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 추정 철화' 발표 후 파문 확산...'중용의 미덕'도 필요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윤석열 정부가 1년 9개월 전 서해상에서 북한군의 총격에 숨진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 지난 16일 ‘월북 추정’이라던 당초 발표 내용을 철회한 데 따른 파장이 커지고 있다. 여야 공방은 그날부터 시작됐고 감사원이 17일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감사에 착수했다.
국가안보실·해양경찰청 등이 전날 "자진 월북 증거가 없다"며 종전 발표를 뒤집은 지 하루 만에 이뤄졌다. 다소 이례적이라는 생각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40여일 만에 문재인 정부 관련 감사·수사가 동시다발로 이어지며 사정 정국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상적 사법 시스템"이라고 정치적 해석에 선을 긋고 있지만 '전방위 사정'에 따라 정치보복 논란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미 더불어민주당은 임전태세를 갖춘 듯하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사건의 피해자인 고 이대준 씨의 자진 월북으로 볼 수 있는 증거는 없다"며 "2019년 탈북 선원 북송사건까지 진상규명하겠다"며 한술 더 뜬다. 민주당은 당시 군의 감청 첩보를 근거로 국민의힘도 수긍해놓고 뒤늦게 정쟁거리로 삼고 있다고 목소리를 더욱 높인다.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9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당시 군의) 첩보 내용을 당시 국회 국방위와 정보위에서 여야 의원들이 같이 열람했다"며 "지금 여당 의원들도 다 보고 ‘월북이네’라고 이야기한 적 있다"며"어떻게 이런 내용을 정쟁으로 만드냐"고 말했다.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힘도 감청 정보를 근거로 한 자진 월북 정황을 인지했지만, 정권이 바뀐 뒤 이를 뒤집으며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는 주장이다. 야권에서는 여권이 고물가 고금리 등 3고 현상에 따른 경제위기와 잇따른 인사 파문, 부인 김건희 여사 관련 논란 등으로 저조한 국정동력을 보수층 결집을 통해 벗어나려는 전략 아니냐는 분석도 함께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감청 첩보가 ‘기획 월북’의 증거가 될 순 없으며 북한군에 보고된 심문 내용이어서, 이를 이 씨의 ‘진의’로 몰아 ‘자진 월북’했다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반박이다. 또 이 씨에 대해 도박 빚 부풀리기, 심리 상태 왜곡, 조류(潮流)조작, 방수복 은폐 등의 의혹도 제기한다. 21일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는 자리에서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 씨가 문재인 정부에 의해 ‘인격 살인’ 당했다며 비난 수위를 한층 더 끌어 올렸다. 마치 한번 "붙어보자"는 신호 같다.
사건 발생 당시 상황을 보자. 당시 정부는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하고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북한에 사실관계 확인 통지문을 발송한 뒤인 2020년 9월 24일에야 뒤늦게 사건을 공개한다. 사고가 난 지 이틀이 지난 시점이다. 해양수산부 소속 서해어업관리단 해양수산서기관이던 이 씨는 2020년 9월21일 오전 11시30분께 연평도 해상에 있던 어업지도선에서 실종된다. 표류하던 이씨는 이튿날 오후 4시40분께 북방한계선을 넘어가 북한 수산사업소 선박을 향해 표류 경위를 설명한다. 실종 지점에서 38㎞ 떨어진 해상이었다. 5시간 뒤 북한군 단속정이 이씨에게 총격을 가해 살해하고 주검도 불태운다.
해경은 당시 첫 수사 발표를 하면서 "자진 월북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발표한다. 닷새 뒤인 9월 29일 중간수사 발표서는 "실종자(이대준씨)가 자진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월북’을 사실상 기정사실화 한다.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는 사건 공개 당일에야 열렸다.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는 하루 뒤인 30일에 소집된다. 당시 국방부도 국회 보고에서 북한군 감청 자료를 근거로 이 씨의 ‘자진 월북’에 무게를 둔다. 국방부가 감청을 통해 파악했다는 내용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표류 중인 이 씨를 상대로 북방한계선을 넘어온 이유를 심문했고 ‘월북하겠다’는 이씨의 뜻이 북한군 상부에 보고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도 개운치 않았던 점들이 당초 발표가 뒤집어지면서 봇물 터지듯 증언이 속출했다. 마치 스포츠 경기에서의 공수교대같다. 해양경찰청이 사건 일주일 만에 ‘자진 월북’이라는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행정관이 해경 지휘부에 "자진 월북에 방점을 두고 수사하라"는 지침을 전달했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해경 내부에서도 "‘자진 월북’에 방점을 두라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지침이 허술하고 성급한 중간 수사 결과 발표로 이어졌던 것"이라는 증언도 이어진다. 해경이 파악했다는 이 씨의 ‘도박빚’ 액수도 부풀려지는 등 수사에 적지 않은 허점은 계속 드러나는 상황이다.
한편으로 이 씨가 민간인이 아닌 공무원 신분이라는 점에서 첩보 내용이 확실하지 않다면, 끝까지 실종으로 보고 접근하는 구조대응 매뉴얼상으로도 맞다. 설령 ‘자진 월북’이 확실했다고 하더라도 북측이 곧바로 구조하지 않는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더라도 실종자 구조에 준해 대응 조치를 취해나갔어야 했다. 이밖에 관계 당국은 왜 9월 21일 실종 당일 그 사실을 언론에 알리지 않고 비밀에 부쳤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첫 보고를 받은 뒤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은 이유는 뭘까? 오전 8시 30분 사살 사실을 보고 받은 뒤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즉시 국가안전보장회를 소집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의심을 하려면 한도 끝도 없다.
공자(孔子)는 논어(論語) 선진(先進)편에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현실에서 돌이켜 보면 대분분의 사람들이 지나친 것은 모자람보다 못하다는 경우를 자주 만난다. 맹자(孟子)는 양혜왕(梁惠王)편에서 "올바름을 뒤로 하고 이로움을 앞세운다면 빼앗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않을 것(구위후의이선리 불탈불염/苟爲後義而先利,不奪不饜)"고 지도층들에게 사적인 이익보다 공적인 올바름 추구에 나서라는 경종을 울린다.
여소야대(與小野大)에 거대 야당의 발목잡기로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정부여당의 볼멘소리가 전혀 설득력이 없진 않다. 그래도 칼자루는 정부여당이 쥐고 있는 건 사실이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추구하는 바가 통합이든 민생이든 가릴 게재는 아니다. 설령 야당 시절 핍박에 대한 소소한 되갚음이라고 해도 정도가 지나치면 안된다. 그렇지 않아도 국론이 양분될 조짐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불법이나 범법사실을 봐주라는 애기는 절대 아니다. 이번 건도 수사는 처음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도 매사에 선은 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중용의 미덕이 정부 여당에 절실한 시기다. 민생을 위한다면 민주당 도움이 없으면 안된다. 예측가능하고 이해가능하며 상식이 통하는 사회 만들기가 쉽지 않은 이유도 혼자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마땅히 할일도 잘하려면 마찬가지다. 그래야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지지도 받고 사랑받고 받을 수 있는 여지도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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