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뙤약볕은 주황, 그늘은 초록”…서울 40도 찍은 날 ‘그늘로’ 걸어보니 [오승혁의 현장]


7일 서울 일부 지역 40도 넘겨
그늘길 안내하는 앱 이용해 서울 종로 걸어봐

7일 입추에도 불구하고 서울 일부 지역 기온이 40도를 넘긴 날, 오승혁의 현장은 폭염 속 그늘 아래에서 걸을 수 있게 돕는 앱 그늘로를 켜고 서울 종로 일대를 걸었다. /서울 종로=오승혁 기자

[더팩트|서울 종로=오승혁 기자] "누구나 한 번쯤 생각했을 법한 일을 실제 앱으로 만들었다는 게 신기해요."

절기상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추인 7일, 서울 일부 지역의 기온이 40도를 넘어섰다. 달력으로는 가을에 들어섰지만 햇볕이 내리쬐는 도로 위에서는 몇 분만 걸어도 온몸에 땀이 흘렀다.

기상청 자동기상관측장비(AWS)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31분께 서울 노원구의 기온은 40.2도까지 올랐다. 서울에서 AWS 기온이 40도를 넘어선 것은 2018년 이후 8년 만인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이다.

전날 서울 영등포구 AWS에서도 40.0도가 관측됐지만 해당 장비는 초등학교 옥상에 설치된 참고용 장비다. 건물 복사열과 에어컨 실외기 등의 영향을 받을 수 있어 공식 기후 통계에는 활용되지 않는다.

서울의 공식 대표기온을 측정하는 종로구 서울기상관측소의 이날 최고기온은 38.0도를 기록했다. 공식기온과 별개로 도심 곳곳에서 40도를 넘나든 관측값은 시민들이 거리에서 마주한 더위가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날 점심시간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직장인들은 최근 화제가 된 애플리케이션 ‘그늘로: 뚜벅의 여름길’(이하 그늘로)을 두고 햇볕을 피해 걷고 싶다는 생각을 상상에 그치지 않고 실제 서비스로 구현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오승혁의 현장’도 이날 종로구 G1서울빌딩 앞에서 안국역으로 또 안국역에서 운현궁까지 종로 일대를 그늘로를 이용해 걸어봤다. 스마트폰의 날씨 안내 앱에는 현재 온도 37도 찍혔고 온열질환을 주의하라는 안전 안내 문자가 떴다. 앱에 출발지와 목적지를 입력하자 지도 위에 이동 경로가 나타났다.

건물이나 가로수의 그림자가 드리운 구간은 초록색, 햇볕에 노출되는 구간은 주황색으로 표시됐다. 같은 길이라도 출발 시각에 따라 태양의 위치와 그림자가 달라지는 점을 반영해 화면 속 그늘 구간도 변했다.

그늘로 앱을 이용해 운현궁에 도착하자 도착 알림이 떴다. 그늘은 초록색, 그늘이 없는 구간은 주황색으로 표시되는 앱은 걷는 과정에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안겨줬다. /서울 종로=오승혁 기자

스마트폰 화면과 실제 도로를 번갈아 보며 걸었다. 초록색으로 표시된 구간에서는 건물과 가로수가 만든 그림자가 이어졌고, 주황색 구간에 들어서자 강한 햇볕이 머리 위로 곧바로 내리쬐었다.

앱이 거리의 온도를 직접 낮춰주는 것은 아니다. 실제 그늘의 모양과 위치가 지도 표시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구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앞으로 걸어갈 길에서 어느 구간에 그늘이 있고 언제 햇볕에 노출될지를 미리 알고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은 유용했다.

특히 주황색 구간을 지나면 다시 초록색 구간이 나온다는 사실을 화면으로 확인할 수 있어 무작정 뙤약볕 속을 걷는 것보다 심리적인 부담이 덜했다. 그늘을 찾아 좌우를 두리번거리는 일도 줄었다. 목적지인 안국역에 도착했을 때는 평소 같은 더위 속을 걸을 때보다 확실히 덜 지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최근 며칠 사이 온라인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탄 그늘로는 IT 대기업이 아닌 대학생이 만든 서비스다.

