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X을 조물조물”…광복절에 뜬 MZ ‘매국노 조롱잔치’


15일 광복절, 독립문 인근 카페서 친일파 조롱 행사
역사 문제, MZ식 밈 문화로 재해석
친일파 얼굴 발매트·간땡이 스퀴시

15일 광복절을 맞아 친일파와 매국 행위를 대놓고 조롱하는 이색 팝업 행사가 열린다. /SNS 엑스(X) 발췌

[더팩트|오승혁 기자] 광복절을 맞아 친일파와 매국 행위를 대놓고 조롱하는 이색 팝업 행사가 열린다. 무거운 역사 문제를 B급 코드와 굿즈, 밈으로 풀어내는 방식이다. 최근 연예계와 산업계, 공공부문에서 이른바 '역사 리스크'가 잇따르는 가운데 2030세대가 역사 문제를 소비하고 반응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역사 크리에이터 모임인 '이순신사랑단X세종대왕사랑단'은 15일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 인근 카페 '옥바'에서 '제1회 친일파 척결 카페-매국노 조롱잔치'를 연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생일 카페'를 기획해온 이들이 광복절을 맞아 친일 행적을 풍자하고 독립운동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취지로 마련한 행사다.

행사 이름부터 세다. 콘셉트는 친일파를 점잖게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쪽에 가깝다.

15일 매국노 조롱 잔치에서 판매되는 이완용 간 스퀴시. /SNS 엑스(X) 발췌

대표 굿즈는 을사늑약 체결에 앞장선 이완용을 겨냥한 '이완용 간땡이 스퀴시'다. 스퀴시는 손으로 주무르며 노는 말랑한 장난감이다. 행사 기획자는 "일제에 간이고 쓸개고 다 빼다 준 이완용의 간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사 포스터에는 최근 온라인에서 밈처럼 소비된 ‘오이데 오이데 지옥으로 오이데 맛테루요’(이리와 이리와 지옥으로 이리와 기다릴게)라는 문구도 활용됐다. 여기에 을사늑약에 앞장선 인물들의 사진을 배치해 유머와 의미를 동시에 살렸다. 카페 대문에도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파들의 얼굴 사진으로 만든 발매트를 배치해 이를 밟고 들어갈 수 있다.

이완용의 얼굴을 찌그러뜨린 컵 받침, 세종대왕이 승하하기 전 "왜(일본)를 업신여기거나 방심하지 말고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신하들에게 당부한 유언을 활용한 키링, 거북선을 본뜬 클리커도 준비됐다. 음료 이름도 평범하지 않다. 오미자차에는 '왜군 블러드 레드', 대추차에는 '매국노대추풍낙엽차'라는 이름을 붙였다. 광복절을 떠올리게 하는 '815라떼'도 판매된다.

15일 매국노 조롱잔치에서 판매 예정인 거북선 클리커의 모습. 제작자는 이날 행사에서 판매된 수익금 전액을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기부한다고 밝혔다. /SNS 엑스(X) 발췌

일부 굿즈 판매 수익은 기부로도 이어진다. 행사 기획자는 SNS 엑스(X)를 통해 거북선 클리커 제작자가 이번 행사 판매 수익금 전액을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기부한다고 밝혔다.

체험형 콘텐츠도 있다. 친일파 제거 능력 검정시험, 욱일기 찢기 체험,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 취득자 무료 포토부스 등이 마련된다. 단순히 굿즈를 사고 음료를 마시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놀이와 참여를 통해 친일 문제를 접하게 하는 구조다.

가벼운 형식이라고 해서 고증을 아예 내려놓은 것은 아니다. 기획진은 민감한 역사적 사실과 인물을 다루는 만큼 일부 굿즈와 증정품은 관련 단체 검수를 거쳐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을사오적과 정미칠적의 친일 행적도 구체적으로 공부하게 됐다는 설명도 나왔다.

행사를 기획한 30대 직장인 김하은 씨는 "광복절마다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좋은 행사가 많이 열리지만, 개인으로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했다"며 "친일파를 B급으로 조롱하면 사람들이 즐기면서도 친일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너무 징그럽거나 잔인하지 않은 선에서 조롱하려고 했다"며 "친일파를 청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조금이라도 더 각인시키고 싶었다"고 했다.

이 같은 흐름은 최근 이어진 역사 논란과도 맞닿아 있다. 배우 하영의 증조부 친일파 논란이 불거졌고 뉴발란스도 태극기 문양을 잘못 표현한 상품을 판매했다가 사과하고 판매를 중단했다. 스타벅스는 '탱크데이' 논란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눈에 띄는 것은 2030세대의 반응이다. 과거 역사 문제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세대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기업과 공공기관, 연예인의 역사 인식 문제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친일 행적 자체뿐 아니라 그 이후 이어진 특권과 책임, 공정성 문제를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묻는 분위기다.

광복절 행사는 매년 엄숙한 기념식과 추모, 독립운동가 재조명으로 채워져 왔다. 올해는 여기에 친일파를 조롱하고 매국 행위를 희화화하는 팝업 카페까지 등장했다.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가벼워 보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역사에 접근하는 새로운 입구가 될 수 있다.

무거운 역사를 반드시 무겁게만 다뤄야 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2030세대는 자신들에게 익숙한 언어와 방식으로 역사 문제를 다시 꺼내 들고 있다. 이번 '매국노 조롱잔치'는 그 변화의 한 장면이다.

sh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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