 중요합니다. 윤석열 정부의 진정한 성공에 누가 보탬이 되고, 누가 부담이 되는 지는 이미 잘 나와 있습니다. (중략) 제2의 진박감별사가 쥐락펴락하는 당이 과연 총선을 이기고 윤석열 정부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2016년의 악몽이 떠오릅니다. 우리 당이 이대로 가면 안 됩니다."
나 전 의원이 지난 15일 SNS에 쓴 글이다. 자신을 '윤석열 정부 성공을 위해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이른바 장 의원 등 친윤을 자처하는 이들 일부를 '진박감별사'로 윤석열 정부 성공에 도움이 되지 않은 사람으로 선을 그었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나 전 의원은 16일 "아랍에미리트가 한국에 300억 달러, 한화로는 40조 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번 순방의 가장 주된 목적은 경제적 성과'라던 윤 대통령께서 순방 이틀 만에 40조 원 규모의 투자 유치를 이끌어낸 것입니다. 가슴이 벅차오릅니다"라며 "큰 성과를 이끌어낸 윤 대통령께 감사드리며, 남은 일정도 건강히 소화하고 돌아오시길 바랍니다"라며 추켜세웠다. 그는 거듭 자신이 '비윤' '반윤'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나 전 의원은 누가 뭐래도 4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당의 최고위원과 원내대표 등도 거쳤다. 정치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이력이다. 따라서 현재 친윤계 일부와 갈등을 통한 나 전 의원의 노림수는 '생사람 잡네' '생트집' 등으로 비쳐 약자라는 점을 부각해 전대 출마의 당위성 또는 여론을 우호적으로 만들기 위함으로 판단한다. 또, 실제 여론도 나 전 의원 의도대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나 전 의원의 노림수는 '성공적'이다.
이제 남은 건 나 전 의원이 언제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느냐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나름 명분을 만드는 작업은 성공했지만, 출마 선언 타이밍을 놓친 것은 아닐까. 그를 돕는 일부에서도 나 전 의원의 출마 선언 타이밍이 아쉽다는 반응들이 그렇다. 윤 대통령이 순방 중으로 21일 귀국한다. 이후 설 연휴까지는 순방 성과를 홍보가 빛을 내야 할 때다. 나 전 의원이 대통령의 성과가 묻힐 수 있는 시기에 출마 선언을 할 수는 없다. 정치적 도의상 그렇다.
문제는 국민 피로감이다. 나 전 의원이 어렵게 만든 약자 이미지도 국민이 보기에 길어지면 피로하고 '그래서 나온다는 거야, 뭐야'라는 부정 여론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나 전 의원의 결단은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나 전 의원의 정치생명은 과연 어떻게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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