개발자는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 23학번으로 벤처경영학을 연합전공하는 유민준(23)씨다. 지난 6월 군 복무를 마친 유씨는 경기도 성남에서 서울 관악구의 학교까지 통학하며 여러 차례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걷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7일 입추에도 불구하고 무더위는 이어졌다. 낮 안국역 일대를 러너들과 관광객 등이 지나고 있다. /안국역=오승혁 기자

익숙한 통학로에서는 그늘진 길을 알 수 있지만 처음 찾은 지역에서는 햇볕을 피할 방법을 알기 어렵다는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개발에 나섰다. 본격적으로 개발에 착수한 뒤 최초 서비스를 공개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약 2주였다 .

서비스는 개방형 지도인 오픈스트리트맵에 국토교통부 등이 제공하는 건물의 형태와 높이, 가로수 위치와 수관, 공원과 무더위쉼터 등의 정보를 결합했다. 이용자의 위치와 출발 시각을 바탕으로 태양의 고도와 방향을 계산해 건물과 나무가 만드는 그림자를 지도에 표시하고 그늘이 많은 이동 경로를 제안한다.

단순히 그늘진 보행로만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버스의 진행 방향과 태양 위치를 계산해 햇볕을 덜 받는 창가를 안내하고, 지하철 약냉방칸과 빠른 환승 출입구 등의 정보도 제공한다. 이용자는 햇빛 선호도와 경사도, 계단 제외 여부, 혼잡도와 우회 범위 등도 설정할 수 있다.

그늘로는 지난달 13일 공개됐다. 아이폰 이용자는 애플 앱 스토어에서 해당 앱을 다운 받을 수 있다. 7일 현재 안드로이드용 독립 앱은 구글플레이 심사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갤럭시 등 안드로이드 이용자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토스 미니앱으로 연결하거나 토스 앱에서 그늘로를 검색해 이용할 수 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앱을 소개하는 글이 퍼지면서 이용자가 급증했다. 지난 4일에는 하루 약 2만 명이 접속했고 한때 이용자가 몰려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할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그늘길을 찾는 서비스가 주목받은 배경에는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이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6월1일부터 이달 6일까지 전국 평균 폭염일수는 14.8일로, 전국 기상관측망이 확충된 1973년 이후 같은 기간 기준 네 번째로 많았다. 폭염일수는 하루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날을 뜻한다.

밤에도 기온이 충분히 떨어지지 않았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열대야일수는 13.0일로 역대 가장 많았다. 낮 동안 달궈진 열기가 밤까지 이어지면서 시민들이 느끼는 피로도 함께 쌓였다.

다만 그늘로는 공공 지도와 건물·가로수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림자를 예측하는 만큼 실제 현장과 차이가 날 수 있다. 지도 정보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경로나 그늘 표시의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고, 공사장과 주차 차량 등 실시간 도로 상황도 모두 반영하기 어렵다.

실제로 인사동과 종각역 사이의 작은 골목에 들어서자 앱의 경로 탐색이 원활하지 않은 구간도 있었다. 현재 위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서 안내 경로가 잠시 끊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늘로가 던진 질문은 분명했다. 기존 길찾기 서비스가 가장 빠르고 짧은 길을 찾는 데 집중했다면 기록적인 폭염 속 보행자에게는 몇 분 더 걸리더라도 햇볕을 덜 받는 길이 더 나은 경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에도 서울 도심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흐르는 극심한 더위가 이어졌다. 안국역을 향해 걷는 스마트폰 화면에는 초록색과 주황색 구간이 번갈아 나타났다. 뜨거운 햇볕 자체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어디까지 견디면 다시 그늘이 나오는지는 알 수 있었다.

누군가 상상만 했을 법한 ‘그늘을 따라가는 길’이 대학생 한 명의 실행으로 폭염 속 시민들의 길 위에 나타났다.

sh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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