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송호영 기자]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가 16일(현지시간) 의회의 불신임 투표에서 살아남아 총리직을 유지하게 됐다. 그러나 르코르뉘 총리 앞에는 연금 개혁을 중단한 채 정부 재정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과제가 놓였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극좌 성향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와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은 국민의회(하원)에 르코르뉘 총리 불신임안을 각각 제출했다. 두 건에 대한 투표는 각각 271표와 144표를 얻어 부결됐다. 불신임안 통과를 위해선 하원의 정원인 577명 중 과반인 289명의 지지를 얻어야 했지만, 이를 충족하지 못한 것이다.
앞서 르코르뉘 총리는 14일 정책 연설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역점 사업인 연금 개혁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르코르뉘 총리는 연금 개혁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자 지난 6일 사임했다가 10일 재임명된 바 있다.
르코르뉘 총리의 선언은 65석을 가진 중도 좌파 성향의 사회당을 포섭하기 위한 승부수였다.
영국 가디언은 투표에 앞서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가 오늘 투표에서 살아남는다면 그것은 사회당의 지지 덕"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사회당 의원 대다수가 표결에 불참하며 르코르뉘 총리는 일단 최악의 상황을 넘겼다.
올리비에 포르 사회당 대표는 이날 투표가 끝나고 기자들에게 "저는 (그가) 대중 앞에서 말한 것을 믿는다"며 "그(르코르뉘 총리)가 그렇게 (연금 개혁 중단을) 하지 않으면 처벌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각 불신임 위기를 넘긴 마크롱 대통령과 르코르뉘 총리 앞에는 재정 위기라는 문제가 남아 있다.
프랑스 통계청(INSEE)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기준 프랑스의 공공부채는 3조4163억 유로(약 5630조원)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115.6%에 달한다. 유럽연합(EU)에서 GDP 대비 부채 비율로는 그리스, 이탈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치다.
신용등급도 위태롭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Fitch)는 지난달 프랑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한 단계 하향했다. 모닝스타의 자회사 DBRS도 신용등급을 종전 'AA(상·high)'에서 'AA'로 한 단계 하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무디스(Moody's)는 지난해 12월 프랑스 국가 신용등급을 내렸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현재 신용등급을 'AA-'로 매기고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프랑스 야권의 강력한 반대에도 마크롱 대통령이 정년 상향 조치를 한 데에는 이 같은 재정 악화가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마크롱 정권은 지난 2023년 9월 연금 수령 시작 연령을 기존 62살에서 2030년까지 64살로 올리는 법안을 도입했고, 100% 연금 수령을 위한 최대 가입 기간도 2027년부터 43년으로 1년 늘리기로 결정했다.
연금 개혁을 중단하면 2026년 4억 유로(약 6630억원), 2027년 18억 유로(약 2조9860억원)의 비용이 추가로 소요된다. 르코르뉘 총리의 이번 결정으로 그렇지 않아도 위험한 재정 상황에 부담이 더해진 상황이다.
로이터 통신은 "연금 개혁 보류 제안이 분열한 의회에서 정부에 생명줄을 던져줬다"면서도 "르코르뉘 총리는 이제 2026년 예산안 통과를 위한 험난한 협상 과정을 앞두고 있으며, 언제든 다시 불신임 위기에 놓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르코르뉘 총리는 내년도 정부 지출을 300억 유로(약 50조원) 절감하는 긴축 재정안 통과를 추진 중이다.
사회당은 전날 2026년도 예산안에 부유세 도입을 포함시키겠다고 밝혔고, 이날도 보리스 발로 사회당 원내대표가 "(르코르뉘의) 예산안에 뭐가 들어갈지 보겠다. 예산안에 찬성하겠다고 약속한 적은 없다"고 말해 르코르뉘 총리의 예산안 협상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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