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1000병, 40분 만에 동났다”…37.9도에도 탑골공원에 남은 노인들 [오승혁의 현장]


6일 서울 낮 최고기온 37.9도 기록한 탑골공원 찾아
무더위 속에도 이어지는 노년층의 일상

6일 오승혁의 현장은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찾았다. 무더위 속 노년층의 온열 질환 방지를 위해 배포된 아리수 1000병이 40분 만에 동났다. /탑골공원=오승혁 기자

[더팩트|서울 탑골공원=오승혁 기자] "아리수 배부는 끝났습니다. 복지센터로 가시면 물이 있습니다."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37.9도까지 오르며 올여름 최고기온을 다시 쓴 6일, ‘오승혁의 현장’은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찾았다.

공원 중앙에는 국보인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이 서 있다. 이 탑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탑골’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오래전부터 노년층의 대표적인 모임터로 자리 잡았다.

인근에는 수도권 전철 1·3·5호선이 지나는 종로3가역이 있어 무료로 지하철을 탈 수 있는 노년층들의 접근성이 높다. 또한 공원 주변에는 3000원대 국밥집과 6000원에 머리를 깎을 수 있는 이발소, 무료급식소 등이 모여 있어 각지에서 찾아온 노인들이 시간을 보낸다.

이날 오전 10시30분을 조금 앞둔 시간부터 탑골공원은 이미 노인들로 가득했다. 무료 급식 등을 기다리는 이들이 나무 그늘과 정자 아래에 자리를 잡았고 공원 안 정자 아래와 벤치에는 더위를 달래며 쉬는 이들이 앉았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노인들이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탑골공원과 인근 무료급식소 주변에는 취재진 추산 300여 명의 노인이 모여 있었다.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그늘에 모여 더위를 식히고 있다. /서울 탑골공원=오승혁 기자

서울시가 이날 준비한 아리수 1000병은 배부를 시작한 지 약 40분 만에 동났다. 현장 직원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물량이 소진됐다며 물을 받지 못한 이들에게 인근 노인복지센터를 안내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서울의 공식 최고기온은 37.9도를 기록했다. 서울에는 최고기온 39도 또는 최고체감온도 38도 이상의 극단적인 더위가 예상될 때 내려지는 폭염중대경보도 발효됐다.

더위가 가장 극심해지는 오후 2시 무렵 잠시 공원을 걷는 동안 촬영에 사용한 스마트폰이 깜짝 놀랄 만큼 뜨거워질 정도로 햇볕은 강했다. 노인들은 부채로 연신 바람을 일으키거나 나무 그늘로 몸을 피했다. 생수병을 손에 쥔 채 조금씩 물을 마시는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탑골공원과 인접해 있는 낙원상가 1층에 ‘탑골 어르신 문화놀이터’가 있다. 도보로 7분 가량 걸으면 나오는 안국역 인근의 노인복지센터와 함께 냉방시설이 갖춰진 실내에서 장기를 즐기며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낙원상가 앞에 설치된 노인복지센터의 상담사들은 앞을 지나는 노년층에게 "뜨거운 야외에 있지 말고 실내에서 쉬시라"고 인근 휴식 시설 등을 안내했다. 그럼에도 상당수는 공원을 떠나지 않았다. 직원들의 안내와 관리가 이뤄지는 실내보다 익숙한 사람들과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원 그늘이 더 편한 듯했다.

정자 한편에서는 한 노인이 휴대용 스피커로 옛 노래를 틀었다. 마치 그 구역의 라디오 DJ처럼 선곡을 맡은 그의 주변으로 ‘홍도야 우지 마라’가 흘러나왔다.

"홍도가 하루 종일 우네. 계속 울어."

노래를 듣던 한 노인이 농담을 건넸다. 주변에서는 다른 노래도 틀어달라는 주문이 이어졌다. 공원을 오가다 낯익은 얼굴을 마주친 이들은 "아이고, 반갑습니다"라며 자연스럽게 안부를 나눴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도 탑골공원의 일상은 이어지고 있었다. 노래를 트는 사람과 듣는 사람, 먼저 와 자리를 잡은 사람과 뒤늦게 합류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오랜 시간 이곳을 드나든 이들 사이에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관계와 질서가 있는 듯했다.

반면 익숙하지 않은 외부인을 대할 때는 경계하는 기색도 보였다. 이날 종교단체와 노무법인 관계자 등이 공원을 찾아 노인들을 상대로 홍보 활동을 벌였지만 일부는 거리를 두거나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낯선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모습이었다.

탑골공원은 일부 노인에게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아니었다.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이어가며 하루를 보내는 생활공간에 가까웠다. 폭염 속에서 냉방시설이 갖춰진 쉼터가 가까이 있는데도 이들이 공원에 남는 이유다.

그러나 이날 같은 극단적인 폭염에는 익숙한 공간도 안전지대가 될 수 없다. 노년층은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지고 갈증을 늦게 느낄 수 있어 온열질환에 특히 취약하다. 기상청도 야외 활동을 중단하고 무더위쉼터나 냉방시설로 이동해 수분을 충분히 섭취할 것을 당부했다.

아리수 1000병이 40분 만에 사라진 풍경은 이날 탑골공원의 더위가 얼마나 혹독했는지를 보여줬다. 동시에 이곳이 노인들에게 얼마나 익숙하고 쉽게 떠날 수 없는 공간인지도 드러냈다.

스피커에서 '안동역에서'가 흘러 나오자 정자 아래 모인 이들 중 다수가 함께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나무 그늘과 정자 아래에 모인 노인들은 부채질하며 노래를 듣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서울이 37.9도까지 달아오른 날에도 탑골공원의 일상은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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