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우지수 기자]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민간 원자력 협력협정에 서명하며 사우디 원전 시장이 미국 기업에 열렸다. 우라늄 농축 가능성을 닫아두지 않아 핵 비확산 기준이 헐겁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22일(현지시간) 미 에너지부에 따르면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장관과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장관은 이날 평화적 원자력 협력협정, 그리고 이와 별개인 양자 안전조치협정에 각각 서명했다. 에너지부는 이번 합의를 "수십 년에 걸친 수십억달러 규모 협력을 떠받칠 법적 토대"라고 설명했다.
이번 협정은 미국 원자력법 123조를 근거로 삼은 '123 협정'이다. 효력이 생기면 미 정부와 기업은 원자로와 핵물질, 관련 기술·장비를 사우디 원전 사업에 공급할 수 있다. 미국으로선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면서 자국 기업 수주 창구도 넓히는 셈이다. 에너지부도 미국산 원자력 기술 수출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AP통신에 보도 따르면 협정 유효기간이 30년이며 양국 공동조사 결과에 따라 사우디 내 우라늄 농축시설 건설이 허용될 가능성이 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미국은 어떤 나라와도 핵확산 위험을 부르는 협정을 맺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비확산 안전장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사우디는 자국 내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하지 않겠다는 '골드 스탠더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폭넓게 사찰·검증하도록 하는 추가의정서도 협정에서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은 22일 이번 협정이 아랍에미리트(UAE) 등 앞서 미국과 손잡은 협력국이 수용한 비확산 기준에 못 미친다고 짚었다. 자국 내 농축 여지를 남겨둔 채 IAEA 추가의정서까지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알자지라는 지정학 분석가 마이클 호로위츠를 인용해 이번 협정이 여러 측면에서 "대단히 중대하다"고 전했다. 호로위츠는 '골드 스탠더드'와 IAEA 추가의정서가 나란히 빠졌다며 사우디가 민간 사업 범위를 벗어날 잠재적 경로가 완전히 막히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사우디는 원전을 통해 늘어나는 국내 전력 수요를 채우고 원유 수출 여력도 키우려 한다. 그러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이란이 핵무기를 손에 넣으면 사우디도 뒤따르겠다고 공언해 온 터라 의회 반발이 예상된다. 농축 역량 확보가 중동 핵 경쟁에 불을 붙일 수 있다는 걱정도 남아 있다.
협정은 미 의회로 넘어가 연속 회기 90일 동안 심사받는다. 이 기간 의회가 불승인 공동결의를 법률로 확정하지 못하면 협정은 그대로 발효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승인 결의에 거부권을 쓰면 이를 되돌리는 데 상·하원 각각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미국 기업의 경제적 실익과 중동 핵확산 위험을 어떻게 맞출지가 최대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index@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