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스마트 피칭
1988년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는 LA 다저스의 에이스 오렐 허샤이저였다. 그는 그해 5연속 완봉승을 거두면서 59연속이닝 무실점의 대기록을 세웠고 승리(23)와 투구 이닝(267)에서 리그 1위에 올랐다. 사이 영 상과 골드글러브를 수상했고 내셔널리그 챔피언십과 월드시리즈 MVP도 그의 차지였다.
허샤이저에게는 놀란 라이언 같은 불을 뿜는 듯한 강속구도, 칼 허벨의 스크루볼이나 필 니크로의 너클볼 같은 '마구'도 없었다. 그가 가진 것은 자신의 피칭과 관련해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는 치밀함과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맹렬한 경쟁심이었다.
1988년 10월16일 로스앤젤레스의 다저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2차전. 다저스의 선발투수는 허샤이저였다. 그의 피칭을 지켜보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감독 토니 라 루사는 옆에 서있던 투수 코치 데이브 덩컨에게 말을 걸었다. "골치 좀 아프겠는데. 저 친구를 보니까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우리 둘 다 아는."
덩컨은 포수 출신이었지만 투구전략과 피칭 매커니즘, 몸 관리와 심리에 이르기까지 투수에 관해 누구보다 박식한, 1980년~1990년대 최고의 투수 전문가였다. 리그가 달랐던 까닭에 그 역시 허샤이저와의 승부는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어떤 투수인지 아는데는 5이닝이면 충분했다. 덩컨은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듯이 "누굴 말씀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라고 받았다. 라 루사와 덩컨이 허샤이저를 보고 동시에 떠올린 이름은 톰 시버, 라 루사가 본 가장 영리한 투수 가운데 하나였다.
허샤이저는 그 경기에서 완봉승을 거뒀다. 그리고 마지막 5차전에서도 완투승을 따내며 시리즈를 마무리했다. 그는 마크 맥과이어와 호세 칸세코 등 강타자들이 즐비한 오클랜드 타선을 상대로 18이닝 동안 7안타와 2점만을 내줬다. 다저스를 꺾고 우승할 것으로 예상됐던 오클랜드는 1승4패로 힘없이 무너졌다. 오클랜드 강타선은 다저스 마운드를 상대로 다섯 경기에서 홈런 2개, 11점을 뽑는데 그쳤다. 팀 타율은 .177이었다.
오클랜드가 패배한 이유에 대해 라 루사 감독은 "100년 동안 야구는 항상 그랬다. 투수들이 뛰어난 피칭을 하면, 타자들은 좋은 타격을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프로에 들어온 허샤이저는 나이 든 선수들이 탄식하며 하는 말을 들었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좀 더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후회였다. 그는 투수에게 필요한 것은 뭐든 제 때에 알아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988년, 그는 타자를 아웃시키고 점수를 주지 않는데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다저스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투수 샌디 코팩스는 일찍부터 허샤이저의 팬이었다. 코팩스는 "완벽해지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그것이 허샤이저의 성공의 열쇠다. 완벽주의자라는 말은 보통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이지만 지금보다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나쁠 이유가 없다"라고 칭찬했다.
투수가 안타를 맞으면 그 공은 외야수와 내야수를 거쳐 다시 투수의 손에 돌아온다. 어떤 투수는 그 공으로 다시 투구를 하고, 어떤 투수는 구심에게 새 공으로 바꿔달라고 한다. 허샤이저도 어떤 때는 그냥 던지고 어떤 때는 새 공을 원했다.
야구공은 규격이 표준화돼 있지만 모든 공이 다 똑같지는 않다. 이 때문에 가끔씩 반발력이 문제가 되곤 한다. 그러나 반발계수만이 전부는 아니다. 표면의 매끄러운 정도, 실밥의 도드라진 정도에도 미세한 차이가 있다. 어떤 공은 패스트볼을 던지기에 적합하지만 커브에는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허샤이저는 커브를 던질 때는 실밥이 조금 도드라진 공을, 싱커를 던질 때는 그렇지 않은 공을 선호했다. 물론 매번 손에 딱 맞는 공을 쓸 수는 없다. 그러나 실점 위기 같은 특별한 상황에서는 그런 것에까지 신경을 쓰곤 했다. 허샤이저는 짐 파머가 그랬던 것을 알고 있었다. 파머는 공을 자주 바꿨는데 한번은 심판이 그가 퇴짜를 놓은 공을 가지고 있다가 알아채는지 보려고 다시 건넸다. 파머는 곧바로 퇴짜를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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