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초 만에 딴 세상...독일 장인이 만든 ‘AMG GT 63 S E’ [오승혁의 팩트 DRIVE]


‘원 맨, 원 엔진’ 4.0L V8에 전기모터 결합
2억8000만원짜리 AMG GT 63 S E 퍼포먼스 직접 타보니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차는 나에게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는 거다.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삶의 일부다." -엔초 페라리(1898~1988)

매년 수백 종의 신차가 쏟아지는 시대. 자동차에 대한 정보는 넘쳐 나는데, 정작 제대로 된 ‘팩트’는 귀하다. ‘팩트 DRIVE’는 <더팩트> 오승혁 기자가 직접 타보고, 확인하고, 묻고 답하는 자동차 콘텐츠다. 흔한 시승기의 답습이 아니라 ‘오해와 진실’을 짚는 질문형 포맷으로, 차에 관심 있는 대중의 궁금증을 대신 풀어준다. 단순한 스펙 나열은 하지 않는다. 이제 ‘팩트 DRIVE’에 시동을 건다. <편집자 주>

오승혁의 팩트 DRIVE는 메르세데스-AMG GT 63 S E 퍼포먼스의 보닛을 열고 장인의 서명을 확인했다. /경기 파주=오승혁 기자

[더팩트|경기 파주=오승혁 기자] 보닛을 열자 사람의 손 글씨 서명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Handcrafted by.’

메르세데스-AMG는 한 명의 기술자가 엔진 하나를 책임지고 조립하는 ‘원 맨, 원 엔진’(One Man, One Engine) 원칙을 지켜왔다. 조립을 마친 기술자는 엔진 위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을 붙인다. 단순한 서명이 아니라 이 심장에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선언처럼 보였다.

그렇게 한 사람의 손에서 완성된 4.0L V8 바이터보 엔진에 204마력의 전기모터가 힘을 보탠다. 시스템 최고출력은 816마력, 최대토크는 1420Nm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단 2.8초다.

AMG가 1967년부터 쌓아 올린 약 60년의 시간이 그 찰나에 압축됐다.

"하나, 둘…."

‘셋’을 세기도 전에 차량은 이미 시속 100㎞에 도달한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는 순간 운전자의 몸은 시트에 파묻히고, 눈앞에 있던 풍경은 순식간에 뒤로 밀려난다.

이번에 ‘오승혁의 팩트 DRIVE’가 만난 차량은 메르세데스-AMG GT 63 S E 퍼포먼스다. E 퍼포먼스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등 고성능 전기 모터 기술이 결합된 전동화 파워트레인 시스템을 뜻한다. 국내 판매 가격은 2억8000만원으로 지금까지 시승한 차량 중 가장 비싸고, 가장 강력하며, 가장 빠르다.

지난 시승기의 주인공이었던 마세라티 그레칼레 트로페오는 530마력의 힘으로 운전자를 유혹했다. AMG GT 63 S E 퍼포먼스는 그 마세라티에 아반떼 N 한 대의 힘을 통째로 더하고도 남는다.

메르세데스-AMG GT 63 S E 퍼포먼스의 전면. 같이 달리자며 매혹하고 있다. /경기 파주=오승혁 기자

비싼 만큼 빠른 것인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스포츠카는 정말 효율적인지, 네 명이 타서 달리면 어떤 느낌인지 직접 살펴봤다.

- 816마력, 도대체 어느 정도인가?

익숙한 차와 비교하면 체감하기 쉽다.

기아 쏘렌토 2.5 가솔린 터보의 최고출력은 281마력, 제네시스 GV80 3.5 터보는 380마력이다. AMG GT 63 S E 퍼포먼스는 쏘렌토의 약 2.9배, GV80의 약 2.1배에 달하는 힘을 낸다. 쏘렌토 세 대의 출력을 스포츠카 한 대에 압축했다고 생각하면 비슷하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단 2.8초다. 최고속도는 시속 320㎞에 이른다. 메르세데스-AMG가 공개 당시 자사 양산 모델 역사상 가장 빠른 제로백이라고 강조한 이유다.

고속도로 진입 구간에서 가속페달을 밟자 차체가 잠시 움츠렸다가 거대한 힘으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차가 운전자를 안아서 다른 공간에 데려다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서울에서 파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치고 나가는 쾌감을 만끽했다.

다만 816마력을 일반도로에서 모두 꺼내 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가속페달을 조금만 깊게 밟아도 제한속도에 빠르게 도달한다. 압도적인 힘은 이 차의 가장 큰 장점인 동시에 운전자가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구간 단속과 속도 제한 구역을 마주할 때마다 차를 달래듯 속도를 줄여야 한다.

