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최정식기자] 1991년 11월 일본에서 제1회 한일 프로야구 슈퍼게임이 열렸다. 프로 출범 10주년을 맞은 한국 야구는 올스타팀 간 대결이었던 1,2차전에서 각각 3-8과 2-8로 완패하며 일본과 실력차를 절감했다. 당시 한국 야구에 충격을 안겨줬던 것은 일본 투수들의 포크볼이었다.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공에 한국 야구의 강타자들이 헛스윙하며 삼진을 당했다. 이 때의 경험이 한국 야구에 본격적으로 포크볼이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선동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대표팀이 1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2017 결승에서 일본에 0-7로 졌다. 일본 선발투수 다구치 가즈토(22,요미우리)를 공략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었다. 다구치는 패스트볼 최고 구속이 시속 140km에 이르지 못하지만 완벽에 가까운 제구력을 무기로 하는 투수다. 한국 타자들은 7회까지 던진 다구치에게 단 3안타를 치며 득점하지 못했다. 한국은 17일 대만과 경기에서도 상대 선발 천관위에게 6회 2사까지 2안타로 묶이며 1-0으로 힘겹게 이겼다. 천관위 역시 파워가 아닌 제구력으로 승부한다. 한국 타자들은 비슷한 유형의 투수를 잇따라 만났지만 무력하게 물러섰다.
투수의 제구력, 특히 변화구의 제구력은 파워가 강해지고 선구안이 좋아진 타자들을 상대하는 강력한 무기다. 제구력은 스피드와 코스가 서로 다른 다양한 공들을 만들어내 타자를 제압할 수 있게 한다. 구속과 코스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완벽한 제구가 필요하다. 제구가 뒷받침된 공은 커브나 슬라이더라는 이름과 관계없이 다른 공이 되고 130km대의 패스트볼을 강속구로 만들어 준다.
패스트볼이든 브레이킹볼이든 제구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볼배합이나 수 싸움이 의미가 없다. 초구에 스트라이크를 넣지 못하고 불리한 볼 카운트에서 변화구로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없다면 타자의 타격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일본과 결승에서 한국 투수들은 8개의 볼넷을 내줬고 이것이 많은 실점의 빌미가 됐다.
24세 이하, 3년차가 넘지 않는 선수들이 출전하는 대회의 단 세 경기 결과를 놓고 리그 투수들의 수준을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좀 더 수준 높은 프로야구를 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보완해야 할 과제를 확인하기에는 충분하다. 이번 대회에서 타자들이 공략하기 어려웠던 '마구'를 꼽는다면 한국의 대만전 선발이었던 임기영의 체인지업일 것이다. 구종이 아닌, 타자를 상대하는 무기를 말하자면 최고의 마구는 제구력이다.
26년 전 첫 슈퍼게임에 나섰던 한국 야구는 일본의 포크볼에 충격받았다. 이번 첫 APBC에서 결승전 선발로 나선 박세웅을 비롯해 많은 한국 투수들이 훌륭한 포크볼을 던진다. 한국 야구를 이끌 젊은 투수들은 충격이 아니라 교훈을 얻었다. 두산 유희관이 타고투저의 KBO리그에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 투수의 생명은 제구력이라는 평범한 진리다.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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