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1992년 10월 대한야구협회는 김종락 회장이 물러난 뒤 공석 중이던 회장으로 최인철 고문을 선출했다. 그러나 회장을 선출하기 위해 열린 임시대의원총회가 비공개로 진행되는 등 파행을 겪었다. 대의원들이 회장의 출연금 등 예산 확보 문제를 따졌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앞서 1983년부터 1988년까지 야구협회장을 맡았는데 예산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가 퇴진했다. 논란 끝에 다시 야구협회를 이끌게 된 최 회장은 결국 취임 15개월만에 사퇴했다. 최 회장은 동양맥주와 삼화왕관 회장을 지낸 경영인이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경기인'이었다. 일본 요코하마상고 재학 중 고시엔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던 그는 야구에 대한 사랑을 앞세워 의욕을 보였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당시 야구뿐 아니라 대부분 종목들이 협회장에게 원했던 가장 큰 덕목은 '돈'이었다. 경기단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분쟁의 이유는 대부분 파벌과 돈 문제였다.
김응용 전 한화 감독이 30일 열린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 선거에서 이계안 2.1연구소 이사장을 누르고 아마추어야구의 수장 자리에 올랐다. 선거를 앞두고 프로야구선수협회를 비롯해 한국프로야구 은퇴선수협회, 일구회 등 3개 단체가 보도자료를 내고 김 전 감독을 지지하는 등 지원에 나서기도 했지만 개표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김 전감독이 투표에 참가한 127명 가운데 85명의 표를 얻은 것이다. 두 후보는 선거에 앞서 여러가지 공약을 제시했다. 의미 있는 공약들이었지만 가장 관심을 끈 것은 돈이었다. 김 전 감독은 협회 운영비 15억원과 시도협회 연맹체 지원기금 5억원 등 연간 20억원 조성을 내걸었고 이 이사장은 야구펀드 109억원을 마련해 재정 독립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금액 비교를 떠나 기금 모금과 차후의 마케팅에서 재계와 정계에서 활동한 이 이사장의 경력이 돋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야구인들은 김 전 감독을 회장으로 선택했다.
김응용 신임 회장은 "실현할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겠다"고 했다. 야구인들이 이전에 정치인이나 기업인을 회장으로 뽑은 것은 영향력과 재력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정치인으로서의 영향력 역시 결국은 돈이다. 정재계 인사를 영입해 재정 안정과 종목의 발전을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달라지는 것이 없는 일이 반복됐다. 그에 따른 실망감이 경기인 출신 회장 선출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사실 김 회장이 약속한 돈은 통합협회를 꾸려가기에 결코 여유가 있는 금액이 아니다. 게다가 기금 조성 방안도 정부 지원과 기업 협찬, 한국야구위원회 등 야구계 지원 등이어서 실현될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야구인들은 이 이사장의 능력보다 김 회장의 의지를 믿었다. 또 과거에는 회장의 능력이 아니면 협회와 종목을 운영할 방도가 없었지만 지금은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경기인 출신들도 마케팅과 수익사업에 대한 경험과 자신감을 쌓았다. '우리끼리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최인철 전 회장이 물러난 뒤 야구계는 이현태 당시 현대석유화학 회장을 협회장으로 영입했다. 현대자동차 사장과 현대캐피탈, 현대카드 회장 등을 역임한 전문 경영인 출신 이계안 이사장은 야구협회장에 도전했으나 경기인 출신 김응용 회장에게 밀렸다. 시대가 달라진 것이다. 선수와 감독으로 성공했고, 구단 사장까지 지낸 김 회장은 단체장으로서도 능력을 발휘해 야구인들의 믿음에 보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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