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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투볼파크] 코팩스와 커쇼, 에이스의 조건

  • 스포츠 | 2017-11-04 04:00
LA 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 / 게티이미지코리아
LA 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 / 게티이미지코리아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1993년 2월. 삼성 라이온즈는 미국 플로리다주 베로비치에 있는 다저타운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었다. LA 다저스의 코치 하나가 프로 두 번째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삼성 투수 김태한(현 삼성 수석코치)을 향해 '샌디'라고 외쳤다. 한국 이름이 익숙치 않아 붙인 별명은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유망한 젊은 왼손 투수들을 흔히 그렇게 불렀다. '신의 왼팔(The Left Arm of God)' 샌디 코팩스(82)처럼 훌륭한 투수가 되라는 격려 또는 덕담이었다.

1960년대 다저스의 에이스였던 코팩스는 메이저리그 사상 가장 압도적인 투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1963년부터 1966년까지 4년 사이에 사이 영 상을 세 차례나, 그것도 만장일치로 받았다. 사이 영 상을 세 차례 받은 투수는 그가 처음이었고, 양 리그로 나누어 시상하기 전으로 따지면 그가 유일하다. 네 차례의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첫 번째 투수이기도 했다. 그 가운데 한 번은 퍼펙트게임이었다. 고질적인 팔꿈치 고장으로 31세의 나이에 은퇴한 그는 1972년 야구 명예의 전당 최연소 헌액자가 됐다. 만약 꼭 이겨야 하는 경기에서 감독이 어떤 투수든 데려다 쓸 수 있다면 첫손에 꼽힐 이름이다.

그런 코팩스와 자주 비교되는 투수가 클레이튼 커쇼(29)다. 둘 모두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위력적인 피칭으로 메이저리그를 지배한(하고 있는) 왼손 투수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커브를 갖고 있다는 것도 커쇼가 코팩스를 닮은 점이다. 커쇼는 2011년 자신의 첫 번째 사이 영 상을 받았다. 1966년 코팩스 이후 처음으로 45년 만에 트리플 크라운(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1위)을 달성한 해였다. 그리고 2013년과 2014년에도 수상, 코팩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마이너리그에서 뛰어난 피칭을 하던 시절 커쇼도 '샌디'였다.

그러나 다른 점이 하나 있다. 포스트시즌 성적이다. 코팩스 시절에는 디비전시리즈도 챔피언십시리즈도 없었다. 즉, 그의 포스트시즌 성적은 월드시리즈 성적이다. 코팩스는 월드시리즈 통산 선발 7경기를 포함해 8경기에 출장해 4승 3패 평균자책점 0.95를 기록했다. 4승은 모두 완투승이었고 그 가운데 2승은 완봉승이었다. 57이닝 동안 61개의 삼진을 잡았다.

커쇼는 포스트시즌 통산 24경기에 등판해 7승 7패 평균자책점 4.35를 기록 중이다. 시대가 달라졌기에 경기수는 많아졌지만 완봉도 완투도 없다. 122이닝 동안 139개의 삼진을 잡았다. 올해 포스트시즌에서는 3승 무패 평균자책점 3.82다.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가 정규시즌에 보여준 수준과는 차이가 있다.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8개의 홈런을 맞았다. 무엇보다 월드시리즈 우승이 없다. 코팩스는 세 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을 다저스와 함께 했다.

LA 다저스 레전드 샌디 코팩스가 2일(한국시간)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시구하고 있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LA 다저스 레전드 샌디 코팩스가 2일(한국시간)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시구하고 있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코팩스는 1965년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한 월드시리즈에서 2차전에 선발등판해 6이닝 2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3루수 실책이 있어 자책은 1점. 2승 2패로 맞선 5차전에서는 4안타 완봉승을 거뒀다. 놀랍게도 코팩스는 이틀을 쉬고 돈 드라이스데일 대신 7차전 선발투수로 나섰다. 코팩스는 3안타만을 내주는 완봉으로 다저스의 최종전 2-0 승리를 이끌었다.

2017년 월드시리즈. 커쇼는 휴스턴 애스트로스 강타선을 상대로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 그러나 5차전에서는 4점 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4.2이닝 6실점으로 무너졌다.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몰린 상황에서 커쇼는 데이브 로버츠 감독에게 6차전 구원등판을 자청하는 문자를 보냈다. 52년 전 코팩스의 이틀 휴식을 사이에 둔 두 차례 완투에 비할 수는 없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다는 투지만큼은 같았다.

커쇼는 6차전 대신 마지막 7차전에 구원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이 경기의 시구자는...코팩스였다. 커쇼는 자신의 우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4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호투했지만 타자들이 1점을 뽑는데 그쳐 초반의 5실점을 극복할 수 없었다. 커쇼의 첫 월드시리즈는 그렇게 해피엔딩이 되지 못했다.

야구에서 한 팀의 최고 투수를 에이스라고 부르는 것은 최초의 프로팀이었던 신시내티 레드 스타킹스의 투수 에이사 브레이너드(Asa Brainard)에서 비롯됐다. 1869년 브레이너드는 팀이 치른 57경기에서 혼자 56승을 거뒀다. 이후 눈부시게 팀의 승리를 이어가는 투수를 '에이사'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트럼프의 최고 카드인 에이스로 바뀌었다.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마음이 욕심인지 책임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것이 에이스의 모습일 뿐이다.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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