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인천국제공항=오승혁 기자] "똑같아요. 더 심해졌지."
10일 오전 '오승혁의 현장'이 찾은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 만난 미화원의 말이다. 최근 인천국제공항공사가 공항 안에 장기 체류하는 노숙인들을 상대로 퇴거 조치에 나섰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크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폭염을 피해 공항으로 들어오는 노숙인과 장기 체류 노년층이 겹치며 관리 부담은 더 커졌다는 설명이다.
인천국제공항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제 관문이다. 여름 방학과 휴가철이 겹친 이날 제1터미널 출국장과 입국장에는 캐리어를 끄는 여행객들이 끊임없이 오갔다. 전광판에는 출국 항공편이 이어졌고, 터미널 내부는 평소처럼 청결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하지만 공항 곳곳을 오래 지켜본 이들의 시선은 달랐다. 1층 입국장과 3층 출국장의 양끝 벤치와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4층의 정자 비선루 등에는 노숙인들이 보였다. 이들은 짐을 옆에 둔 채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냈고 익숙한 자리에서 잠을 청했다.
최근 극심한 폭염이 이어지면서 인천공항에 머무는 노숙인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공항 안에서 장기간 체류하며 여객용 의자를 차지하거나 공용 시설을 사실상 생활공간처럼 사용하는 사례가 이어지자 인천공항공사는 퇴거 조치에 나섰다.
항공업계 등에 따르면 현재 인천공항 제1·2여객터미널에 머무는 노숙인은 20명 안팎으로 파악된다. 공사는 이들에게 노숙인 복지시설 입소를 권유하고 있지만, 상당수는 시설 입소를 거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항공사는 최근 노숙인들의 물건 등에 퇴거명령서를 부착했다. 퇴거명령서에는 공항시설법 제56조에 따라 노숙행위가 금지돼 있다며 즉시 노숙을 중단하고 여객터미널 밖으로 퇴거하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퇴거 요청에 불응할 경우 벌금이나 구류, 과료 등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퇴거명령서 자체에 강제력은 없다. 공항공사 관계자는 "노숙인들로 인해 공항 이용객들의 불편이 계속되고 있어 순찰을 강화하고 퇴거명령서를 지속적으로 부착할 예정"이라면서도 "다만 노숙인들에게 전달하는 퇴거명령서 자체에 강제성은 없다"고 설명했다.
현장 미화원들도 같은 한계를 말했다. 한 미화원은 "퇴거 조치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며 "그대로 있다. 자리마다 터줏대감처럼 있는 분들이 있다"고 했다. 이어 "직원들끼리는 이름을 몰라도 옷 색깔이나 앉아 있는 자리만 말해도 누구인지 다 알아듣는다"고 말했다.
다른 미화원도 "빨간 옷 입은 할아버지, 어느 구역에 늘 있는 사람,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며 "하루 이틀 본 사람들이 아니라 근무자들은 대충 다 안다"고 했다.
문제는 단순 체류만이 아니다. 일부 장기 체류자는 공항 내 콘센트를 독점하거나 여객용 의자 여러 개를 차지한 채 짐을 쌓아두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객과 시비가 붙거나 공용 공간에서 소란을 피우는 사례도 발생한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화장실 관리 부담도 크다. 미화원들은 일부 이용자가 장애인 화장실을 장시간 점거하거나, 핸드타월을 이용해 몸을 닦고, 세면대에서 발을 씻거나 머리를 감는 일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한 미화원은 "장애인 화장실에서 오래 씻고 나오지 않으면 정작 필요한 분들이 쓰기 어렵다"며 "청소를 해도 금방 다시 더러워지는 경우가 있다"고 토로했다.
최근에는 폭염을 피해 공항을 찾는 노년층까지 늘었다고 한다. 공항철도와 지하철을 이용하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공항까지 올 수 있고, 터미널 내부는 냉방이 잘돼 장시간 머물기 좋기 때문이다.
한 미화원은 "요즘은 더워서 하루 종일 공항에 있는 어르신들도 많다"며 "노숙인인지, 더위를 피해 온 분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을왕리 쪽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에 공항으로 들어와 화장실을 쓰는 경우도 있다"며 "몸을 닦고 발을 씻고, 핸드타월을 많이 쓰면 청소하는 입장에서는 부담이 커진다"고 했다.
공항 이용객들의 불편과 현장 노동자들의 고충이 커지자 공항공사는 질서 유지 차원의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노숙 문제를 단순히 퇴거 조치로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숙인 인권단체 홈리스행동은 공항공사의 퇴거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인천공항의 홈리스 문제를 개인의 일탈이 아닌 공공의 실패에서 비롯된 문제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폭염 속에서 주거를 잃은 이들에게 공항이 사실상 마지막 피난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장욱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인천공항공사는 졸속으로 추진한 퇴거 조치를 중단하고 공공기관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며 "거리 노숙인을 위한 지원체계 구축을 사실상 방치한 인천시도 지원체계 구축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홈리스행동은 오는 12일 인천공항에서 퇴거 조치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공항은 24시간 운영되는 공공시설이다. 항공편 지연이나 심야·새벽 출국 일정 때문에 터미널에서 밤을 보내는 여행객도 적지 않다. 단순히 오래 앉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노숙인이나 장기 체류자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매일 같은 자리에 머물며 생활 흔적을 남기는 이들과 일반 이용객은 현장에서 일정 부분 구분된다는 게 미화원들의 설명이다.
한 미화원은 "비행기 기다리는 사람과 매일 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다르다"며 "매일 청소하는 사람들은 알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날 낮 인천공항 제1터미널은 여전히 밝고 쾌적했다. 여행객들은 캐리어를 끌고 출국장으로 향했고, 외국인 관광객들은 입국장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그 사이 일부 장기 체류자들은 익숙한 자리에 머물렀다. 공항을 떠나는 사람들과 공항에 머무는 사람들의 시간이 같은 공간에서 엇갈리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관문인 인천공항은 청결과 질서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 이미지를 유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공공시설의 질서와 이용객 편의, 노숙인의 생존권과 현장 노동자의 부담 사이에서 공항의 고민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