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로저 크레이그는 1980년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투수 코치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감독을 지내면서 투수들에게 스플리터를 전수했고 그의 제자 가운데는 다른 팀 투수였던 마이크 스콧도 있었다. 스콧은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1979년부터 1984년까지 6년 동안 29승 44패를 기록한 평균 이하의 투수였다. 패스트볼은 괜찮았지만 변화구가 신통치 않았다. 그런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은 크레이그, 그리고 스플리터와의 만남이었다.
스콧은 메이저리그 첫 팀이었던 메츠에서 휴스턴으로 트레이드된 후 두 번째 시즌인 1984년을 5승 11패의 실망스러운 성적으로 마쳤다. 디트로이트에서 이적해 온 동료 내야수로부터 크레이그가 모리스에게 스플리터를 가르쳐 20승 투수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는 그해 겨울 샌디에이고에 있는 크레이그의 집을 찾아가 스플리터를 배웠다. 크레이그는 스플리터를 제대로 던지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고 했지만 스콧은 배우는데 1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1985년 그의 성적은 18승 8패로 눈에 띄게 좋아졌고 그 이듬해에는 사이 영 상을 받았다.
그는 스플리터를 마스터한 후 다른 변화구를 던지지 않았다. 그는 원래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슬라이더를 던지는 투수였는데 스플리터를 갖게 된 이후 체인지업과 슬라이더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가 던진 스플리터 가운데 30% 정도만이 제대로 구사됐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는 "노 볼 투 스트라이크에서 주자가 없다면 스플리터를 최대한 강하게 던진다. 바운드볼이 나온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아주 잘 던진 공이 되거나 나빠 봐야 원 볼 투스트라이크가 되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스콧이 스플리터를 던지기 전인 1984년의 탈삼진 숫자는 83개에 불과했으나 1985년에는 137개로 늘어났고, 1986년에는 무려 306개로 내셔널리그 타이틀을 차지했다.
스플리터를 던지기 전후의 성적 차이가 너무 큰 까닭에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그가 스플리터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샌드페이퍼로 공에 흠집을 내는 부정투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1985년부터 일기 시작한 비난은 그 다음해에도 계속됐다.
이번에는 '은사'인 크레이그가 스콧을 공격했다. 샌프란시스코 감독이 된 크레이그는 1986년 6월 휴스턴과 경기를 했는데 그의 눈에는 스콧의 투구가 자신에게 배운 스플리터가 아니라 에머리볼인 것으로 비쳐진 것이다. 크레이그는 항의를 위해 세 번이나 덕아웃을 뛰쳐나갔다. 그 뒤 시즌 최종전에서 휴스턴은 스콧의 노히트노런 활약에 힘입어 2-0 승리를 거두고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타이틀을 따냈다. 그 상대가 크레이그의 샌프란시스코였다.
스플리터의 원형인 포크볼은 1905년 마이크 린치가 개발했다. 외야수였던 린치는 자신이 만든 공을 전혀 컨트롤할 수 없자 마이너리그 타코마 타이거스의 투수 버트 홀에게 던지는 방법을 알려줬다. 홀은 1908년에 그 공을 선보였는데 스핏볼과 너클볼을 능가하는 공이 나왔다며 화제가 됐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등에서 투수로 활동한 조 부시가 1920년대에 포크볼을 던졌다. 부시는 원래 좋은 커브를 갖고 있었는데 팔을 다치면서 커브를 던지기 어렵게 되자 포크볼을 연마해 사용했다. 1950~1960년대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로이 페이스는 거의 포크볼만을 던지며 타자들을 상대했다. 페이스는 뉴욕 양키스의 구원투수 조 페이지에게 포크볼을 배웠는데 선수 생활 후반부에는 전체 투구의 75~80%가 포크볼이었다.
미국 야구에서는 스플리터를 포크볼의 개량된 형태로 보기 때문에 사실상 같은 구종으로 취급한다. 이에 비해 1950년대 스기시타 시게루, 1960년대 무라야마 미노루, 1970년대 무라타 조지, 1980년대 엔도 가즈히코 등 뛰어난 포크볼을 던지는 투수를 꾸준히 배출하며 독자적인 전통을 유지해 온 일본 야구에서는 포크볼과 스플리터를 별개의 구종으로 여긴다.
그런 일본 포크볼이 메이저리그를 강타한 것은 1995년 노모 히데오에 의해서였다.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빅리그 무대에 선 노모는 14년 전 페르난도 발렌수엘라가 스크루볼로 일으켰던 돌풍을 포크볼로 재현했다. 스플리터는 스피드에, 포크볼은 낙폭에 방점이 찍힌다. 패스트볼과 같은 궤적으로 날아오다가 타자가 배트를 휘두르는 순간 엄청난 낙차로 뚝 떨어지는 노모의 포크볼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데뷔 시즌 피안타율(.182)과 리그 최다 폭투(19)가 잘 보여준다.
1995년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경기에서 노모는 패스트볼과 포크볼만으로 그 시즌 리그 최다인 16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1996년에는 '투수들의 무덤'인 쿠어스필드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고 탈삼진 234개로 내셔널리그 2위에 올랐다. 노모의 활약은 일본 야구에 일본 포크볼은 메이저리그의 스플리터와 다른 공이라는 자부심을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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