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송호영 기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첫 정상회담 이후 양국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친 대만파' 다카이치 총리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대만 측과 만나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하는 중국을 자극하면서다. 첫 만남부터 시 주석과 다카이치 총리가 어색해진 상황에서, 향후 중일 관계의 향방에 이목이 쏠린다.
주일본 중국대사관 대변인은 3일 중국의 사회관계망서비스 위챗 공식 계정을 통해 "일본이 중국의 엄정한 입장을 무시하고, APEC 정상회의 기간에 대만 측 인사와 회동을 강행한 뒤 이를 선전했다"며 "이는 '하나의 중국' 원칙과 중일 '4대 정치문건'의 정신, 국제 관계의 기본 준칙을 심각하게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본의 행보는 중국 내정에 대한 난폭한 간섭으로 중국 주권과 안보 이익에 대한 도발"이라며 "중국은 단호히 반대하고 강력히 강의하며, 일본 쪽에 엄정한 항의를 제기했다"고 덧붙였다.
대변인은 아울러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중국만이 존재하고, 대만 지역은 중국의 일부"라며 "(대만의) 총통(대통령 격)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총통부 자문은 더 말할 것 없다"고 지적했다.
2일 교도통신과 요미우리 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1일 APEC 정상회의에 대만 대표로 참석한 린신이 총통부 선임고문과 약 25분간 면담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 자리에서 "대만은 (일본의) 매우 중요한 파트너이자 소중한 친구"라며 "폭넓은 분야에서 협력과 교류를 심화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면담 이후 린 고문과 악수하는 사진을 SNS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 중국 대륙과 타이완섬, 홍콩, 마카오는 절대 나뉠 수 없으며, "합법적인 중국 정부는 오로지 하나"라는 의미가 있다. 이 원칙에 따라 중국은 대만을 자국 영토의 일부로 여기고 있고, 자국과 수교할 시 대만과의 수교를 금지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가 언급한 중일 4대 정치 문건은 △1972년 수교 당시 발표한 중일 공동성명 △1978년 중일 평화우호조약 △1998년 중일 평화와 발전의 우호협력 동반자 관계 수립 노력을 위한 공동선언 △2008년 중일 전략적 호혜 관계 전면 추진에 관한 공동성명을 의미한다.
결국 중국 측은 다카이치 총리가 양국이 합의한 관계의 기본적 원칙조차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부는 1일에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이를 비판한 바 있다. 외교부는 "이러한 행위는 대만 독립 세력에 심각하게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며 "일본에 강한 항의를 했다. 중국에 대한 내정 간섭을 중단하고 건설적이며 안정된 중일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태도를 실천에 옮기라"고 밝혔다.
중국 측의 불편한 심기는 지난달 31일 시 주석과 다카이치 총리의 첫 정상회담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시 주석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주변국 침략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명시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국의 홍콩 및 신장 위구르 자치구 인권 탄압, 중국 당국의 일본인 구속 문제, 중국 선박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주변 항해를 비롯한 동중국해 문제에 대한 우려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정상이 첫인사로 서로의 '역린'을 건드린 셈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2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그는 APEC 정상회의 계기 방한 성과를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에서 이번 중일 정상회담과 관련해 '잉웨'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잉웨'는 상대의 요청에 응한다는 의미로, 일본 측의 초청에 중국이 응해주면서 회담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다카이치 총리가 시 주석을 초청해 놓고, 대만 측과 만나 중국의 인권 문제를 건드린 데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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