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욕 치른 윤석열, 자기부정 논란 이재명 '도긴개긴'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그야말로 정치를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2021년 10월 19일 부산 방문 당시)
"전두환도 공과가 병존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3저 호황을 잘 활용해서 경제가 망가지지 않도록, 경제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것은 성과인 게 맞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2021년 12월 11일 경북 방문 당시)
광주 시민에 대한 사과 없이 끝내 세상을 떠난 고 전두환 씨가 다시 정치권에 소환됐다. 잊힐 듯 잊히지 않는 전 씨의 이름을 이 후보가 다시 소환했다.
이 후보의 발언은 과거 발언과 사뭇 달라 의아하다. 전 씨의 공과를 동시에 평가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22일 이 후보는 광주 5·18묘역을 찾아 "전두환 씨는 내란범죄의 수괴고 집단학살범이다. 국민이 맡긴, 국민을 지키라는 총칼로 주권자인 국민을 집단 살상한, 어떠한 경우에도 용서할 수 없는 학살 반란범"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날 5·18묘역에 있는 전 씨의 비석을 웃으며 밟고 지나갔다. 윤 후보의 부산 발언을 의식한 발언이며 일종의 퍼포먼스로 해석됐다. 11월 28일 광주를 다시 찾은 이 후보는 "광주학살의 주범 전두환을 찬양하고 국민들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대한민국을 끌고 갈 수 없다"며 다시 한번 윤 후보를 겨냥한 바 있다.
전 씨 발언 논란에 휩싸였던 윤 후보의 태도를 살펴보자. 논란이 됐던 그날(10월 19일)만 해도 "앞뒤 다 빼고 이야기를 한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다음 날엔 "하고자 했던 말은 대통령이 되면 각 분야 전문가 등 인재를 적재적소에 기용해서 제 역량을 발휘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라며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전두환 정권이 독재를 했고 자유민주주의를 억압했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초선의원 모임 '더민초'는 "윤 후보의 역사 인식과 정치철학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망언"이라면서 "전두환을 닮고 싶어 하고, 전두환 정치를 실현하려는 윤 전 총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며 후보직 사퇴를 요구했다.
윤 후보는 논란이 불거진 지 약 6일 만인 10월 25일 대전시당에서 "전문가를 영입한 뒤 성장·번영해 국민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설명을 하는 와중에 이름 석 자만 들어도 힘들어하실 분들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했다"며 전 씨 발언을 사과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최종 결정된 윤 후보는 지난달 10일 광주 5·18 묘역을 방문해선 "제 발언으로 상처받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정치권에서 전 씨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 그래서 누구도 섣불리 전 씨를 입에 올리며 존경이나 공(功)을 논할 수 없다. 특히 민주진영에서 전 씨의 공을 논하는 것 자체가 금기어에 가깝다. 이런 배경을 입증이라도 하듯 윤 후보의 전 씨 발언을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 민주진영에서 금기시하는 전 씨의 공을 이 후보가 꺼냈다. 그는 지난 11일 경북 칠곡을 방문한 자리에서 "전두환도 공과가 공존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전두환이 삼저호황(저금리·저유가·저달러)을 잘 활용해서 경제가 망가지지 않도록, 경제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건 성과인 게 맞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이 후보의 발언은 즉각 보수 표심을 의식한 말 바꾸기란 비판을 받았다. 그러자 그는 12일 "있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면 사회가 불합리함에 빠져들게 된다"며 "모든 게 100% 다 잘못됐다고 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을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삼저호황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름 능력 있는 관료를 선별해 맡긴 덕분에 어쨌든 경제 성장을 한 것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윤 후보나 이 후보의 전 씨 발언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발언의 맥락을 보면 사실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차이점을 꼽자면 이 후보의 전 씨 평가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지난 10월 22일 이 후보는 광주 방문 후 페이스북에 전 씨에 대해 "옹호하는 행위는 결단코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이 후보의 이 글은 지금에 와서 또 어떻게 해석해야만 하는 것일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후보의 전 씨 발언과 관련해 지난 10월 20일 페이스북에 "히틀러의 통치 시기 독일 중공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히틀러는 동물을 사랑하여 1933년 동물 생체실험과 동물 꼬리 자르기 금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동물보호법을 세계 최초로 만들도록 했다. 그래서 독일 총리 후보가 "히틀러가 다 잘못했나? 히틀러가 잘한 것도 있다"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라고 비난했다. 이 후보의 발언도 이렇게 평가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후보들의 표를 향한 발언들이 쏟아진다. 표를 위해 자신의 발언을 뒤집는 경우도 허다하다. 정당도 그동안 지켜온 가치관과 다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해마다 연말이 다가오면 대학교수들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올해는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뜻의 사자성어인 '묘서동처'(猫鼠同處)를 꼽았다. 묘서동처는 도둑을 잡아야할 사람이 한패가 됨을 꼬집는 말이다. 하지만 현재 정치권을 보면 지난해 대학교수들이 꼽은 나는 옳고 타인은 틀렸다는 '아시타비'(我是他非) 상황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과 같다.
정치인이 한 입으로 두 말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여기엔 앞말에 대한 사과나 설명의 설득력이 있어야하고 사과라는 전제조건이어야 한다. 따라서 어떤 후보의 말 바꾸기는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지도자 또는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의 말에는 책임감이 따른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말을 하는 지도자를 국민이 신뢰할 수 있을지 대선 후보들의 진중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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