메르세데스-AMG GT 63 S E 퍼포먼스의 옆 모습. 주행 중에 묻은 흙과 먼지를 그림처럼 소화하고 있다. /경기 파주=오승혁 기자

-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면 연비를 위한 차인가?

이 차에서 ‘하이브리드’를 친환경이나 연비 절약이라는 단어와 곧바로 연결하면 오해가 생긴다. 실제로 2억8000만원에 상당하는 슈퍼카를 몰면서 연비와 주유비를 걱정하는 것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AMG GT 63 S E 퍼포먼스에 적용된 전동화 기술의 목표는 기름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더 빠르게 달리는 것이다. 뒤 차축 위에는 6.1kWh 용량의 고성능 배터리가 배치됐다. 순수 전기 주행 가능 거리는 약 13㎞에 불과하다. 충전구도 마련돼 있지만 출퇴근길을 전기차처럼 오가기 위한 대용량 배터리는 아니다.

약 13㎞의 전기 주행거리는 이 차의 성격을 보여준다. 배터리의 주된 역할은 장거리 전기 주행보다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보태고, 제동 과정에서 회수한 에너지를 다음 가속에 사용하는 데 있다.

스티어링 휠의 조작 장치를 이용하면 회생제동 강도를 네 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가장 강한 단계에서는 가속페달을 떼는 것만으로도 속도가 확연하게 줄어드는 원 페달 주행과 비슷한 감각을 경험할 수 있다.

‘E 퍼포먼스’라는 이름도 효율보다 성능에 방점이 찍혀 있다.

슈퍼카는 뒤태로 자신을 표현하곤 한다. /경기 파주=오승혁 기자

- 외관의 존재감은 어느 정도인가?

차를 처음 마주하면 긴 보닛과 낮은 지붕, 뒤쪽으로 밀린 실내가 전형적인 정통 스포츠카의 비율을 만든다.

전면부의 세로형 AMG 전용 그릴과 거대한 공기흡입구는 멀리서도 평범한 메르세데스-벤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린다. 시승차의 주황색 차체와 검은색 카본 소재가 강한 대비를 이루면서 공격적인 인상을 준다.

21인치 휠 안쪽에는 브론즈 색상의 AMG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캘리퍼가 자리 잡았다. 앞바퀴에는 420㎜, 뒷바퀴에는 380㎜ 크기의 브레이크 디스크가 적용됐다. 휠과 디스크 사이의 간격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다.

차량 뒤쪽에는 네 개의 배기구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시동을 걸면 낮게 깔린 V8 배기음이 주변을 채운다. 억지로 소리를 키운 느낌보다 차체 깊숙한 곳에서 울림이 올라오는 듯하다. '타당 타당' 하는 총소리 같은 소리가 지금도 귀에 각인되어 있다.

멋을 위해 만들어진 장식처럼 보이는 요소들이 실제 주행 안정성과 연결된다. AMG가 디자인과 기능을 한꺼번에 밀어붙인 결과다.

다만 차량의 디자인과 색상 모두 사생활을 중요시하며 튀고 싶어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운전자는 그저 주차를 하고 내리거나 탈 뿐인데 강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메르세데스-AMG GT 63 S E 퍼포먼스의 내부. /경기 파주=오승혁 기자

- 실내도 예술 작품처럼 느껴지나?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그렇다.

시승차에는 외장 색상과 조화를 이루는 카본 트림과 짙은 가죽 소재가 적용됐다. 디지털 계기판과 세로형 중앙 디스플레이, 원형 송풍구가 운전자를 둘러싼다.

버튼을 최소화한 최신 차량의 실내와 달리 스티어링 휠에는 주행 모드와 서스펜션, 배기음 등을 즉시 바꿀 수 있는 조작 장치가 촘촘하게 배치됐다. 처음에는 복잡해 보이지만 익숙해지면 디스플레이 메뉴를 여러 번 누르지 않고 원하는 설정을 바로 바꿀 수 있다.

일렉트릭과 배터리 홀드, 컴포트, 미끄러운 노면, 스포츠, 스포츠+, 레이스, 인디비주얼 등 여덟 가지 주행 모드를 지원한다. 편안한 이동부터 극단적인 고성능 주행까지 한 차량 안에서 성격을 바꿀 수 있다.

메모리 시트와 마사지 기능, 부메스터 사운드 시스템도 갖췄다. 단순히 빠르게 달리기 위한 경주차가 아니라 장거리 이동도 고려한 고성능 그랜드 투어러라는 점을 보여준다.

