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疏通)이 소통(小桶) 아니길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봄이 왔다. 겨우내 움츠려있던 나무들도 꽃망울을 터뜨릴 이 시기만을 기다려왔으리라. 봄꽃은 추운 겨울 움츠려있다 힘들게 꽃을 피운다. 고생 끝에 낙(樂)이 온다는 말이 있는데, 어찌 보면 꽃과 닮은 듯하다.
사계절 중 봄은 겨울 뒤 찾아오는 계절로 새로움을 상징한다. 흔히 봄은 인생에 있어 '좋은 한 때'로 비유되기도 한다. 젊음은 곧 봄이다. 청춘의 춘(春)이 곧 봄이다. 그래서 봄은 긍정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계절로 치면 봄이다.
꽃망울이 봄꽃을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꽃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겐 고통이다. 정치권도 비슷한 상황인데, 윤 당선인의 집무실 이전을 보는 일부의 시각도 그렇다. 기대와 우려의 공존이다.
"봄꽃이 지기 전에는 국민께 청와대를 돌려드리고 싶다." 지난 18일 김은혜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생각이다. 윤 당선인도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는 임기 시작인 5월 10일에 개방하여 국민께 돌려드리겠다. 본관 영빈관을 비롯해 최고의 정원이라 불리는 녹지원과 상춘재를 모두 국민들의 품으로 돌려드리겠다"며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을 공식화했다.
윤 당선인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 의지는 확고하다. 지난 대선 윤 당선인을 지지했던 국민의 공감도 있다. 다만, 대선 당시 윤 당선인의 공약은 '광화문 대통령 집무실'이었다. 용산 국방부 청사는 언급된 적이 없으니, 일각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은 뜬금없다는 지적도 당연하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의 배경은 '국민과 소통'에 있다. 윤 당선인의 국민과 소통을 반대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두고 설왕설래하는 이유는 윤 당선인이 그동안 수없이 언급했던 국민과 소통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충분한 여론 수렴 없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 결정은 윤 당선인이 강조한 소통(疏通)이 아닌 소통(小桶)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윤 당선인의 탈(脫)청와대 논리는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로 보인다. 청와대라는 공간에 들어가는 순간 '탈권위'는 잊고 '제왕적 대통령'이 된다는 것으로 읽힌다. 그런데 탈권위나 제왕적 대통령 탈피가 꼭 공간의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까.
윤 당선인의 취임까지는 약 50일가량 남았는데, 봄꽃이 폈다 지는 시기와 꼭 맞다. '봄꽃이 지기 전에 돌려드리겠다'고 한 배경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결정을 놓고 윤 당선인 측은 '신속 결정'이라 하고, 반대하는 쪽에선 '졸속'이라고 한다. 이는 정책에 따라 속도가 생명일 수 있지만, 반대로 속도에 맞추지 못해 부작용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봄꽃 하면 단연 벚꽃을 떠올린다. 벚꽃은 개화 후 며칠이면 만개하지만, 곧 지고 만다. 초속 5cm, 벚꽃이 땅에 떨어지는 속도다. 빠른 것 같지만, 시속으로 환산하면 0.18㎞, 시간당 180m를 가는 것에 불과하다. 초속 5cm에 집착하면 빠른 속도지만, 시속으로 환산하면 엄청 느리다.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다. 윤 당선인의 '봄꽃이 지기 전' 대통령 집무실 이전도 지지자와 그렇지 않은 국민의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윤 당선인은 이제 대한민국 국민의 대통령이다.
윤 당선인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 결정은 이제 뒤집을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이번 신속한 결정을 보며 중국 고대의 사상가이며 도가(道家)의 시조인 노자의 조언이 떠올랐다. 노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것과 같다"고 보았다. 작은 생선도 조심해서 뒤집지 않으면 생선 살이 다 흩어져 버림을 비유한 것으로, 윤 당선인은 앞으로 수많은 결정을 해야 한다. 그때마다 한 번쯤 노자의 이 말을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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