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송호영 기자] 미국 연방대법원이 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행한 상호관세와 펜타닐 관세 부과 조치의 합법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최종심 변론기일을 열고 심리에 착수했다.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날 변론은 대법관들의 입장을 가늠할 수 있어 주목받았는데, 보수 성향 대법관들마저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에 다소 회의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AP 통신과 CNN 방송에 따르면 미 연방대법원은 워싱턴 D.C.의 대법원 청사에서 이날 오전 10시께부터 약 2시간 30분가량 공개 구두 변론을 진행했다.
행정부 측 대리인과 소송을 제기한 중소기업 및 민주당 성향 12개 주를 대리하는 변호사들이 차례로 법정 공방을 펼쳤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을 교역 상대국에 부과한 상호관세와 중국·멕시코·캐나다 등에 부과한 펜타닐 관세의 법적 정당성이다. 1977년 제정된 IEEPA는 '국가 비상사태'에 대응할 여러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으며, 수입을 '규제'할 권한도 이에 해당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일 미국의 대규모 무역 적자가 국가 안보와 경제에 큰 위협이라며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IEEPA에 근거해 100개 이상 국가에 각각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한국에는 25%의 관세를 부과받았지만, 3500억 달러(약 504조3500억원) 규모의 대미 투자 등을 조건으로 15%로 낮췄다.
이날 재판에선 '중대 질문 원칙'(major questions doctrine)이 화두로 떠올랐다. 미국 법원은 주요 정치적 또는 경제적 중요성이 있는 문제는 명확하고 명시적인 승인 없이는 의회가 행정기관에 위임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IEEPA가 국가안보, 외교, 경제상의 비상사태에 대응할 도구를 대통령에게 부여한다며 관세 권한을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측 대리인인 존 사우어 법무차관은 이날 "대통령에게는 국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폭넓은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쟁점은 과세가 아니라 통상 규제라며 "관세는 외국과의 통상 규제 권한의 핵심 적용 사례"라고 말했다.
소송을 제기한 중소기업 등 원고 측은 IEEPA가 관세나 세금 부과 권한을 명시하지 않았으며, 미국 헌법은 의회에만 세금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원고 측을 대리하는 닐 K. 카티알 변호사는 "관세는 곧 세금"이라며 "(헌법을 만든) 우리 건국자들은 과세 권한을 오로지 의회에만 부여했다"고 말했다.
앞서 1심인 국제무역법원(USCIT)은 만장일치(3대0)로, 2심을 관장한 워싱턴 DC 연방순회항소법원은 7대 4로 대통령이 비상 권한을 활용해 전 세계에 관세를 부과한 조치가 불법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현재 6대 3으로 보수 성향을 보이고, 그간 주요 사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결정을 해 왔었지만, 이날 상당수의 법관은 '비상사태'를 근거로 제한 없는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행정부의 주장에 상당한 의구심을 표했다고 CNN과 뉴욕타임스 등은 보도했다.
보수성향의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은 과세 권한에 대해 "그것은 언제나 의회의 핵심 권한이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도입한 관세가 "특정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꽤 효과적이었다"는 점도 짚었다.
마찬가지로 트럼프 1기 때 임명된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도 의문을 제기했다.
고서치 대법관은 "의회가 관세 부과라는 헌법적 권한을 위임할 수 있다면, 그 이외에 또 무엇을 위임할 수 있는가"라며 "의회가 대외 무역 규제나 대외 선전포고에 대한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넘기는 것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
베럿 대법관은 IEEPA에 "관세(tariff)라는 문구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수입 규제(regulate importation) 문구가 관세 부과권을 의미하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이날 재판에는 트럼프 대통령도 직접 구두변론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대법원 심리를 사흘 앞두고 "이 결정의 중대성을 흐리고 싶지 않다"며 불참 의사를 밝혔다.
대신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이 참석해 재판을 지켜봤다.
이번 대법원판결은 관세 무역에 대한 사법부의 최종 판결이란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대법원이 원심 판단 유지할 경우, 관세 정책이 무효가 되고 이미 징수한 세금도 환급해야 해 혼란이 예상된다.
미 세관국경보호청(CBP)에 따르면 9월 23일까지 IEEPA로 거둔 관세 규모는 약 900억 달러(약 128조7900억원)로, 9월 30일 종료된 2025회계연도 전체 관세 수입의 절반을 넘는 수치다.
앞서 대법원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트럼프 행정부 측의 신속 심리 요청을 받아들였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대법관들이 주요 판결을 내리는 6월이나 7월이 아닌, 향후 몇 주 또는 몇 달 내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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