보닛을 열면 엔진을 조립한 작업자의 서명이 담긴 ‘Handcrafted by’ 명판도 확인할 수 있다. 한 명의 기술자가 하나의 엔진을 책임진다는 AMG의 ‘원 맨, 원 엔진’ 철학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장치다.

차량 곳곳에 새겨진 아팔터바흐 문장도 특별하다. 한쪽에는 지역을 상징하는 사과나무가, 다른 쪽에는 엔진의 캠과 밸브가 들어갔다. AMG의 뿌리와 기술을 하나의 원 안에 담았다.

메르세데스-AMG GT 63 S E 퍼포먼스의 2열. /경기 파주=오승혁 기자

- 2+2 구조, 정말 네 명이 탈 수 있나?

탈 수는 있다. 다만 ‘편하게’라는 조건을 붙이기는 어렵다.

신형 AMG GT는 2+2 구조를 적용해 앞좌석 2개와 뒷좌석 2개를 갖췄다. 기존의 2인승 스포츠카보다 활용 범위를 넓혔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다.

앞좌석을 적절히 앞으로 당기면 뒷좌석에도 사람이 앉을 수 있다. 그러나 낮은 지붕과 좁은 무릎 공간 때문에 성인 네 명이 장거리를 이동하기에는 부담스럽다. 뒷좌석은 어린이나 체격이 작은 승객을 위한 공간, 또는 가방과 옷을 놓는 추가 적재 공간으로 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트렁크는 안쪽으로 제법 깊다. 뒷좌석 등받이를 접으면 적재 공간을 더 넓힐 수 있다. 다만 쿠페 특유의 좁은 입구와 낮은 차체 때문에 부피가 큰 짐을 싣기에는 제약이 있다.

가족용 세단이나 SUV의 실용성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지만, 스포츠카에 네 개의 좌석과 활용 가능한 트렁크가 있다는 관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메르세데스-AMG GT 63 S E 퍼포먼스의 계기판. /서울=오승혁 기자

- 낮고 긴 차체, 일상에서 불편하지 않나?

조심해야 하지만 AMG도 이를 모른 척하지 않았다.

앞 차축을 최대 30㎜ 들어 올리는 리프트 기능이 적용돼 지하주차장 경사로나 높은 방지턱을 지날 때 전면 범퍼가 바닥에 닿을 위험을 줄여준다. 위치를 저장하면 같은 장소에 다시 접근했을 때 자동으로 차체를 높이는 기능도 제공한다. 실제로 제법 많은 방지턱을 넘었지만 하부에 자극을 느낀 적은 거의 없었다.

뒷바퀴 조향 시스템은 저속에서 앞바퀴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회전반경을 줄인다. 차체가 길고 폭이 넓지만 유턴이나 주차 과정에서는 예상보다 민첩하게 움직인다. 고속에서는 뒷바퀴가 앞바퀴와 같은 방향으로 돌아 안정성을 높인다.

AMG 액티브 라이드 컨트롤은 코너에서 차체의 좌우 기울어짐을 적극적으로 억제한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노면의 상태가 운전자에게 비교적 선명하게 전달되지만 컴포트 모드로 바꾸면 일상 주행에서 받아들일 만한 수준으로 부드러워진다.

그렇다고 S클래스처럼 편안한 차는 아니다. 낮은 시트 포지션과 단단한 하체, 넓은 차폭은 계속 운전자에게 이 차가 스포츠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 최종평은?

메르세데스-AMG GT 63 S E 퍼포먼스는 합리성을 따져 구매하는 차가 아니다. 뒷좌석은 좁고, 차체는 낮으며, 816마력의 대부분은 일반도로에서 꺼내 쓰기도 어렵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지만 전기만으로 멀리 달릴 수도 없다.

하지만 이 차가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는 명확하다.

4.0L V8 엔진의 감성과 전기모터의 즉각적인 반응, 2.8초의 제로백, 정교한 사륜구동과 뒷바퀴 조향,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를 한 차 안에 집약했다. 여기에 아름다운 쿠페 디자인과 마사지 시트, 부메스터 오디오, 2+2 좌석이라는 최소한의 일상성까지 더했다.

마세라티 그레칼레 트로페오의 530마력이 뜨거운 유혹이었다면 AMG GT 63 S E 퍼포먼스의 816마력은 힘으로 밀어붙이는 선언에 가깝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뗀 뒤에도 V8의 울림과 순간적으로 좁아졌던 시야가 한동안 머릿속에 남았다. 빠른 차는 많다. 그러나 디자인과 기술, 감성으로 설득하는 차는 흔하지 않다.

AMG가 작정하고 만든 주황색 탄환은 아름답고, 비싸고, 무서울 만큼 빨랐다.

sh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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